먼지 속에서 다시 나를 꺼내는
『청소하러 왔어요』, 뻥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청소하러 왔어요』는 오늘날 청춘이 우리 사회에서 겪는 구조적 문제와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청소’라는 일상적 행위를 통해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은 그렇게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며 천천히 성장해 간다.
1. 정리되지 않은 공간 속에서 잊혀 가는 ‘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낸다. 일을 하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꺼내 놓으면 책상은 금세 어질러진다. 책상 위에는 필기구나 화장품 같은 생활용품과 더불어, 친구들의 선물, 추억이 담긴 사진과 같이 좋아하는 물건들이 어우러져 나의 일상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일에 몰두하다 보면 좋아하던 물건들조차 신경 쓸 수 없게 된다. 일이 끝나면 얼른 책상에서 벗어나고만 싶어진다. 결국 나의 취향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먼지 속에 가려진다. 그렇게 나만을 위한 공간 속에서 나를 잃어버린다.
『청소하러 왔어요』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민우연’의 이야기를 그린다. 스물일곱 살의 우연은 자신의 삶이 완벽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7년간 성실히 일했음에도 늘 승진에서 밀리고, 고졸 특채로 입사한 자신보다 대졸 후배가 먼저 승진하는 모습을 보며 무너진다.




『청소하러 왔어요』 1화 中
웹툰의 긴 스크롤 연출을 통해 젠가가 무너지듯 차곡차곡 쌓아 올린 삶이 한순간에 쓰러지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쓰레기로 가득 찬 방을 바라본다. 사실 우연은 일찍이 무너져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개인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근무 환경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무기력에 빠져 있다. 2025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48.1%)이 사회 전반의 정신건강이 나쁘다고 평가했다. 그 원인으로는 경쟁과 성과 중심의 사회 분위기,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문화가 꼽혔다. 우연의 방은 바로 오늘날 한국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1)



『청소하러 왔어요』 1화 中
2. ‘소진’된 나를 돌보는 방법
철학자 로지 브라이도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소진’의 상태로 진단한다. 끊임없는 효율성 추구로 인간은 무기력해지고, 그 증상으로 번아웃과 우울증이 나타난다.2) 우연 역시 이런 상태에 빠져 해고된 뒤 자신을 방치하게 된다. 그때 낯선 여자 ‘주하라’가 갑자기 찾아와 청소를 시작한다. 정돈된 방에서 우연은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다. 하라는 우연의 방을 정리하면서 그녀가 잊고 지냈던 취향을 하나씩 되짚어준다.



『청소하러 왔어요』 1화 中
3화에서 하라는 우연에게 하고 싶은 일 ‘하나’만 생각해 보라고 한다. 우연은 과거 자신이 좋아했던 카페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 우연은 카페 사장에게 선물 받은 드립백을 직접 내려 하라와 나누며,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나누는 삶을 알아간다.
브라이도티는 ‘소진’을 새로운 공동체로 나아가는 전환의 계기로 해석한다. 그리고 고통을 다르게 받아들일 때 새로운 형태의 ‘우리’가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3) 주인공 우연이 하라를 만나 깨닫게 된 것은 바로 ‘돌봄’의 관계다. 마법처럼 나타난 하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이다. 하라는 관계를 새롭게 이어주는 매개자로서, 기존 사회 시스템 밖에서도 삶이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우연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현재를 바꿔나간다.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서사를 흑백과 색채의 전환으로 표현한다. 출판 만화의 스크린 톤(회색 음영을 주기 위해 사용된 스티커 필름 형태의 그림 도구)과 웹툰의 채색이 융합된 묘사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지금’을 보여준다.
3. ‘관계’ 안에서 나만의 ‘속도’를 배우기
하라는 우연에게 “당신을 걱정하는 사람이 안심할 때까지” 청소하러 올 것이라고 한다. 5화에서 밝혀진 그 사람은 바로, 우연을 아껴주던 회사 선배 ‘정 주임’이었다. 선배로서 같은 경험을 했던 정 주임은 SNS를 통해 우연의 상태를 바로 알아차렸다.




『청소하러 왔어요』 1화 中
정 주임 역시 야근과 주말 근무를 당연시하며 자신을 소모해 왔다. 그때 정 주임에게도 하라가 찾아왔다. 이처럼 누구나 좌절할 수 있으며,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사회는 구조에서 벗어난 사람을 탈락자로 여기고 괜한 눈초리를 준다. 우연과 정 주임은 하라의 이름조차 몰랐다. 그런 두 사람은 하라로부터 돕는 법을 배우고, 다시 연결된다. 여기서 돌봄은 인간으로서 ‘나’를 위한 일이다. 우연은 스스로 모든 걸 해내야 어른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우리에게는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동체와 삶이 필요하다. 이렇게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얻은 회복은 결국 자신과의 관계로 이어져야 한다. 이제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남아 있다. 우연은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4. ‘우연’처럼 찾아오는 삶
10화에서 우연은 갑작스레 찾아온 엄마에게 처음으로 솔직한 자기 모습을 털어놓는다. 엄마와의 갈등 속에서 우연은 한 번도 연애 감정을 느껴본 적 없음을 고백한다.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이지만, 다양한 성정체성이 존재하듯 인간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가족 역시 서로의 삶을 함부로 가늠하고 통제할 수 없음을, 작품은 말한다.
그리고 우연은 하라를 알아가기 위해 청소를 배우기로 한다. 청소는 이 작품의 중요한 메타포이다. 하라가 알려주는 청소의 방법을 따라가 보면, 청소와 삶이 닮았음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도 방과 책상은 애증의 공간이다. 바쁜 일이 끝나면 밀린 청소를 하려고 애쓴다. 행동하기까지 쉽지 않지만, 겨우 힘을 내어 먼지를 털고 물건을 정리하면 마음마저 환기된다.
개인이 소진 상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작품은 이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대신, 우리가 느끼는 소진 상태의 원인을 청소의 순서처럼 차근차근 보여준다.
『청소하러 왔어요』는 그렇게 우연이 다시 발돋움하는 모습을 그린다.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를 누군가는 어리다고, 또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의 속도는 자신만이 정하는 것이다. 삶의 모든 일은 ‘우연’처럼 찾아온다. 때로는 그런 우연에 몸을 맡기고, 그저 ‘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이 실천의 윤리가 중요하다.
『청소하러 왔어요』는 매일 아침 창문을 여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새롭게 환기하길 권한다. 주인공 우연이 앞으로 청소해 갈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역시 자신의 먼지를 발견하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구교운, 「국민 10명 중 5명 "정신건강 좋지 않다…경쟁·성과 강조 때문"」, 뉴스1, 2025.05.07. https://www.news1.kr/bio/welfare-medical/5774188
2) 로지 브라이도티, 김재희, 송은주 옮김, 『포스트휴먼 지식』, 아카넷, 2022, p.35-36
3) 로지 브라이도티, 김재희, 송은주 옮김, 앞의 책, p.3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