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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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라는 운동화에 박힌 모래알 꺼내기, <에이리언 아이돌>

에이리언 아이돌(지애, 위즈덤하우스) 리뷰

2025-08-05 김민경

연예계라는 운동화에 박힌 모래알 꺼내기에이리언 아이돌

『에이리언 아이돌』, 지애

_김민경

2020년에 연재가 종료된 웹툰을 이제 와 재차 소개하는 이유는연예계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지닌 역린을 이만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이다여기서 역린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성 정체성성적 지향성별 고정관념외국인 차별 등등에이리언 아이돌은 다수에게 보이는 직업이라는 이유로또는 언급하기 껄끄럽다는 이유로애써 지은 미소 아래 넘겨졌던 연예계의 불편한’ 것들을 조목조목 짚는다.

1왼쪽부터 규원지호승우아이나루카그리고 라이.
왼쪽의 셋은 인간이고다른 네 명은 행성 라마 출신의 외계인이다.

에이리언 아이돌줄여서 에이아이는 세 명의 지구인과 네 명의 라마인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다라마는 지구로부터 504광년 떨어진 에라토스 항성계에 있는 행성이다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룩했던 라마가 이웃 행성 케턴의 습격을 받아 파괴되는 장면으로 만화는 시작된다간신히 살아남은 라마 출신들은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인다온 우주에 자신들의 고향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소속사와 계약했으면 이젠 실력을 갈고닦아 꿈을 향해 달려갈 차례라면 좋으련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다만 다른 아이돌 소재의 작품과 다른 점이 있는데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노래나 춤 실력이 부족하다거나 사생활과 관련된 논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이들의 진짜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라마에서는 지극히 당연했던 상식이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것또 라마인의 성별 체계가 지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

2라이와 PD가 나누는 대화

당장 2화에서부터 이는 가감 없이 드러난다. PD는 라이가 어눌하게 한국말을 하면 그걸 계기로 외국인 멤버들에 대한 화제로 넘어가자고 한다외국인다운 발음을 소재로 삼는 건 드물지 않지만라이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대꾸한다(바틀비와는 달리 이쪽은 적극적인 저항에 더 가깝다). 자신은 한국말이 서툴지 않을뿐더러 서툰 외국어를 웃음거리로 삼는 건 다수를 변명 삼아 소수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이다.

보는 이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상황은 반복된다라이는 첫 만남부터 자신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지구인 멤버들에게 일갈한다같은 소속사의 여성 그룹 라즈베리가 무리하게 다이어트하면서 어째서 병원(산부인과)에 가지는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팬 미팅 벌칙으로 우스꽝스러운 여장이 주어지자 그건 신선하지도 재밌지도 않다고 지적한다마치 운동화에 잘못 박힌 모래알처럼 사소하게 까슬거리는 상황들라이는 그 모두를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내내 마음을 졸이게 되는 건우리가 사는 사회가 아직 라이나 행성 라마만큼 성숙함을 지니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모두가 라이에 적대적인 건 아니다어쨌든 라이는 아이돌이고아이돌에게는 팬이 있으니까그러나 라이는 이런 호의 어린 시선이 고마우면서도 혼란스럽다그 시선은 남성’ 아이돌인 라이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라이가 자신을 여성체로 인식하는 것과 다르게.

36라이가 부모와 함께 성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라마에는 세 가지 성()이 있다여성 분화체남성 분화체그리고 성 미분화 병존체이중 라이가 속하는 건 세 번째인 성 미분화 병존체로이들은 이차 성징 없이 살다가 스물여덟 살이 되면 하는 대로 신체적 성을 확정할 수 있다아직 스물여덟이 되지 않은 라이의 신체는 현재 남성과 여성그 무엇도 아닌 상태이다라이는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고 신체를 여성으로 확정하고 싶어 하기에남성 아이돌로 활동해야 하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어째서 아이돌 만화를 보면서 신체적 성과 타고난 성(만화는 신체적 성과 무관하게 본인이 성별을 타고난 성이라는 표현으로 지칭하는데그 이유는 36화에 나온다)에 대한 얘기까지 들어야 하는지 궁금할 수 있다생뚱맞게 들리겠지만큰 흐름은 다르지 않다이 만화는 연예계에 박힌 수많은 모래알을 꺼내다가 살펴보는 작품이고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그중에서도 모두가 못 본 체하는 바로 그 돌멩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아까 그 얘기… 다른 데서 하면 절대 안 된다알지?” 마케팅이라며 매니저는 팬들의 동성애 코드 문화를 묵인하지만정작 멤버인 아이나가 같은 남성을 좋아한다고 밝히자 눈에 띄게 당황한다같은 멤버인 규원은 팬들의 동성애 코드를 가장 즐기지만 남성 동성애자인 아이나와 한 숙소를 쓰는 게 조금 그렇다고 지호에게 말한다.

애써 모르는 척못 본 척 돌아가는 이 환상적이고 자유로운 세계의 모순이 바로 여기에 있다매번 색다른 것을 추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지만 동시에 다수의’ 대중의 심기를 거슬러선 안 된다는 것괴이한 것들은 언제나 콘셉트나 약속된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수렴되며 그걸 현실로 꺼내 오는 건 금기로 치부된다그렇게 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결말로 끝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그 과정에서 라이나 아이나 같은 누군가의 발바닥은 필연적으로 쓸리고 피딱지가 앉는다에이리언 아이돌이 민감한 소재를 끈질기게 들여다보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라이의 말처럼, “웃고 있는 다수 뒤에 움츠러드는 소수가 있기 때문에.

스타가 되고 싶어!” 근래의 아이돌을 다루는 작품들은 더는 꿈을 이루기 위한 주인공의 마냥 눈물겨운 여정을 그리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이들이 주목하는 건 이 무자비한 생태계의 혼란스러움이다성공과 추락양지와 음지논란과 해명웹소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미묘한 생리를만화 최애의 아이가 적나라한 업계의 그림자를 묘사하며 인기를 끌었듯이 말이다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이 세계의 한복판에서 에이리언 아이돌은 거대한 함성 속 침묵하고 있던 미묘한 차별들을 불러낸다이런 작품이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필진이미지

김민경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최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