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숨 쉬는 공기, <삼봉이발소>
『삼봉이발소』, 하일권

하일권의 감성은 언제나 하늘을 가르는 유성우처럼 사람의 폐부를 찌르고, 청춘의 열병처럼 정신을 물들이다가, 뜬금없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장막을 수놓으며 ‘그냥 그런 기분이 드는’ 총천연색의 꿈을 선사하는 듯합니다. 그러다 나비의 푸른 날개조차, 한 떨기 붉은 이파리조차 모두 그저 그런 빛깔로 보일 정도의 진한 저녁놀이 담긴 정서가 자연스럽게 계절을 부르듯, 아무렇지 않게 ‘평범하게’ 작품을 자아냅니다.
그런 그가 <삼봉이발소>를 통해 현실과 그 내면을 갈마들며 사랑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남녀가 서로에게 솔직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한번 평범하게 진단합니다.
<삼봉이발소>는 '외모 바이러스'라는 정신적 질병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휴머니즘 웹툰입니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분노를 자극해 자신을 파괴하게 만드는 외모 바이러스는 의학적인 치료법이 없어 감염자가 자기 파괴의 끝에서 삶을 스스로 포기하길 지켜볼 수밖에 없는 병입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시대에 마치 기적처럼 나타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삼봉이발소의 주인 김삼봉입니다.
평소의 그는 한쪽 눈을 가린 채 속세의 연 따위에 전혀 관심 없는 듯 무정하게 담배를 물고, 평범하게 이발소를 운영하는 범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뢰’가 들어오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자기 상체보다 더 큰 ‘가위’를 챙겨 들어 고양이 ‘믹스’와 함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퇴마사’로 변신합니다. 김삼봉의 퇴마는 거대한 가위로 외모 바이러스 감염자의 가슴, 즉 내면을 찌른 뒤 단짝 고양이 믹스의 침을 빌려 이마에 바르고 통로를 만들어 내면으로 들어갑니다. 이어 외모 바이러스 뒤에 숨어 있는 감염자를 ‘빛의 현실’로 이끈 후, 마무리로 큰 가위로 멋지게 이발을 해주며 끝이 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퇴마 의식’에서 중요한 점은, 항상 저녁놀의 빛깔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생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했을 때 저녁놀의 색상을 떠올리기 때문인데, 아마 작가도 그런 의미에서 그 배경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됩니다.
위대한 대문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생의 가장 멋진 순간이 언제인지를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눈길을 외부로만 향하고 있는데, 그것을 그만두고, 당신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보십시오.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창고를.”
이처럼 생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보물의 색상이 저녁놀의 빛깔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삼봉이발소>의 여주인공 ‘박장미’를 자신의 보물창고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무채색의 인물로 설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김삼봉이 “얼마나 예뻐지고 싶냐”, “노력이라도 해봤냐”라며 현실을 직시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장미가 자신의 빛깔로 가득한 보물창고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독설임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김삼봉이 감염자의 외모 바이러스를 치료하면서 “사회가 너를 편견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너의 시선이 그 편견을 사회에 투영하는 것”이라며 장미에게 에둘러 표현하는 장면 역시, 그의 애틋한 감정과 작가의 의도가 담긴 <삼봉이발소>의 중요한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삼봉이발소>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편견에 갇혀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동고 육상 최고의 단거리 선수 ‘신데레라’는 왕자를 좋아하지만, 왕자는 이름처럼 ‘왕자’ 같은 미남이기에 자신을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삼봉이발소의 소문을 듣고 찾아가 김삼봉의 도움으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외적으로 형상화한 뒤 왕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왕자가 자신이 학교에서 전력 질주하던 시절부터 남몰래 자신을 흠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왕자가 외형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참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 역시 진즉 사람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결코, 그녀를 울리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테죠. 과거를 후회한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기에, 사람들은 남몰래 가슴 한편에 평생토록 쓰릴 이목구비 하나를 구태여 자리 잡게 하는 것이겠지요. 그 옹기종기 자리한 이목구비는 이제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을 텐데 말이죠.
마법 같은 능력으로 외모 바이러스를 퇴마하던 김삼봉은 어느 날 믹스와 함께 마치 ‘내가 숨 쉬는 공기’처럼 홀연히 사라집니다. 저녁이면 놀이 드리우는 언덕에 앉아 평생 목가적인 삶을 살아갈 것만 같던 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능력을 다 써버린 나머지, 그에게 능력을 부여한 신적인 존재가 그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을까요. 아니면 믹스와 단둘이 외모 바이러스를 퇴마하기엔 역부족이라 느껴져, 평소 박장미에게 농담처럼 말하던 ‘나메크성’으로 돌아갔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대한민국 남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군 복무를 위해 ‘평범하게’ 군대에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어디로 갔든, 특유의 무정한 태도로 저녁놀을 벗 삼아 어디선가 무사히 숨 쉬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독설과 함께 ‘치료’를 진행하겠죠. 누군가의 ‘소중한 꿈’과 잊고 있던 ‘보물창고’를 찾아주기 위한 진정한 ‘퇴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