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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살았습니다, <사람의 탈>

사람의 탈(우주돌, 네이버웹툰) 리뷰

2025-08-14 한유희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살았습니다

『사람의 탈』, 우주돌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퇴마사인 K-pop 인기 걸 그룹 헌트릭스가 보이 그룹 사자보이즈로부터 팬들을 지켜내는 이야기다. 악령을 퇴마하는 과정이 돋보이는 이유는 사소한 소재와 개연성 있는 전개 덕분이다. 조선시대 무당부터 이어져 온 노래와 춤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행위를 K-pop 걸 그룹으로 연결하는 서사를 통해 굿을 아이돌의 무대로 탈바꿈한다.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주목받은 것은 소재뿐만이 아니다.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호랑이 더피는 귀여운 외모와 사랑스러운 행동으로 인기를 독차지하며 마스코트 같은 킬링 포인트가 되었다. 왜 수많은 동물 중에 호랑이여야 했을까? 한국에서 호랑이는 중요한 존재이며 이는 전래 동화와 속담에 호랑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군 신화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사람의 탈>은 왕이 되고 싶은 호랑이와 그를 사냥하는 착호꾼의 이야기다. 조선을 모티프로 한 극 중 배경 신조선의 후예가 하늘의 선택을 받아 왕위를 이어간다. 곰과 호랑이는 단군 신화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흥미롭게도 곰은 왕조의 시초가 되지만, 호랑이는 배제된다. 두 동물 모두 신성한 존재임에도 곰만 하늘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단군 신화에서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는 것처럼, <사람의 탈> 속 바인아차는 산신인 점을 미루어 볼 때 신조선의 시작도 단군 신화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의 탈>의 호랑이는 귀여운 더피와는 다르다. 단순히 호환(虎患)의 존재로만 치부할 수 없는 복잡한 욕망의 집합체다. 산신은 살육을 벌이는 호랑이들을 위해 정화 의식을 베풀고, 호랑이들은 이를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언제나 의문을 품는 존재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그 대표적인 존재가 사풍이다. 누구보다 강한 아버지 호걸의 아들인 사풍은 산군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며 호랑이와 산신 간의 규칙을 지킨다. 신조선의 왕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말을 들은 후, 사풍은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토록 강했던 아버지의 몰락을 보며 자신이 왕좌에 올라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강함을 알기에, 오히려 한계까지 인식했기 때문이다. 욕구가 욕망이 되자 사풍은 폭풍처럼 변하고 호랑이와 인간의 갈등은 심화된다. 세상의 왕이 아닌 산의 왕에 머물러야 하기에, 욕망할수록 갈증이 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하늘의 뜻을 받지 못했다면, 스스로 하늘이 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원혼은 떠나지 못하고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귀신이 된 사람들을 무기로 사용하며 문제가 발생한다. 호랑이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다. 문제는 창귀를 지닌 호랑이를 사냥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창귀를 무기로 쓸 수 있는 착호꾼뿐이라는 점이다. 창귀가 된 존재들은 아이러니하게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던 이들이다. 원한이 떠나지 못해 귀신으로 남아 호랑이와 착호꾼 사이에서 희생된다. 주인공 봉산이 착호꾼이면서도 창귀를 무기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원혼을 도구로 이용하기 싫어서이다.

탈춤은 동화(同化)’에서 기인한다. ‘을 통해 동물의 상징적인 행위를 동기화하여 춤을 추는 것이다. 연희적 속성 때문에 봉산은 창귀를 활용할 수 없다. 탈춤을 추는 산신의 후예로서 봉산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광대를 택했기 때문이다. 탈춤이 창귀를 씻어내는 행위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 봉산이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의 스승은 창귀를 씻어내기도 했다.

봉산은 착호대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그에게는 호랑이를 사냥하는 것보다 스승의 뜻인 사람의 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길에서 약하고 죽어가는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봉산이 선택한 존재들이 강한동물이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봉산이 스승 바인아차의 뜻을 이해하고 만든 탈은 사슴이다. 탈을 통해 동화되는 경험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이다. 또한 탈춤은 결국 사람들을 위한 재미있는 한 판 놀이여야 한다는 기본을 이어가고자 한다. <사람의 탈>은 정의와 도덕을 교조적으로 설파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무엇인지,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할 뿐이다. 약한 자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봉산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관계들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변주를 위한 변주에 의한 

<사람의 탈>에서 지속적인 전투 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은 탈마다 가진 독특한 특징을 통한 탈춤의 변주다. 밀도 있는 작화는 이야기에 추진력을 더하며 동물들만의 특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탈춤을 재구성한다. 1부가 끝난 지금, 앞으로 풀어나갈 이야기는 많다. 연재 내내 곳곳에 뿌려놓은 우리나라 옛이야기 소재들을 다시 찾아 곱씹어 보며 2부를 기다려볼 만하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감투 쓴 호랑이처럼 전래 동화를 재해석한 이야기가 작품 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을 원하기에, 앞으로 또 어떤 옛이야기를 엮어낼지 기대하게 된다. 호랑이굴로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하는데, 호랑이 굴로 향하는 봉산과 착호대는 과연 어떤 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필진이미지

한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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