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함 속 날 선 분노, 만화 주인공의 등장
우리는 언제부터 ‘법대로 해결하자’는 말보다 ‘누가 대신 시원하게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었을까. 학교폭력과 보이스피싱, 권력형 범죄 같은 현실의 사건은 좀처럼 속 시원하게 끝나지 않는다. 가해자는 예상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오랜 시간 자신의 피해를 증명해야 한다. 이런 인식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법과 제도보다 빠르고 과감한 정의를 상상하게 된다. 최근 웹툰과 드라마에서 이른바 ‘사이다 서사’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부장’이라는 이름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쉽게 마주칠 법한 중년 직장인을 떠올리게 한다. 조직 안에서 이름 대신 직급으로 불리며 가족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작품은 이 익숙한 인물을 가장 비현실적인 영웅으로 뒤집는다. 허허실실 웃으며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그의 정체는 남·북파 공작원 출신의 전설적인 특수요원.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던 그는 딸 민지가 위험에 처하자 다시 싸우기 시작한다.
은퇴한 실력자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 돌아온다는 설정 자체는 낯설지 않다. 다만 <김부장>이 다른 사이다 서사와 구분되는 지점은 액션의 출발점에 있다. 그의 주먹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거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뿐인 딸을 지키려는 가장 사적인 감정이 모든 폭력의 이유가 된다. 독자는 초인적인 능력보다 자식을 잃을지 모른다는 아버지의 절박함을 먼저 이해한다.
<김부장>의 사이다 액션은 웹툰에서 더욱 과감하게 펼쳐진다. 은사 한 가닥으로 여러 명을 제압하거나 한 사람이 수십 명을 상대하는 장면도 만화의 칸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웹툰은 움직임의 전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공격이 시작되는 장면과 상대가 쓰러지는 장면 사이의 시간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메워진다. 작가는 가장 강렬한 순간만을 선택하고 독자는 생략된 움직임을 상상해 연결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속도와 힘도 이 과정에서 하나의 쾌감으로 완성된다. 세로로 이어지는 스크롤은 액션의 속도를 높이고, 어느 순간 화면을 꽉 채우는 이미지는 타격의 감각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처럼 웹툰 속 김부장은 현실의 중년 남성이라기보다 독자의 답답함을 대신 해소하는 ‘인간 병기’에 가까워진다.
웹툰 <김부장>에서 드라마 <김부장>으로
하지만 이런 만화적 과장은 드라마화한 <김부장>에서는 다르게 표현된다. 드라마에서는 카메라가 배우의 움직임을 통해 공격의 시작과 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웹툰에선 상상력으로 채워졌던 칸과 칸 사이를 이제는 배우의 몸과 호흡이 대신 채워야 한다. 잠깐의 망설임, 거칠어진 숨, 충격을 견디는 몸의 반응처럼 웹툰에서는 생략되던 것들이 실사에서는 오히려 중요한 감각이 된다. 웹툰이 김부장의 압도적인 능력을 먼저 보여준다면 드라마는 그 능력을 다시 꺼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불안과 고통을 더 가까이 끌어온다. 즉, 같은 이야기라도 웹툰이 판타지의 통쾌함을 극대화한다면 드라마는 그 판타지에 몸의 무게와 감정의 시간을 덧붙이는 셈이다.

늦지 않게 도착하기를 기다린다는 것
물론 우리가 이 모든 폭력에 이토록 쉽게 이입하는 것은 단지 액션의 쾌감 때문만은 아니다. 딸의 눈에 비친 아빠는 무슨 말을 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무기력한 얼굴은 실은 딸을 위해 자신의 과거와 능력을 감춘 채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온 오랜 ‘인내’의 다른 이름이었다. 김부장이 흘리는 피가 대의나 정의가 아니라 오직 딸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독자와 시청자가 그의 잔혹한 폭력까지 감정적으로 납득하게 하는 강력한 면죄부가 된다. 그의 주먹이 향하는 곳에는 딸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두려움이 먼저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사건을 따라가며 목격하게 되는 부조리한 생태는 현실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딸의 흔적을 쫓으며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불량 학생 무리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이 얽힌 거대한 카르텔이다. 가해자는 쉽게 잡히지 않고 처벌은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고통에 비해 늘 가볍다. 반성문 한 장으로 끝나는 처벌과 피해자에게 평생 남는 낙인 사이에는 (사회) 시스템이 좁히지 못하는 거리가 있고, 대중은 그 거리 앞에서 서서히 법과 제도에 피로감을 느낀다. 김부장이 법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가해자를 직접 응징할 때 우리는 현실의 불신이 만들어 낸 가장 통쾌한 상상적 해법을 맛보게 된다.
현실에는 우리를 대신해 은사를 휘둘러 줄 김부장도, 법의 빈틈을 메워 줄 초월적 영웅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이 허구의 활극이 위로가 되는 것은 그 안에 담긴 부성애와 분노만큼은 진짜이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마음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팍팍한 하루를 버텨내는 이들에게 <김부장>의 거침없는 주먹은 오락을 넘어 지금 이 시대의 대중 서사가 건넬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뜨거운 위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