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들이 소년만화를 만났을 때, <작두>
무속과 간지로 쓴 오컬트 판타지
![웹툰 <작두> 웹툰 <작두> 메인 이미지. [인터넷 갈무리]](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7/20261028092727258_SCKDSNX2.png)
무속, 이제 공포를 넘어 판타지가 되다
2024년 영화 <파묘>의 흥행 이후 한국의 무속신앙은 대중문화에서 다시금 주목받는 소재가 되었다. 오컬트를 향한 관심은 영상과 소설뿐 아니라 웹툰에서도 발견된다. <연애혁명>의 232 작가가 스토리를, <레사>의 POGO 작가가 작화를 맡은 <작두>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작두는 무당이나 박수가 신내림을 받을 때 맨발로 올라서는 날붙이다. 날 위에 서고도 베이지 않는다는 것은 신의 힘이 깃들었다는 증거다. 제목부터가 이 작품이 다루는 세계를 암시한다. 신을 받아들이는 몸과 그 몸이 감당해야 하는 위태로움이다.
주인공 권용진은 미신 따위 믿지 않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러나 열여섯 생일을 기점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귀신들과 마주하고, 위기의 순간 나타난 조상 '진'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뜻하지 않은 모험, 갑자기 나타난 멘토, 수련과 각성. <나루토>와 <스파이더맨>에서 익히 보아온 영웅 성장 서사의 전형적인 출발이다. <작두>는 이 익숙한 구조를 굳이 비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단단한 서사 위에 한국의 무속과 간지라는 낯선 세계를 쌓아 올린다.
십이지에서 십간으로, 신들의 세계가 확장되다
동아시아의 신화와 설화는 오래전부터 만화의 풍부한 자양분이었다. 중국의 <서유기>에서 영감을 받은 <드래곤볼>, 구미호를 활용한 <나루토>, 십이지를 소재로 한 <후르츠 바스켓>과 <꾸러기 수비대>가 대표적이다. 한국에도 <신과 함께>와 <호랑이형님>처럼 전통 설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존재한다. 다만 <작두>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소재를 장기 연재형 소년 배틀만화의 문법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간지(干支), 즉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가 있다. 처음에는 열두 동물에 해당하는 지지신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천간에 해당하는 십간의 신들까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한 십이지신 배틀물에서 한층 방대한 세계관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사주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러한 설정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천간은 하늘, 지지는 땅에 대응한다. 이를 하늘과 땅, 인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천지인(天地人)의 관점으로 확장해 읽는다면, 권용진은 그 질서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가 된다. 그는 신들의 균형을 뒤흔들 가능성을 지녔기에 위험한 동시에 비범한 인물이다.
물론 복잡한 신격 체계와 낯선 용어는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작두>를 읽기 위해 처음부터 사주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 작품은 권용진의 시선을 따라 세계관을 조금씩 드러내며, 앞서 던져둔 복선들을 장기적인 서사 안에서 회수한다. 방대한 설정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독자에게 친숙한 성장 서사다.
홍익인간, 가장 한국적인 영웅의 사명
권용진은 주변 인물들로부터 끊임없이 능력을 의심받고 폄하당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좌절의 이유로 삼기보다 성장의 동력으로 바꾼다. 72화 '수련(1)'을 기점으로 다시 일어서는 용진의 모습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영웅 서사의 쾌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101화 '맹세'에서 용진은 마침내 왼팔에 깃든 흑룡을 제 힘으로 다스리기에 이른다.
<작두>는 결핍을 지닌 소년이 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 위에 한국적인 가치관을 덧입힌다. 특히 70화에서 '진'이 언급하는 '참부호인(斬不護人)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압축하는 말이다. 부정한 것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고,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뜻이다. 단군이 하사한 검 '작두'에 담긴 이념은 작품 속 신들의 힘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묻게 한다.
이는 권용진의 성장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강한 적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그 힘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무속, 간지, 천지인, 홍익인간. <작두>는 한국적인 소재를 외형적인 장식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사의 동력으로 활용한다.
![<작두> 70화 일부 진은 용진에게 건넨 작두가 '참부호민 홍익인간'의 뜻을 담은 단군의 검임을 밝힌다. ⓒ232·POGO/네이버웹툰 [필자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7/20261028092915986_DC2OHZ96.png)
232의 대사와 POGO의 액션, 만화의 쾌감을 완성하다
이러한 세계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두 작가의 역량이다. <연애혁명>에서 동시대 청소년의 말투와 밈, 인물 관계를 생생하게 포착했던 232 작가는 <작두>에서도 묵직한 메인 플롯 사이의 작은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신들의 세계를 다루면서도 인물들의 대화에는 현실적인 생동감이 남아 있다.
<레사>로 이름을 알린 POGO 작가의 역량은 액션에서 빛난다. 이 연출이 정점에 이르는 것이 101화 '맹세'다. 용진이 흑룡을 부르는 외침과 함께 파랑, 빨강, 노랑, 하양, 초록의 빛줄기가 소용돌이치고, 그 한가운데에서 검은 용의 붉은 눈이 번뜩인다. 청·적·황·백·흑, 무당의 옷과 오방기에 깃든 오방색이 화면을 휘감는 셈이다. 작가는 이 장면에 긴 스크롤을 아낌없이 내준다. 신을 몸에 받고도 베이지 않는 것이 작두라면, 이 장면은 용진이 처음으로 작두 위에 올라서는 순간이다.
![<작두> 101화 '맹세' 일부 권용진이 왼팔에 깃든 흑룡을 마침내 다스리는 장면으로 긴 스크롤을 오롯이 이 순간에 할애했다. ⓒ232·POGO/네이버웹툰 [필자 제공]](https://www.kmas.or.kr/img/archive/webzine/bbs/images/000087/20261028093016530_VM9V0RNP.png)
<나 혼자만 레벨업>을 비롯한 수많은 액션 판타지로 독자의 눈높이가 상향평준화된 지금, 화려한 전투만으로 차별성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스크롤은 몇 초 만에 지나가지만, 그 순간의 쾌감을 위해 작가들은 수많은 구도와 후보정을 쌓는다.
<작두>의 액션은 각 신격에 대응하는 동물의 형상을 전투 장면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십이지신의 고유한 특징이 움직임과 능력으로 시각화되며, POGO 특유의 안정적인 데포르메가 화려한 장면에 설득력을 더한다. 232가 현실적인 청소년의 감각을 붙잡는다면 POGO는 초현실적인 신들의 세계를 구현한다. 두 작가의 개성이 만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셈이다.
한국의 신들은 어디까지 나아갈까
<작두>가 월드 웹툰 어워즈 본상 후보로 주목받은 이유는 어느 한 가지에 있지 않을 것이다. 탄탄한 팬덤을 지닌 두 작가의 역량, 누구나 몰입할 수 있는 영웅 성장 서사, 그리고 한국적인 소재를 세계관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기획력이 맞물린 결과다.
물론 익숙한 성장 서사와 방대한 세계관 설정은 자칫 예측 가능한 전개나 복잡한 설명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작두>는 한국 전통의 상징을 현대적인 판타지로 재창조하며 독자적인 매력을 구축하고 있다. 각기 다른 능력과 개성을 지닌 신격들은 영상과 게임 등 다른 매체로 확장될 가능성도 품고 있다.
'K-콘텐츠'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금, 무엇이 한국적인 이야기인가. <작두>는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오늘날의 독자가 즐길 수 있는 이야기로 다시 만드는 일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두 위에 선 소년이 앞으로 어디까지 걸어갈지, 계속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