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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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해준 예술 : AI가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리시오. <일립예고 학생들>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온전한 ‘나’와의 대면을 알려주는 웹툰 <일립예고 학생들> 리뷰.

2026-11-02 김민영

나를 구원해준 예술 : AI가 그릴 수 없는 그림을 그리시오. <일립예고 학생들> 


수년의 세월을 바쳐 숙련하고, 갈고닦은 장인들의 세월을 단 몇 초 만에 무력화하는 AI의 습격 앞에서 오늘날 창작자들의 분노는 단순한 투정이 아닌 생존을 향한 처절한 아우성이 되었다. 생계의 벼랑 끝에서 터져 나오는 창작자들의 절박한 비명과 몸부림의 교차로 속에서도 기술은 더욱 견고한 성벽을 쌓아 올리는 중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헌책을 대량 구매 후 스캔하고, 파기하는 것으로 의심되어 논란의 중심에 선 인공지능 기업. 이제는 인간 본연의 순수 창작물 원천까지도 독점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세상에서 갖가지 창작물들은 어떤 의미를 품어내는지…. <일립예고 학생들> 속 천재 화가로 불리었던 소이는 예술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린다.


“예술은 뭐라고 생각해?”

“나”


소이의 예술관. [필자 제공]


소이에게 캔버스는 결코 경제적 생산성의 도구로 환원될 수 없다. 그녀에게 예술은 실존의 불안과 세계의 균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창(窓)이기에. 

따돌림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은 채 그림만 그렸던 소이는 어릴 때부터 천재 화가로 명성을 알리며, 그림을 매진시키던 유명 인사였다. 인터뷰에서 예전처럼 그림이 안 그려진다는 말을 했다가 입시 미술의 폐허라는 이슈로 매스컴화 되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던 소이에게 그림은 자신을 짓누르는 실존적 무의미와 부조리를 견뎌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왼쪽부터) 무너지는 한솔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류아연. 유아연의 상상. 자신의 잘못을 짐작하는 류아연. [필자 제공]


고도로 발달한 우정은 사랑과 구별할 수 없다고 했던가. 그런 소이를 벼랑 끝으로 밀었던 류아연과 소이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준 한솔이 묘한 관계로 엮이면서 지독한 삼각관계가 펼쳐진다. 타향살이하던 한솔에게 큰 위로를 주었던 류아연이 사실은 소이를 지독하게 괴롭혔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 고통에 빠지는 한솔. 소이를 괴롭히기 위해 옆에 있던 한솔에게 접근했다가 그녀에게 진정으로 우정의 감정을 알아버린 류아연.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알고, 다시금 두려움과 배신감, 고통을 느끼게 되는 소이. 이 삼각관계를 작가는 지독하고도 치밀하게, 그리고 촘촘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때까지 가해자들의 단순한 권선징악 스토리는 많았지만, 그 캐릭터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유대가 형성되는 지점, 그리고 그 유대가 자신의 업보와 맞물려 내면의 지독한 후회와 고통을 치밀하게 추적하여 보여준다는 지점에서 스토리가 상당히 참신하다. 여기에 소이에 대한 죄책감과 류아연이 준 위로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솔의 행동은 매화 독자들에게 윤리적 화두를 던지는 용광로 속 감자가 되고 있다. 작가는 이 미묘한 관계와 감정선을 매우 능숙하게 조율하며 독자들과의 줄다리기를 지금까지도 노련하게 이어가는 중이다. 


(왼쪽부터) 고통받는 소이. 자책하는 소이.


소이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괴롭힘의 수위가 남달랐던 류아연이었기에 아직까지 그 고통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자신과 류아연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소중한 친구 한솔을 위해 류아연을 용서해 보기로 다짐하지만, 류아연의 반복되는 악행으로 그 마음은 다시금 무너진다.


모든 관계는 끓어오르는 비등점을 품고 있고, 인간관계라는 거대한 기제는 늘 등가교환의 환상을 심어준다. 내가 준 온기만큼의 온기가 돌아올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 그러나 소이가 직면한 실존적 고통은 그 기교의 균열에서 온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역설적으로 ‘타자’라는 절대적 타협 불가능한 지옥 속에서만 비로소 자아의 형상을 빚어낼 수 있다는 형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왼쪽부터) 캔버스 앞에 선 소이. 소이의 상상.


소이가 방 안의 어둠으로 도피했었던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한 개인이 버텨낼 수 있는 생존의 한계를 아득히 초과한 폭력으로부터 살아내기 위한 고립이었을 것이다. 그런 소이가 이제는 자신의 감각과 지각, 사유로 싸인 자기 증명을 위해 다시금 펜과 붓을 쥔다. 소이에게 예술이란, 외부 세계라는 타자와의 소통인 동시에, 사회적 가면을 차단한 채 추악하고도 찬란한 ‘나’라는 심연과 마주하는 유일무이한 실존적 절차이다. 


유아연에게 진심으로 충고하는 한솔. [필자 제공]


자신의 아픈 과거는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따돌림과 방관, 그리고 타자를 향한 폭력은 늘 이 사회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반복되어왔으며, 소이가 겪은 고통 역시 인간 사회가 지닌 이 거대한 야만성의 파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적 연대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타자를 향해 겨누어진 악의는 결국 인과율의 궤도를 따라 가해자 자신의 영혼과 인간성을 가장 먼저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폭력으로 환원된다. 우주라는 거대한 연쇄 속에서 타인은 나를 이루는 또 하나의 우주인 까닭이다.


(왼쪽부터) 한솔의 발화. 과제를 발표하는 한솔.


타자가 선사하는 지옥 같은 상처와 관계의 균열 속에서도 소이가 쥔 붓은 결국 세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되고, 효율성만이 찬미되는 AI 시대에 예술이 품어내는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것은 매끄러운 모사품이 아니라, 오직 유한한 인간만이 통과해 낸 상처와 구원의 연대기 속에서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온전한 ‘나’와의 대면일 것이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베어 문 채 붓을 쥐어짜는 아이들의 숨소리를 느끼고 싶다면, 그 고통이 예술이라는 또 다른 ‘자아’의 형상으로 승화되는 장엄한 과정을 함께 통과해보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이 웹툰에 발을 들여놓기를 강력히 권해본다.



필진이미지

김민영

고려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박사과정
그림과 매체, 그리고 문학의 경계에서 미학적 궤적을 포착하여 글을 씁니다. 
세상 모든 예술가들의 대체불가능성을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