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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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요즘 가장 ‘핫’한 한국영화는 누가 뭐래도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주연의 “내부자들”이다. 만화가 윤태호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화제의 ‘청불’영화는 개봉한지 한 달 만에 700만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고….

2016-01-13 최정미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 영화 ‘내부자들’, 이강희(백윤식 扮)의 대사 中에서 발췌
요즘 가장 ‘핫’한 한국영화는 누가 뭐래도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주연의 “내부자들”이다. 만화가 윤태호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화제의 ‘청불’영화는 개봉한지 한 달 만에 700만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고, 이 기세에 힘입어 50여 분의 분량이 추가된 감독판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이 별도로 개봉했으며, 그간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던 기록인 “타짜”(2006)가 갖고 있던 역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영화의 최고 관객 수 684만 명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감독판인 “내부자들-디 오리지널”도 상당한 호평 속에 개봉 일주일 만에 이미 90만 명을 넘어섰다. 역대 감독판(또는 확장판)의 흥행성적 중 최고라고 한다. (‘청불’영화의 역대 흥행 1위는 2001년에 개봉해 818만 명을 동원한 “친구”라고 하는데, 영화진흥위원회 공식집계제도가 시행되기 전이라 공식순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도 이 영화를 봤지만(일반판, 감독판 모두), 영화의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을 차치하고도, ‘어둡고 잔인하며 무거운 줄거리’를 담고 있는 이 ‘19금 영화’가 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으며 탄탄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이 영화가 이토록 사랑받게 된 특별한 원인이나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일까? 필자의 지인 중 한 사람은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내부자들의 흥행 이유는 아마도, 공분(公憤)때문일 것이다. 기득권층·권력층·사회지도층에 대한, 일반대중이라 불리는 ‘서민’들의 강력한 분노, 그만큼 지금의 한국사회가 살기 퍽퍽하고, 헤게모니를 쥔 자들이 결탁해서 벌인 권력형 비리들이 한국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필자도 지인의 이러한 분석에 동의한다.

홍준표 경상남도 도지사는 12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화 “내부자들”을 관람한 후 느낀 점을 장문의 메시지로 적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홍준표 도지사는 “지난 주말 내부자들이란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지난번 ‘베테랑’과 같은 포맷으로 만든 영화인데 ‘베테랑’은 재벌혐오를 배경으로 소시민 출신인 하급경찰이 통쾌하게 재벌가를 단죄함으로써 서민들에게 대리만족을 준 반면에 ‘내부자들’은 한술 더 떠 재벌혐오에 정치혐오, 검찰혐오, 언론혐오까지 보태 한국사회 리더그룹들을 모두 파렴치한으로 만든 그런 영화였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렇게 극단적인 설정을 해서라도 서민들이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면 힘든 세모에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영화의 소재가 성역이 없는 지금 장르의 다양성으로 한국영화가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것은 반가운 일이나 좀 더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영화는 없을까요?”라고 덧붙였다.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모래시계 검사’를 거쳐 국회의원, 한나라당 당대표를 역임하고 경상남도 도지사가 된 홍준표 지사의 이러한 영화평에 대해 네티즌들은 다양한 반응들을 보였으나, 대체적으로 싸늘한 정서로 홍준표 지사를 과감하게 비꼬았다. (‘왜? 찔리냐?’같은 직설적인 반응부터, ‘사실 영화가 아니라 진실 아닌가, 소재 자체가 뉴스에 보도된 실제 있었던 권력형 비리들뿐인데’ 같은, 아주 매서운 반응까지) 이 모습들을 보고 필자는 한 번 더 확신하게 되었다. “내부자들”에 대한 지인의 분석은 정확했구나라고.

“검찰청 보도자료를 베이스로 조지라고! 우리가 따로 취재했던 거 있지?”
“예, 검찰 시각과 다소 다른 점이 있습니다.”
“킬 해! 기사 베이스는 검찰 보도자료로 통일! 이번 건은 검, 경을 좀 빨아줘야 돼. 위원님도 같은 생각이시죠?”
“알겠습니다. 인류에 기여하는 창조적 예술적 그래피티의 역사와 그에 반해 왜곡과 기만의 선봉에 쓰이는 그래피티를 논할 예정입니다.”
“적절하군요. 3일 정도 때려주세요.”
“오히려 이슈화되어 반동 효과 나는 거 아닌가요?”
“이봐! 신문은 사회의 공기(公器)야! 그런 걸 두려워해서야 되겠나!”
-<내부자들> 단행본 30~32p, 수도일보 편집회의 장면 中에서 발췌
동명의 영화 원작인 윤태호의 미완결 웹툰, <내부자들>은 한겨레신문 인터넷판 ‘오피니언 훅’섹션에서 2012년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당시 갑작스런 연재중단 소식에 많은 팬들과 독자들이 아쉬움을 표명하며 그 이유를 무척 궁금해 했으나, 윤태호는 "모든 균열이라는 것은 내부의 조건이 완성시킨다"라는 문장을 적어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 내 안에서도 균열이 찾아왔고 이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제작 중단 이유를 밝혔다(후에 3년이 지나 영화가 개봉할 때, 프리미어 행사나 인터뷰를 통해 윤태호는 위와 비슷한 이유를 다시금 밝혔다. 요지는 현재 자신의 역량으로는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로 기억한다). 단행본으로는 2012년 10월 22일에 씨네21북스를 통해 1권만이 출간되었고 그 뒤로는 후속권이 출간되지 않았다.(출판사에 문의해보니 더 이상 후속권의 출판예정은 없다고, 죄송하다는 담당자의 사과가 있었다. 1권 맨 끝의 ‘2권에 계속’이라는 문구가 너무 안타깝다. 실제로 연재된 분량도 1권만으로는 다 수록되지도 못했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내부자들>이 다루는 권력형 비리의 핵심에는, 그간 영화나 드라마, 소설, 만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자주 다뤄졌던 재벌과 정치인의 결탁만이 아니라, ‘언론’이라는 사회의 공기(公器)가 새롭게 추가된다(사실 이것이 <내부자들>이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가장 크게 차별되는 특징이 아닐까 한다).

‘권력을 설계하는 논설위원’으로 설정된 캐릭터 ‘이강희’는 영향력 1위, 점유율 1위의 보수일간지, 작품 속에서 수도일보라고 명명된 신문사의 논설주간이다. 그는 한국사회의 엘리트로서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며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이력도 갖고 있다. 즉, 권력의 속성과 형성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점유율 1위 일간지의 사설이라는, 매우 강력한 자신만의 지면을 갖고 있으며, 이 무서운 무기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거나 움직여서 어떤 때는 권력형 비리를 앞장서 설계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스폰서의 허물과 죄를 화려한 수사학으로 덮어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는 ‘말은 곧 힘이다’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언어를 정련하여 글로 바꾸고 자신의 글이 매체를 거쳐 여론이라는 ‘사회의 분위기’로 변화해가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매우 큰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위에 열거한 이강희의 자부심과 자신감 그리고 직업적 신념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사명감이자 소명의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강희가 ‘부패한 언론인’이라는 것이다. 이강희는 사회의 공익 또는 사회구성원의 공리를 위해서 자본이나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들에게 꼭 알려야 할 진실이나 정보를 전달해야만 하는 언론인 본래의 책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죄악은 바로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그가 자본과 권력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의 의지로 부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의 괴벨스’ 같은 이강희 곁에는,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맺어온 정치깡패 안상구가 있다. 이강희를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스스럼없이 부르는 조직폭력배 안상구는, 어찌 보면 그간 여기저기서 많이 본 듯한, 매우 전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1988년 수도일보 정치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44세의 이강희는 당시 스물 셋의 겁 없는 청년 안상구를 모처에서 소개받는다. 안상구는 당시 ‘해철이파’라는 신흥조직에서 조장을 맡고 있던, ‘그들’의 눈으로 볼 때 똘똘한 친구였다. 이강희는 첫 대면에서 안상구에게 묻는다. “주먹 쓰는 친구가 똘똘하기까지 하면 사고치는 거 아뇨?” 안상구가 대답한다. “사고 칠 머리까진 없습니다.” 둘을 소개하는 중매인인 ‘어떤 남자’가 끼어든다. “올해 대선에서 큰 역할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안상구가 바로 이강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말한다. “첫 수저 뜨는 일이니만큼 폐 끼치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이강희가 술이 담긴 주전자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한잔 하시오.”

이강희와 안상구의 첫 만남이 담백하게 그려진 후, 다음 장면에서는 1996년, 즉 그들이 만난 지 8년의 시간이 흐른 후의 풍경이 펼쳐진다. 골프장에서 둘은 한가롭게 거닐며 대화를 나눈다. “상구야, 요즘 검찰 장난 없다. 총선 끝나고 대대적인 선거사범 걸고 있어.” 안상구가 팔짱을 낀 채로 대답한다. “그래도 저희가 애쓴 건 알아주시겠죠. 설마 모가지 자를까요?” 이강희가 다시 말한다. “아니다. 내가 월간 수도 기자들 라인으로 보니 야당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아.” “어쩌죠? 제가 달려 들어가면 이쪽도 걸릴 것투성인데.” 둘의 내밀한 대화는 산책 중에 계속 된다. “너 연예기획사 갖고 있지? 지금 몇몇 PD들 작살내고 있거든. 너 뇌물공여로 들어갔다 나와라.” “저 작년에 독립해서 할 일 많은데…” “장필우 믿어봐. 그 양반 너 보고만 있지 않을 거다.” 이강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신호를 보낸 안상구가 다시 한 번 입을 뗀다. “장필우고 나발이고 전 형님만 보고 갑니다.” 껄껄껄 웃으며 이강희가 화답한다. “내 줄이 니 줄이야, 인마.”

사실 ‘정치깡패 안상구’라는 캐릭터는 그리 생소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간 한국 문화영역의 여러 장르(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등등)에서 자주 다루어진 흔한 소재인 것이다. 정치 또는 금력(金力)이라는 강대한 권력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부여잡고, 그들에게 영혼까지 판 것 같은 절실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부역하면서, 신분상승 또는 부귀영화라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을 잔인하게 짓밟거나 정의(正義)를 폭력으로 말살시키는, 그런 표면적인 악(惡)의 상징.

그러나 윤태호는 자신만의 색깔과 관록을 덧칠해 이토록 흔한 캐릭터에 지독하리만치 무서운 현실감을 부여한다. (영화에서 안상구로 분한 이병헌이 너무 잘생긴 얼굴 때문에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폭력배로서 현실감이 다소 떨어졌다면, 만화원작 속의 안상구는 말과 행동, 표정 등등이 너무 리얼해서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 정도다)

원작과 영화는 바로 이 ‘안상구 캐릭터’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가 ‘안상구의 복수극’이고, 주인공인 안상구의 이야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즉 영화적 재미와 장르적 완결성을 위해 원작에는 없는 ‘무족보 검사’ 우장훈까지 등장하는 것이지만, 원작에서 안상구는 스토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퍼즐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는 윤태호가 그린 큰 그림 안에서 스토리의 변화를 위해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 ‘권력에게 버림받은 전직(前職) 내부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원작에는 영화에서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 프리랜서 다큐 사진작가 이상업이 등장해, 안상구의 복수극을 포착, 밀착 취재를 시도한다. 정의감 넘치는 기록자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이상업이라는 캐릭터는, ‘내부자들의 세계’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 안상구의 움직임에 가속도를 덧붙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디까지 나왔나?”
“직접 낙서에 참여한 사람은 총 여섯 명, 대학원생 다섯 명에 교수 한 명입니다.”
“제자들인가?”
“대학교 쪽이 아니고 재야 인문연구조직입니다. 교수가 강좌를 개설했고, 그 수강생들입니다.”
“조직 파악은 됐어?”
“순수 인문연구집단 같진 않고 이런저런 시국사건에 걸쳐 있는 곳 같습니다.”
“엮을 수 있겠나?”
“그곳 탑이 당시 지방에 있었고 이들과 통화내역이 없어 쉽지 않습니다. 조직적으로 역할을 공유했다고 보긴 무립니다.”
“당신들 잘 들으라구... 이거 제대로 엮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거라고. 기강을 세운다는 건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거지. 뉴욕 줄리아니 시장 일화 알지? ‘깨진 유리창 법칙’으로 뉴욕 범죄 발생 건수를 기적적으로 감소시킨 일화 말이야. 그런 거라고. 모든 건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거야. 단지 ‘낙서’ 아니냐고? 뉴욕의 낙서와 서울의 낙서가 뭐가 다르냐고? 다르지! ‘루저’와 ‘가치전복세력’의 행위란 점이! 하지만 ‘청소’의 대상이란 점에선 매우 같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야. 조직적인 공유가 꼭 손을 잡아야 가능할까? 공통의 가치와 지향이 존재한다는 게 곧 ‘조직’이고 ‘공유’지…. 나라에서 주는 월급의 의미를 새삼 강조하지는 않겠어.”
“예!”
“다음은... 뭐지?”
“샘그룹 상속관련, 주주 기망행위, 배임 등 추가된 혐의로 저쪽에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샘그룹 케이제이로펌이 맡고 있나?”
“아뇨. 상속전문단으로 새로 꾸렸죠.”
“아, 그렇지… 김 변호사님 놔두면 굴러갈 거라고… 다음은… 참, 조용해지면 공이나 치자고 연락 올려. 뵌 지 오래다.”
“예.”
“아무튼… 이 반국가적 인간들, 본때를 보여주라고! 나라를 싸움의 대상, 치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 명심해!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깨는 거라고! …상노무 섀퀴들…”
- <내부자들> 단행본 24~29p, 서울지검 검사회의 장면 中에서 발췌

원작을 먼저 접하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도, 이 ‘잘 빠진’ 영화가 원작의 디테일함과 리얼함에 상당히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반대로 영화를 먼저 보시고 원작을 접하신 분들이라면 원작의 넓이와 깊이, 전문성 때문에 다소 산만하고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다. 더구나 원작은 미완이다).


영화의 메인 스토리와 캐릭터들은, 윤태호가 창조해 낸 다양한 생명력 넘치는 특징들 중에서 ‘영화에 어울리고 필요한 부분만 추출해낸 것’이다.(우장훈 검사 역할은 일단 예외로 두자) 가장 큰 증거로, 바로 위에 발췌한 원작의 서울지검 검사회의 장면 같은 것은, 검사들이 어떻게 사건을 조합하고 선별하는지, 수사의 방식을 어떻게 정하는지 결정하는 자리에서, ‘윗선’의 의도를 짐작케 하는 부장검사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물론 이건 실제가 아닌 작가 윤태호의 상상이다. 현직 검사님들은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수도일보 편집회의(본 리뷰에서 발췌한) 장면 역시, 언론사의 ‘윗선’들이, 검찰과 경찰의 ‘정보’를 가지고, 어떠한 ‘논조와 방향성’을 가미해 기사 또는 사설로 다룰 것인가를 정하는 과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영화에서는 ‘감독판’에서 아주 리얼하게 원작의 ‘편집회의’ 장면을 재현해냈다. ‘일반판’에서는 통편집되었다).

원작의 맨 처음, 그러니까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내부자들”의 존재를 윤태호는 자신만의 색깔로 창조해 러프하게 엮어낸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주역이 될 내부자들’은 총 네 명이다. 종로서 정보과 최동희 형사, 수도일보 논설위원 이강희, 서울지검 부장검사 박호형, 일국당 국회의원 김석우. 이들 네 명의 ‘내부자들’의 일상을 아주 어른스러운 느낌으로 적나라하게 부각시키는 윤태호만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지점이 바로 원작 <내부자들>의 프롤로그 부분인 것이다.

사실 원작의 팬으로서 영화를 봤을 때 제일 아쉬웠던 캐릭터가 ‘종로서 정보과 형사 최동희’다. 그는 자신의 직무(기업의 동향파악이나 공안사범, 범죄자들의 비밀감찰 등등)를 이용해 ‘필요한 정보(돈이 될 만한)’나 ‘의뢰받은 정보(스폰서로부터, 또는 윗선에서)’를 내밀히 조사하여 ‘조건’에 따라 취합하고(주기적으로 상대를 도청하는 장면도 여기서 등장한다) 접선장소로 이동해 ‘돈을 받고’ 정보를 팔아넘긴다. 본인도 불법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담담하게 마치 화장실 가듯 일상적인 모습으로 태연히 범죄를 저지르는 ‘종로서 정보과 형사 최동희’의 묘사는 원작에서 가장 빼어난 부분 중 하나였으나, 영화에서는(감독판에서조차) 그저 ‘안상구를 매일 도청하여 감시하고 주기적으로 동향을 파악해 윗선에 보고하는’, 그런 단순한 캐릭터로 묘사되면서 영화 내에서의 비중도 거의 단역 수준으로 끝나버렸다.

어쨌든, 원작 <내부자들>에서는 첫 번째 이야기인 “몫”에서, 미래자동차라는 재벌과 유력 정치인 사이의 비밀스러운 거래를 ‘감히 협박의 대상으로 삼으려 시도했던’, 겁 없는 조직폭력배를 ‘배제’하는 과정을 매우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프롤로그에서 등장했던 <내부자들>이 이 사건의 ‘뒷배경’에서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고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매우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다(안상구와 미래자동차 회장은 원작에서는 이 시점에서야 비로소 등장한다. 영화의 줄거리와는 비슷한 듯 보이나 아예 ‘결’과 ‘깊이’ 자체가 다르다).

첫 번째 이야기만 봐도, 서로의 욕망에 너무나 충실하다 보니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내부자들 사이의 ‘작은 균열’을 어떻게 메워 가는지, 그들끼리 어떠한 행동원리를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영역싸움’을 하는지, 자신만의 ‘전문성’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들끼리의 ‘기브 앤 테이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등등 내부자들 간의 다양한 거래양태에 대한 아주 심층적이고 현실적인 보고서 한 편을 본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자 정동구 교수는 생각한다. 매드니스. ‘정신이상’, ‘광기’로밖에 이해되지 않는 이강희 위원의 태도. 같은 편에겐 지지를. 다른 편에겐 정치혐오를 조장한다. 이 기술은 투박하고 유치하고 저열할수록 효과가 있다. 곧 인터넷은 이강희 위원의 해프닝 동영상으로 도배될 것이고, 사람들은 웃으며 조롱하다 시들해질 것이다. 모든 에너지는 인터넷과 술자리에서 소비되고 사라진다. 놀이가 끝나면 노리개는 버린다. 정치를 희화하는 이유다.”
-<내부자들> 단행본 112~113p, 두 번째 이야기 ‘매드니스’ 中에서 발췌

한겨레 인터뷰에서 "내부자들"의 정의(定義)에 대해 윤태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조직에나 조직의 정서와 반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보수 신문에도 꽤 진보적 정서를 가진 기자가 있습니다. 반대로 진보 신문에서 보수적 마인드를 가진 기자도 있죠. 그런 사람들이 조직에 순응하는 것은 현실적 선택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서죠. 이런 사람들을 내부자들이라고 봤습니다.”

윤태호는 또 <내부자들> 단행본의 작가의 말에 다음과 같이 썼다.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내가 그리려는 대상은 지독할 만큼 탐욕스럽고, 어이없을 만큼 스스럼없이 그것을 드러냈고, 드러난 그것은 보는 사람을 수치스럽게 할 만큼 천박했다. 그 탐욕들을 직조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공상물처럼 허황하고 막장 소재의 드라마처럼 길을 잃기 쉬웠다. 욕하기는 쉬워도 정작 글로 옮기고 그림으로 바꾸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나는 관념을 구체화하지 않았고 내 생각은 파편에 불과했다. 그간 얼마나 피상적이고 표피적인 분노만을 토하면서 살았던가 반성했다. 그럼에도 이 만화를 이어가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잃어버렸다던 십 년은 전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턱없는 고금리까지 붙여 돌려받았다. 잃어버린 주체는 우리였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감독판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치 신들린 듯한 연기를 선보이는 백윤식의 입을 빌려, 감옥(監獄)에 갇힌 이강희는 다음과 같이 얘기하며 다시 한 번 ‘대중의 속성’을 비웃는다.
“질긴 오징어를 누가 계속 씹으려 할까요. 적당히 씹다가 뱉겠죠. 대중은 그런 겁니다. 고민하고 싶은 사람에겐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사람에겐 울 거리를, 욕하고 싶은 사람에겐 욕할 거리를 던져주면 되는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이, ‘추락한 정치깡패와 무족보 검사’가 팀을 이뤄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권력자들에게 대항해, 통쾌한 복수극 한판을 펼치는 오락성과 대중성이 매우 짙은 영화였다면, 감독판(확장판)인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은, 속도감이나 오락성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감독과 배우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영화다. 우민호 감독은 “영화를 보고 경각심을 갖길 원했지 회의감까지 들게 하고 싶진 않았다”고 말하며, 확장판까지 개봉하게 된 것에 감사하면서도 “(마지막에 추가된) 이강희의 각성이 무섭게 보일 수도 있지만 더욱 경각심을 갖고, (진실에 대해) 포기하지 말자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같은 자리에 동석해 감독, 배우들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던 만화가 윤태호는 아직 결말을 내지 않은 웹툰을 두고, “내 만화는 개인적으로 정치 사고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라 내러티브가 강하지 않았다”면서, “최대한 영화가 원작과 떨어지길 원했고, 우민호 감독님의 결말이 나름 최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웹툰을 완결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그는 “이 상황에서 웹툰에 다시 손대면 작품을 기만하는 것 같기에 <내부자들>을 다시 이어갈 생각은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너무너무 안타깝다…).


어느덧 2016년, 병신년(丙申年)의 날들이 밝았다. 아주 오랜만에 훌륭한 원작, 그 원작을 아주 재밌고 인상적으로 각색한 영화, 그리고 명확한 주제의식까지 던져주는 영화의 ‘감독판’까지 동시에 “시장”에 풀렸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오랜만의 ‘웰메이드 종합선물세트’를 모두 꼭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네이버의 영화 소개페이지 “내부자들” 섹션에 가면 윤태호가 영화개봉에 맞추어 새롭게 그린 ‘프리퀄 웹툰’ 3편도 무료로 볼 수 있으니 꼭 참고하시기 바란다. ‘특별 3부작’이라는 제목으로 1부 안상구 편, 2부 이강희 편, 3부 우장훈 편이 게재되어 있다. 원작 웹툰은 현재 볼 수 있는 곳이 없고, 단행본으로밖에 만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