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책읽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권장하는 대국민 취미 활동이다. 우리는 글자를 깨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독할 것을 은근하게 강요 받아왔다. 산뜻한 가을 잔디 돗자리 위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은 가히 낭만적이지만, 아마도 10분 후에 책을 베고 자고 있을 누군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책읽기는 아무나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아닌 것 같은데, 최근 들어 여기저기에서 개성 있는 독립서점이 유행하는 것은 갸우뚱한 일이다. 출판 시장은 침체기라는 소식과, 현대인의 독서량이 최저치를 갱신했다는 조사 결과(2017 문화체육관광부 국민 독서 실태 조사)는 거짓된 정보인 걸까? 대형 서점과 출판사를 물리치고 독립서점과 개인 출판 문화를 부흥시킨 독보적 취향 소유자들의 입장을 웹툰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는 신상 정보를 밝히지 않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 등장한다. 그 누구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데, 이름으로 정의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독특한 개성과 취향의 소유자들이다. 인종과 계급과 출신에 준하지 않고 철저히 독서 습관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이 모임에서 등장인물들은 온전한 소속감을 느낀다. 심지어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고릴라마저도.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은 스크롤을 내려갈수록 나만 아는 줄 알았던 책 고르기 팁 등장에 은근한 미소를 짓게 된다. 동시에 독서 중독자들과 비슷하게 책을 고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내심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른다. 댓글에 줄줄이 달린 전국의 독서 중독자들의 추가 조언들이 꽤나 정보력이 좋은 것도 이 웹툰의 특징이다.
읽을수록 헛웃음을 부르는 것은, 등장인물들에게 다독상 수상 소감을 듣는 듯한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질만 하면 끼어드는 B급 개그들이다. 책을 많이 읽어 머릿속은 지식과 상식으로 가득 찼지만, 친구도 없고 시대 트렌드를 따라가지도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 이미지로 묘사된다. 무뚝뚝함이 뚝뚝 흐르는 그들의 대사와 생활은 짠하고 웃프다.
사실 초반에는 “뭐야 이 B급 감성은!” “뭐지 이 멍청이들은!” 싶다가도, 점점 인물들의 매력을 파악하다보면 나도 저 모임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치는 웹툰이다. 오는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지금도 분명 어딘가에 활동하고 있는 독서 중독자들과 합류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