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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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만화리뷰] 누구에게나 마음의 병이 와요. 그러나 늘 아침은 옵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2017년 저스툰에서 연재한 작품으로, 정시나 작가가 2010년부터 서울 강남 소재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근무하며 느낀 점들을 만화로 풀어냈다. 만화의 시작은 반성이었다고 고백했다. 지인에게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근황을 이야기했다가 환자로 오해받아 기분이 상했고, 곧이어 환자여서 기분이 상했다는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고백이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환자와 의료진도 똑같은 사람이며,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근황은 “병원에 다닌다”는 근황과 전혀 다를 바 없음을 강조하고자 시작한 실천의 결과물이다.

2019-10-24 임하빈



“누구나 마음에 병이 있다. 누구나 어느 날 입원할 수 있다. 치료받을 수 있다. 그걸 알려주려 만화를 그린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2017년 저스툰에서 연재된 웹툰으로, 정시나 작가가 2010년부터 서울 강남 소재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근무하며 느낀 점들을 만화로 풀어낸 작품이다. 만화의 시작은 반성이었다고 고백했다. 지인에게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근황을 이야기했다가 환자로 오해받아 기분이 상했고, 곧이어 환자여서 기분이 상했다는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고백이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환자와 의료진도 똑같은 사람이며,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근황은 “병원에 다닌다”는 근황과 전혀 다를 바 없음을 강조하고자 시작한 실천의 결과물인 듯하다.

 

그리하여 작가의 실제 경험담이겠거니 하는 추측으로 읽기 시작한 만화에는 의외의 배경이 숨어 있었다. 작가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만화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 이 만화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라고 오해하는 것이, 만화를 준비하면서 제일 염려했던 부분입니다. (중략)

누구도 이 만화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허구의 이야기를 짰습니다.”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4-5p.

 




한 인터뷰(조선닷컴, 2017)에서 작가는 “병원에서 기질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조현병 기질이 있다더군요. 그래서인지 환자들과 잘 맞았어요”라고 말했다. 마치 ‘긴장할 때 입술을 무는 습관’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조현병 기질이 있다는 말은 용기도 솔직함도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 작가는 중학생 때 만화가를 꿈꿨으나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했을 때 좌절감을 겪고 다른 진로를 택했다고 했다. 이런 좌절의 경험과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다른 사람의 아픔도 덤덤하게 쓰다듬을 수 있는 현재를 만들어준 것 같았다.

 


누군가가 연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하듯, 만화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사람 대신 동물로 묘사된다. 옷을 훌렁 벗고 오줌을 싸며 춤을 추는 오리는 조증 환자다. 격식 있는 집안의 딸로 남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사는 오리이기에 사람들은 의문스러워 하지만, 작가는 이 또한 편견이라는 것을 부드럽게 꼬집는다. 미운 말과 행동만 골라하는 병아리는 경계성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이다. 가슴 찡한 결말이 있으니 작품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공무원 시험에 자꾸만 떨어지고 결국 머릿속에 자신만의 세상을 지어 마법사로 살고 있는 거북이는 조현병 환자다.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너무나도 행복해보이는 거북이를 치료해서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과연 더 좋은 일인가에 대한 고민도 등장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나와는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는 정신병원이든 학교든 연예계든 다 똑같이 새롭고 흥미로운 법이다.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인생이 무너지는 게 아니듯, 정신 질환을 치료중이라고 해서 인생이 무너진 사람을 보듯 안쓰럽게 여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할 부분은 무지와 무관심을 깨뜨리는 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작정 연민하는 거만함을 의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우리가 무지와 무관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자신 안에 안주하는 모순을 의식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환자라면? 내가 환자라면 나를 정신병 환자로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흔하다는 우울증이 나한테도 찾아온다면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작가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있을 우리에게 덤덤히 ‘괜찮다’는 말을 건넨다. 원래 정신질환은 한 두번의 치료로 짠! 낫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그러니 잘 붙잡고 여기에 있어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