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중한 아파트 <위대한 방옥숙>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아파트에서 거주한다. 아파트의 사전적 정의는 “5층 이상의 건물을 여러 집으로 일정하게 구획하여 각각 독립된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주거형태”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란 단순히 주거형태 중 한 가지라고 딱 잘라 정의 내릴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누군가에겐 지친 몸을 누일 공간, 누군가에겐 결혼 스펙, 누군가에겐 황금알 낳는 거위, 누군가에겐 든든한 노후 자금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도구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혜택을 놓칠세라 우리 삶의 목표는 ‘더 크고, 더 많이 주는’ 나무를 손에 넣는 것이 되어버렸고 이는 결과적으로 층간소음, 부실공사, 불법 투기, 사회적 박탈감, 사기, 각종 비리 등의 짙은 그림자가 되어 사회를 어둡게 드리우고 있다.
최근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한 <위대한 방옥숙>은 데뷔작인 <마스크걸>로 인기를 끌었던 매미/희세 작가의 2번째 연재작으로 두 작가는 작품 속에 현실을 녹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전작인 <마스크걸>에서 ‘외모지상주의’와 ‘모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핵심적으로 다루며 중간중간 등장인물들을 활용해 인터넷 문화나 사회적 이슈, 갈등, 문제점 등을 비추어 독자들에게 씁쓸한 웃음과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면, 신작 <위대한 방옥숙>은 서울에 한 아파트인 ‘노블골드캐슬’을 둘러싼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강 조망권을 가진 아파트 ‘노블골드캐슬’의 부녀회는 주변에서 ’한다면 하는 사람들‘로 통한다. 그녀들은 집값을 지키기 위해 아파트의 이름을 바꾸고, 구치소를 막아내고, 임대 아파트 쪽으로 난 아파트 출입구를 막았으며, 유명 강남 학원을 유치하거나 구청을 한달동안 점거하는 등 집값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1화에서부터 이들이 시체를 유기하는 듯한 모습으로 작품이 시작된다. 물론 막장 같아 보이는 부녀회 회원들에게도 저마다 사정이 존재한다. 주인공인 방옥숙은 아파트 하나만으로 힘겹게 올라온 중산층의 삶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과 함께 철없는 아들, 사춘기 딸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파트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집값 사수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럴수록 가정은 점점 무너져 가기만 하는데, 이는 다른 부녀회 회원들의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모두 자녀, 부부, 경제적 문제 등 드라마틱과는 거리가 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것들이다. 이처럼 <위대한 방옥숙>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정을 가지고 있는 노블골드캐슬 주민들이 아파트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결국에는 시체 유기까지 저지르며 극단적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누구든지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위대한 방옥숙>은 아파트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대사 등 작품 곳곳에서 스며들어있는 오마주, 패러디, 각색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평소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를 찾아보는 것도 작품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매미/희세 작가는 전작인 <마스크걸>에서 일련의 사건을 통해 가벼운 블랙코미디와 같던 작품 분위기를 섬뜩한 스릴러로 180도 전환하며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두 작가를 믿고 마치 폭풍전야 같은 ‘노블골드캐슬’에서 과연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위대한 방옥숙>을 지켜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