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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영멘>, ‘웃기는’ 신들에 대하여

2020-06-18 손유진



<세인트☆영멘>, ‘웃기는’ 신들에 대하여



 나카무라 히카루의 <세인트☆영멘>은 예수와 붓다라는 위대한 교조 2인을 소재로 한 개그만화이다. 세기말을 넘기고 하계로 휴가를 오게 된 예수와 붓다는 일본의 타치카와라는 마을에서 여러 가지 일상을 체험하게 된다. 예수와 붓다는 하계에서 그들의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지만 그들로 인해 일어나는 갖가지 기적으로 인해 난처해지기도 한다. 그들의 성(聖)적인 면모는 일본의 평범한 풍경과 어우러져 재미난 광경을 펼치게 된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큰 종교들의 수장이다. 그러한 유명세에 걸맞게 <세인트☆영멘>과 같이 코믹한 재해석 또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작중에서 예수는 구세주라는 역할과는 달리 철없는 얼리어답터의 모습을 보인다. 그는 붓다와 합해 26만엔(한화 약 260만원) 이라는 적은 월급을 받고 있음에도 노트북이나 일회성 소모품을 충동구매하여 붓다에게 야단을 맞는다. 또한 분위기에 잘 휘둘려 불쑥 행동을 취했다가 곤경에 빠지거나 물을 무서워한 나머지 사람들 앞에서 모세의 기적을 펼치기도 한다. 붓다는 예수의 행동에 제동을 거는 인물로서 등장한다. 많은 불상에서 묘사되듯 작중의 붓다는 후덕한 체구를 지녔으며 이로 인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또한 불교에서 강조하는 금욕적인 자세는 붓다라는 캐릭터에게 진중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수와 붓다, 그리고 그들의 제자와 신화적 인물들은 하계에 맞춰 생활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갖가지 신화적 요소와 종교 일화들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한 개그가 펼쳐진다. 본고에서는 <세인트☆영멘>이 가진 몇가지 유머 코드를 해제하고자 한다.
   
1. 신성성에 대한 재해석



 예수와 붓다는 본래 각각 ‘신의 아들’이자 ‘깨달음을 얻은 자’이다. 신적인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두 인물의 속성은 작중에서 절대적인 권능으로 작용하지만은 않는다. 신적 존재라고 하면 으레 우리는 무결하고 성숙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세인트☆영멘>에서 나타나는 신성성은 선(善)과 관계될 뿐이며, 그들의 만능함은 대체로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낳는다. 예수와 붓다는 작중에서 대체로 선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친구로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웃으로서 시민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등 인간의 범주에서 행할 수 있는 선으로서 신성성을 묘사한다.

 주로 붓다의 사려 깊은 성격이 이에 해당된다. 예수가 크리스마스에 즐거운 생일을 맞을 수 있도록 뒤에서 몰래 활약하거나 스케이트장에서 예수가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스케이트장 밖에서 그를 지켜보는 등 붓다의 불심은 작중에서 배려에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다. 예수의 아가페는 쉽게 감명받는 성격으로 나타난다. 집주인인 ‘마츠다’가 예수와 붓다를 백수로 오해하여 야박하게 굴거나 소박을 놓지만 어떠한 계기로 그들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자 이사를 결심하던 예수는 마츠다에게 아가페를 베풀고 이사를 포기하게 된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그들의 이웃인 야쿠자와 친해지면서 야쿠자의 어린 딸과 호흡을 맞춰 놀아 주기도 한다. 한편, 그들이 가지는 신적 능력 또한 작은 소동을 일으키는 데서 그친다. 붓다와 예수가 외출하던 중 비가 오게 되자 붓다의 신수인 뱀 ‘무찰린다’는 붓다가 자신이 만든 실크 스크린제 티셔츠를 걱정하는 것을 알고 티셔츠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다. 예수의 경우,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간 붓다에게 노인들이 몰려 절을 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자 신성을 발휘하여 노인들의 병을 낫게 해 집으로 돌려보낸다. 이렇듯 그들이 가지는 신적 속성은 작품 속에서 작은 영향만을 발휘하거나 상식적 기대와는 다른 양상 속에서 펼쳐지며 소격 효과를 낳고 웃음을 유발한다.

2. 종교적 일화의 적용



 <세인트☆영멘>에서는 다수의 종교적 상식이 등장한다. 성경 구절이나 불교적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것이 본 작품의 큰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종교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종교적 일화에 대한 코믹한 재해석 때문이다. 2000년대에 유년을 보낸 세대라면 누구나 알 법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시리즈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끈 큰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신화에 대한 만화적 해석이다. 사람들은 고전에 대한 지식을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풀어낼 때 친숙함을 느낀다.
 <세인트☆영멘>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역량이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그는 예수와 붓다의 종교적 일대기를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묘사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붓다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언급하면서 붓다의 모친이 그를 옆구리로 낳은 연유로 겨드랑이 땀 흡수 패드가 떨어질 때마다 모친은 무엇을 또 낳은 것인지 확인하고는 한다는 말을 한다.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는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두고 귀신이 자신들을 향해 물 속에서 걸어오는 줄 알고 무서웠다며 천계 괴담으로 손색이 없다며 너스레를 떤다. 이렇듯 작가가 펼치는 신화의 무용담은 어딘가 허무맹랑한 요소가 첨가되어 자칫 전문 지식으로 보일 수 있는 종교적 일화들을 경직된 이미지에서 해방시킨다.

3. 대중적 종교의식 활용



 <세인트☆영멘>은 붓다와 예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기도 하지만 그들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해프닝들 또한 자주 다루고 있다. 이때 사람들이 대외적으로 갖는 신에 대한 인식이나 사람들이 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축제에서 일어나는 소동이 유머 코드로 작동한다. 일상에서 우리는 종교를 갖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신적 존재에 대하여 경외감을 느끼며, 우스개소리로 “하나님, 부처님, 알라님”에게 간절하게 요청하기도 한다. 그만큼 신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유명한 개념 중 하나이자 선험적으로 거대하게 느껴지는 존재이다. <세인트☆영멘>은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적극 활용한다. 예수와 붓다가 작중에서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하계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성함을 감추는 것이다.
 그럼에도 붓다가 가진 ‘부처다운’ 신체적 특징이나 예수가 우연히 일으키는 기적은 돌발적인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예수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다 길을 잃어 경찰서에 방문하는 것을 보고 그 지역 범죄자들은 자수 행렬을 일으킨다. 또한 예수가 핸드폰 안테나로 땅을 찌르자 포도맛 환타가 온천수로 솟아나(예수가 기적을 행하여 물을 와인으로 바꾼 것을 패러디) 사람들을 모으기도 했다. 붓다의 경우 노인들을 관객으로 개그 만담을 펼치지만 반응이 없자 합장을 하고 퇴장하려는데 붓다가 합장하는 모습을 본 관객들이 보시로 과자 등을 던지기도 하고 제야의 종을 치러 갔을 때 승려가 이를 제지하자 자신의 정체를 어필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가 평소에 신에 대한 가지는 경외심과 대비되며 하나의 유머로서 작동하게 된다.

4. 동서양의 정서적 차이 부각

 기독교가 서양의 대표적인 종교라면 동양에는 불교가 있다. <세인트☆영멘>은 동서양의 양대산맥 격인 종교의 지도자 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각 종교가 보이는 차이에 더해 일반적인 생활상 또한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주로 동서양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의 과장으로 묘사된다. 예수가 개방적인 서양인을 대변한다면 붓다는 예의를 중시하는 동양의 위치에 서있다.
 이는 그들이 거느리는 제자들과 그들의 관계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예수와 열 두 제자는 격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이며, 예수가 거느리는 천사들 또한 예수에 대해 예의를 갖추기 보다는 본의 아니게 예수를 골탕먹이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붓다의 제자들은 한편, 붓다를 극진하게 모시며 보필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제자 중 한 명인 ‘아난다’의 경우 붓다에게 지나치게 헌신하고 붓다를 맹목적으로 존경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동서양의 문화를 대비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부분은 천국에서 틀 프로모션 영상을 제작하는 에피소드이다. 예수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부유한 청소년 역할을 맡게 된다면 붓다는 발리우드의 문법을 따른다. 예수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강아지와 노는 모습을 연출하며 붓다에게 ‘철없다’는 인상을 사게 되고, 붓다의 경우 댄스와 화려한 액션을 중시하여 예수에게 ‘문화충격’을 선사한다. 동서양 스테레오타입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독자들은 공감과 재미를 느끼게 된다.

  <세인트☆영멘>은 종교라는 소재를 매우 영리하게 차용한 작품이다. 소재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변용하고 풀어나가는지가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게 되는데, <세인트☆영멘>의 경우 이 네 가지 기법을 통하여 두 명의 대표적인 신적 존재를 성공적으로 만화 속에 끌어들였다. 경외의 대상이던 신을 웃음의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신선함을 주지만 이에 더하여 소재를 백분 활용하여 작품 내에서 나름의 문법을 완성했다는 지점이 본 작품의 공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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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진

만화평론가(2019 만화평론 공모전 신인 부문 가작 수상)
텍스트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