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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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상처의 공유와 치유, 그리고 극복. 소년 소녀들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 오이마 요시토키 김소원 (만화연구가, 만화포럼 위원)는 오이마 요시토키(大今良時)의 데뷔 단편이자 두 번째 장편 연재 작품이다. 잡지에 ...

2017-08-25 김소원

상처의 공유와 치유, 그리고 극복. 소년 소녀들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 오이마 요시토키 <목소리의 형태>

 

김소원 (만화연구가, 만화포럼 위원)

 

 


 

 <목소리의 형태()>는 오이마 요시토키(大今良時)의 데뷔 단편이자 두 번째 장편 연재 작품이다. 잡지에 단편으로 두 차례 실리고 나서야 정식으로 연재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정식 연재의 1회에 해당하는 부분만 무려 세 가지 버전이 있는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된다. 

 

 

 

 

 2008년 오이마 요시토키는 <목소리의 형태>로 제80고단샤 주간소년매거진신인 만화상에 입선한다. 그러나 이 45페이지의 단편 만화는 2011 2월에야별책 소년매거진에 실리게 된다. 청각 장애인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집단 따돌림과 폭력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탓이다. 한 편집장의 강력한 추천으로 뒤늦게 세상에 나왔지만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출판사측은 혹시 모를 법률적 문제를 검토했고 일본농아연맹으로부터 작품의 내용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받은 후에야 게재를 결정했다. 그 사이 작가는 라이트 노벨을 만화화한 작품의 작화를 담당하고 있었고 이 연재가 끝난 후에야 <목소리의 형태>의 정식 연재가 결정된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어린 아이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잔혹한 물리적, 정서적 폭력은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독자들에게 진지한 고민도 함께 던졌다. 일본 사회도 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 폭력이 결코 남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시다 쇼야는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으로 전학 온 니시미야 쇼코의 청각장애를 조롱하며 그녀를 괴롭힌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지만 쇼코를 향한 쇼야의 폭력은 점점 잔인해지고 반 친구들은 쇼야의 폭력에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쇼코를 향해 있던 화살은 쇼야를 겨눈다. 쇼야는 반 아이들로부터 전형적인 집단 괴롭힘을 겪는다. 책상 위는 온갖 욕으로 뒤덮이고 실내화는 번번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쇼야에 대한왕따가 극에 달했을 때 쇼코는 다시 전학을 가게 되고 쇼야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쇼야는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단절된 교우 관계를 갖게 된다. 반 친구들의 얼굴은 모두 ×표로 가려져 있다.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쇼야의 시선을 표현한 것이다. 쇼야와 대화를 나누고 친구 관계의 영역으로 들어 온 인물의 얼굴에서는 ×표가 떨어져 나간다. 이러한 만화적인 연출은 직선적이지만 쇼야의 고립감을 명쾌하게 표현한다. 3이 된 쇼야는 자신의 철없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위해 쇼코를 찾아간다. 두 사람의 재회를 계기로 초등학생 때의 어두운 시간을 함께 했던 몇몇 친구들이 다시 만나게 되고 이야기는 초등학생 시절을 훌쩍 뛰어 넘어 어느새 어른의 문턱에 서 있는 소년, 소녀들의 고민과 사랑, 우정을 그린다.

 

 

 

 

 이들 중 몇몇은 초등학생 시절 벌어졌던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기억을 공유하고 있고 그로 인해 생겨난 상처를 가지고 있다. 깨끗이 치유되지 않은 채 남은 상처는 열아홉이 되어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비로소 낫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길을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눈다. 다양한 성격의 남녀 친구들이 등장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서로 싸우고 우정을 나누며 성장한다는 부분은 학원물의 전형적인 플롯을 차용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남다른 것은 학창시절을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았고 왕따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극적이고 작위적인 화해를 그리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이들이 어린 시절 깊게 새겨진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과정은 제법 묵직하다. 가해자도 결국은 상처받았다는 묘사는 꽤나 상투적이지만 서로 대립하고 때로는 살벌하게 다투면서 조금씩 각자의 상처를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아이들은 진지하다. 특히 트라우마의 극복과 성장의 계기가 되는 장치로 등장하는 것으로 쇼야의 반 친구인 나카츠카가 제안한 영화 만들기가 있다. 나카츠카는 쇼코를 위해 영화를 흑백의 무성영화로 만들었고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했던 메시지를 영화 속에 담아 보여준다. 아이들은 음악, 각본, 연출, 의상, 장소 섭외 등 역할을 분담해 영화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서로 숨기고 있던 묵은 상처를 꺼내 보게 된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큰 상처를 입은 쇼코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트라우마를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통해 힘겹게 털어내게 된다. 영화제에 출품한 작품은 평론가에게 살벌할 정도로 가혹한 평가를 받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것은 그 과정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형태>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축은 쇼코의 가족들이다. 쇼코의 어머니는 청각장애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시부모와 남편으로부터 멸시에 가까운 취급을 당하고 이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쇼코를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혹독하게 훈육한다. 쇼코를 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엄마인 자신이 먼저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은 자식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표현 조차 인색하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강박은 쇼코뿐 아니라 쇼코의 동생 유즈루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만다. 유즈루는 엄마가 바라듯 누구도 우습게보지 않는 강한 아이가 되어 언니를 보호가기 위해 언니 대신 남자 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른다. 집단 따돌림의 고통 속에 죽고 싶다는 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유즈루는 등교도 거부하고 죽은 곤충과 동물 사진만 찍어댄다. 문제 해결의 방법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쇼코의 엄마도 유즈루도 모두 가족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쇼코가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과의 우정뿐 아니라 가족이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작가는 장애와 집단 따돌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동시에 주인공 쇼코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절망, 그리고 성장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

 

 

 

 

 작가는 이렇게 친구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목소리의 형태>는 작품 전체에서 장애, 집단 따돌림, 학교폭력, 등교거부, 자살과 같은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만 작가는 차분하고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신인 작가답지 않게 무거운 주제를 담담히 풀어내는 탄탄한 스토리텔링의 힘은이만화가 대단해 2015’ 1, ‘만화대상 2015’ 3, 19테즈카 오사무 문화상 신생상(新生賞), 2016년 제19회 부천만화대상 해외만화상 등 국내외에서의 만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쇼코가 쇼야를 용서하는 과정이나 끝까지 반성할 줄 모르는 몇몇 등장인물의 태도는 결국왕따를 가해자의 입장에서 합리화 한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무엇보다 작가의 단단한 이야기 구성과 독자들의 공감에 있다. 작가는 주인공들의 초등학생 시절에서 시작해 고등학생이 된 현재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등장인물 저마다의 캐릭터를 섬세하게 설정하고 그들에게 각자의 이야기와 치유해야할 상처를 하나씩 안겨 주었다. 그리고다들 괴로워! 괴로워하고 있어! 그게 인생이라는 거야! 하지만 그 인생이 가장 소중한 거야…” (<목소리의 형태> 6, 108~109)라는 대사처럼 아프지만 소중한 인생의 한 순간을 그려낸다.

 국내에도 얼마 전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가 소개되었다.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는 야마다 나오코(山田尙) 감독의 연출로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제작 되었다. 뛰어난 작화와 연출력으로 정평이 난 교토 애니메이션의 작품답게 애니메이션은 원작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재현하며 호평 받았다.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는 대중성과 작품성에서 모두 인정받으며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 26회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애니메이션부문 작품상, 20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애니메이션부문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7권 분량의 짧지 않은 이야기를 제한된 시간 안에 담아내기 위해 생략된 이야기가 적지 않다. 애니메이션을 즐겁게 감상한 이들에게는 꼭 원작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