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로맨스 그리고 달콤한 피. 장르 혼종의 매력
- 이나래 <허니 블러드>
김소원 (만화연구가, 만화포럼 위원)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가 끝났다. 순정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남자 배우들의 아름다운 실루엣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긴 드라마가 결국 종영했다.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난감하게도 한동안 ‘도깨비 앓이’를 해야겠지만 16주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정이 결국 끝났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사랑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실장님도 사장님도 심지어 왕도 아닌 ‘신(神)’쯤은 되어야 하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사랑이야기가 보다 흥미롭고 낭만적이기 위해서는 적당한 장애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 사랑을 쟁취해내거나 때로는 좌절하고 부서지기도 한다. 신분제는 사라졌고 사랑은 국경과 인종도 뛰어넘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낭만적인 사랑을 위한 장애물은 점점 더 초월적인 것으로 진화했다.
특히 러브스토리와 판타지의 결합은 이러한 초월적 사랑의 위대함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그리고 최근 이러한 판타지 로맨스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것이 불멸의 존재이다. 카카오스토리에서 얼마 전 시즌 2 연재가 끝난 이나래 작가의 <허니 블러드>는 인간이 되고자하는 뱀파이어 페테슈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여고생 내림을 통해 불멸의 존재와 평범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근거리는 사랑 이야기와 그에 어울리는 유려한 그림체, 그리고 아름다운 인물들의 조형미가 로맨스 팬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작품이다.
특히 러브스토리와 판타지의 결합은 이러한 초월적 사랑의 위대함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그리고 최근 이러한 판타지 로맨스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것이 불멸의 존재이다. 카카오스토리에서 얼마 전 시즌 2 연재가 끝난 이나래 작가의 <허니 블러드>는 인간이 되고자하는 뱀파이어 페테슈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여고생 내림을 통해 불멸의 존재와 평범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근거리는 사랑 이야기와 그에 어울리는 유려한 그림체, 그리고 아름다운 인물들의 조형미가 로맨스 팬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작품이다. 페테슈는 알비노라는 독특한 외모 때문에 마녀로 몰린 어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잔인한 기억을 가진 채 뱀파이어가 된다. 뱀파이어가 되어 영원한 생명과 강인한 육체를 얻자 그는 어머니를 죽인 마을사람들에게 복수한다. 뱀파이어가 되어 영생과 초능력을 얻었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페테슈에게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아픔이기도 하다. 영생을 끝내고 인간이 되고자 하는 페테슈에게는 마녀의 피가 필요하다. 이름도 신내림인 여자 주인공은 무속인을 어머니로 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내림이라는 이름 대신 깡마른 마녀라는 뜻의 ‘깡마’로 불리며 초등학교 동창인 진아와 일진들에게 지독한 폭력과 왕따를 당하고 있다. 내림은 수학여행에서 담력시험을 해보자는 진아 일당에게 떠밀려 억지로 들어간 폐교회에서 페테슈를 만나게 된다. 부적으로 봉인되어 백합으로 가득한 옷장 속에 잠들어 있던 페테슈는 내림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뜬 페테슈의 첫 대사는 “너, 되게 맛있는 냄새 난다♡” 이었다. 뱀파이어들에게 치명적인 ???력을 발산하는 달콤한 피, 즉 허니 블러드를 타고난 마녀(=무당)인 내림의 상처에서 흐른 피를 맛있게 핥아 먹은 페테슈는 그 대가로 내림과 주종관계로 맺어지게 된다. 내림과 페테슈를 잇고 있는 피의 선은 마치 ‘운명의 붉은 실’처럼 둘을 연결한다.
<허니 블러드> 시즌 1의 스토리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왕따를 극복하고 학교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 내림의 성장기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림과 뱀파이어 페테슈의 피로 얽힌 인연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학원물인 동시에 판타지이고 로맨스이다. 내림은 초등학교 동창이고 한 때는 친구였던 진아가 주도한 폭력과 따돌림의 희생자가 된다. 학교 안에서 아주 빈번하고도 공개적으로 가해지는 다양한 폭력에 대해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반 아이들은 그저 방관자일 뿐이다. 진아의 좋은 집안 배경과 우수한 성적은 선생님들에게 흠 잡을 데 없는 모범생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새로 부임한 젊은 상담교사는 학교 폭력을 해결해 보려 하지만 사태에 대한 빠른 파악에도 제대로 된 대처에도 실패한다. 이때 학교폭력에 대한 두꺼운 매뉴얼은 무용지물이다. 왕따와 학교폭력에 대해 학교와 교사들이 방관하거나 때로는 공범이 되는 구조적 모순은 만화와 영화, 드라마에서 뿐 아니라 실제 사건을 통해서도 낯설지 않게 겪는 일이다. 독자들이 내림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가해자들을 향한 분노를 나눠 갖을 수 있는 이유이다. 내림이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과 집단 따돌림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학원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내림은 고달픈 학교를 벗어나 만나게 된 친구들에게 큰 위안을 얻고 누구에게도 들어 본 적 없는 조언을 듣는다. 학교폭력에 대해 현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열여덟 소녀가 가지고 있어야하는 청춘의 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작가는 내림을 학교 밖에서는 사랑받고 존중받는 존재로 그린다. 이와 같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선명하게 나눈 설정은 다소 평면적이지만 내림이 안고 있??? 비극미를 더하며 페테슈와의 관계가 절실해 지는 좋은 장치가 된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축. 뱀파이어 페테슈와 평범한 소녀 내림의 미묘한 관계는 작품의 마지막까지 긴장을 유지하며 위험하지만 달콤한 로맨스를 형성한다. 흰 피부와 큰 키의 잘생긴 뱀파이어, 하늘을 날 수 ??고 초인적인 힘을 가진데다 수백 년을 살아온 신비한 존재감은 페테슈를 매우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인물로 부각시킨다. 페테슈는 마녀의 피를 오랫동안 천천히 마시면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는 행복하지 않은 영생을 끝내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 생을 마치기 위해 내림의 곁에 머문다. 그러나 페테슈는 모든 면에서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뱀파이어이기에 직사일광은 피해야 하고 인간들 앞에 함부로 존재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그는 내림의 방, 그것도 옷장 속에 숨어 살아야 하는 처지이다. 로맨스의 완벽한 남자 주인공이 되기에는 2% 부족한 페테슈 덕에 내림은 스스로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페테슈에 의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긍정적으로 생을 보게 되지만 왕따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결국 내림 스스로가 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작품은 로맨스장르에서 종종 빠지기 쉬운 ‘수동적 여자주인공’이라는 함정을 성공적으로 피해 간다. 그리고 페테슈가 내림에게 원하는 ‘흡혈’이라는 행위는 작품 속에서 놀랍도록 에로틱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흡혈을 위해??는 상대방의 몸 어딘가에 입술이 닿아야하기 때문이다. 내림이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유예된 이 의식은 둘 사이의 감정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처럼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웹툰의 대표 장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켰다는 데에 있다. <허니 블러드>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프랑스, 중국 등의 웹툰 플랫폼에서도 연재를 시작했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독자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적 정서는 학원물, 로맨스, 판타지라는 익숙한 장르적 특징에서 기인한다. 장르는 다분히 관습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소비하는 독자, 시청자 혹은 관객의 요구와 취향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류가 이야기를 만들고 즐겨온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스토리가 있다. 자연스럽게 장르는 분화되고 새로 생겨나길 반복했다. 대부분의 만화와 웹툰은 여러 장르의 특징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허니 블러드>가 만화의 대표적 장르를 한 작품 안에 담아낸 선택은 매우 현명했다. 익숙하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여고생과 불로불사의 뱀파이어는 각각 따로 두고 보면 새로울 것 없지만 이들 둘을 조합하자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 ‘허니 블러드’라는 모순적인 제목처럼 이야기는 달콤하다가?? 어느새 씁쓸해지고 비릿해진다. 독자들은 한 그릇에 보기 좋게 담긴 이 달콤하지만 쌉싸름한 디저트를 양껏 맛보면 된다. 2부에서는 페테슈를 뱀파이어로 만든 라스즐로와 페테슈에 의해 뱀파이어가 된 록사나가 등장한 덕분에 내림과 페테슈의 로맨스는 휘발되어 버린 느낌이지만 결말에 대한 궁금증과 극의 긴장감은 한층 강화 된다. 시즌 3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