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억울한 당신, 복자클럽으로 오세요
사자토끼의 ‘부암동 복수자 소셜클럽’
김상희(만화평론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여자들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라는 말처럼 여자의 심리는 예측불허라고 여기는 인식 때문에 그 복수 또한 더 지독하고 무서울 것이라는 상상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한 편견에 허를 찌르는 만화가 최근 연재를 마쳤다. 작년 연말에 다음 웹툰에서 약 2년 간 연재한 사자토끼의 ‘부암동 복수자 소셜클럽’은 평범한 가정주부 셋이 벌이는 작은 복수극을 그린 블랙코미디 만화이다.
부암동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홍도희는 남편과 사별하고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산다. 모범생이자 착한 아들인 희수는 도희의 자랑이다. 그런 희수가 동급생 정욱의 팔을 부러뜨렸다는 소식을 듣자 충격에 빠진다. 더구나 오랫동안 정욱 패거리의 괴롭힘에 못 이겨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였음에도 도희와 희수가 처한 곤경은 빠져나오기 어렵기만 하다. 정욱의 어머니와 정욱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매달려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머리위로 쏟아지는 물세례다. 그 모습을 본 정혜와 미숙은 도희에게 다가와 부암동 복수자 소셜클럽(이하 복자클럽)에 들어오라고 권유한다.
‘복자클럽’의 세 주인공 도희, 미숙, 정혜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저 순리대로 착하게 살면 억울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도희는 금쪽같은 희수의 눈물에 분노한다. 시어머니 병수발에 딸 서연과의 단절 속에서도 꿋꿋했던 미숙은 남편의 고질적인 폭력 앞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대기업 전무의 아내인 정혜는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남편의 고등학생 혼외자식을 마주해야 하는 모욕을 갚기로 마음먹는다.
세 명의 가정주부로 이뤄진 복자클럽은 가부장적 질서의 억압과 희생, 물질만능사회의 최약층의 울분이 빚은 블랙코미디다. 복자클럽 회원들의 목표는 가슴 속 응어리를 붉은 피로 갚으려는 처절한 앙갚음이 아니다. 또한 자신들의 처지를 전복시키고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숨 한번 제대로 쉬는 사람처럼 살기 위한 작은 몸부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복수의 한계도 명확하다. 도희가 말했듯 사람을 해치지 않고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한도에서 복??의 대상에게 사회적 평판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스캔들이 전부이다. 이러한 제한된 복수는 등장인물의 ??회적, 경제적 위치의 한계와도 연관된다. 세 명 모두 한국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이자 가정을 지키길 원하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의 약점이자 가장 큰 강점인 자식들의 이야기로 번지는 순간 세 회원들의 복수는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포인트로 작용한다.
2014년 제1회 다음온라인만화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당시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듯 기획적인 측면을 잘 살리되 캐릭터 간의 심리 표현에 엄청난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작가는 적극적으로 복수를 진행하는 세 여인과 수겸이라는 인물 사이의 사건 배열, 갈등과 화해를 세련되게 배치함으??써 격렬한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등장인물들이 틈만 나면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복자클럽’의 스토리 설정은 무척 드라마틱하고 선악의 구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자극적인 사건과 신파적인 대사를 버무리는 대신 최대한 건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런 점은 작가가 인물 간의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복자클럽’에서 직접적으로 물리적 폭력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들은 정욱과 희수다. 도입부터 도희가 희수가 일으킨 폭력사건으로 학교로 호출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럼에도 격렬한 싸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독자가 폭력사건으로 인한 가장 큰 인상을 받는 부분은 희수가 우발적으로 정욱을 다치게 했다는 사실보다는 그런 사실을 악용하는 정욱네의 비열한 행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도희네의 현실적인 무력함에 공감하는 것이다. 물리적 폭력에 피폐해져 가는 미숙네를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는 것도 폭력이 남긴 상흔을 직시하고 다시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이다.
이러한 작가적 표현은 미숙의 남편, 정혜의 남편과 같이, 세 주인공을 억압하고 기만하려는 가부장적 시스템을 상징하는 남자들의 눈이 지워진 채 그려진다. 작가는 완결후기를 통해서 한 독자댓글을 공개했는데 “독자가 남자들의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기 때???에”라는 의도를 밝혔다. 오로지 ‘복자클럽’의 세 여자들이 깨닫는 감정적 회한과 깨달음, 긍정적 성장의 변화와 강한 연대에 독자가 온전히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냉정하지만 따뜻?? 시선으로 인물을 그리되 이야기의 구성을 짜임새 있게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무엇보다도 ‘복자클럽’은 가족드라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주인공의 가정은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제대로 된 아버지 상이 구현되지 않은 구성원들로 이뤄졌다. 또한 가족이란 이름으로 오랜 상처를 끌어안고 오해를 쌓아두며 지낸다. 가장 모범적이고 착한 자식들을 위해 온 몸을 바치는 도희와 그런 엄마에 죄책감과 부담감을 느끼는 희수. 오빠의 죽음과 미숙과의 오해로 견고한 벽을 쌓아두는 서연. 윈도우 부부임에도 가정을 지키려는 정혜를 유일하게 보듬어주는 남편의 혼외자식인 수겸. 이들은 복자클럽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끌어안으며 가족 못지않은 유대를 맺는다.
누구에게나 가족과 가정은 소중한 것이다. 피를 나눈 혈연이 아닌 타인에게라도 서로에게 자신의 품을 내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마치 정혜와 수겸의 연대처럼 말이다. ‘복자클럽’은 가족과 이웃에게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며 힘든 현실을 나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복수극을 통해서 그리고 있다. 복수는 차가울수록 효과??이라는 격언처럼 ‘복자클럽’의 복수는 냉정하고 서서히 진행된다. 그러나 세 여인의 미묘한 심리를 치밀하게 표현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되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러한 가족중심 드라마는 독자들에게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작지만 통쾌한 복수를 꿈꾸는 인무들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게 한다. 로맨스나 판타지가 없이 훌륭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인물로도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