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승”의 세계에서 회포를 풀다.
서은영(만화포럼위원)
포털사이트 다음의 완결작인 <쌍갑포차>를 읽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원제목의 ‘포차’가 연상시키는 포장마차의 이미지와 ‘돼지뒷고기 숯불구이’, ‘간고등어 연탄구이’, ‘광어회와 묵은지’, ‘박속낙지탕’, ‘생굴’이라 적힌 소제목을 보면 의례히 음식웹툰이겠거니 생각하지만, 읽다보면 어느새 음식냄새가 아닌 사람냄새에 푹 빠져있다. 사실 음식웹툰이라는 용어의 개념이 워낙 넓으니 음식웹툰에 속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쌍갑포차>는 흔히들 떠올리는 요리하는 주인공, 음식의 유례와 조리법, 맛을 음미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음식웹툰에서 조금은 빗겨나 있다. 이 웹툰은 전경에 내세운 음식 보다 바로 그 이면에 숨겨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쌍갑포차>의 인물들은 각자 사연을 품고 있다. 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감정노동자, 질투에 눈이 멀어 소중한 사람을 놓친 노인, “무너진 엄마의 등에 갓난아기처럼 업힌”(18화)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는 취업준비생, 아버지의 병을 간호하는 사이 많은 것을 잃은 여인, 주인의 지친 삶에 짐이 되지 않으려는 길냥이, 전쟁통에 대를 잇기 위해 씨내리를 해야만 했던 여성과 그녀의 딸로 태어나 버림받아야 했던 또 다른 여인의 사연까지, 에피소드 마다 펼쳐지는 인물들의 사연은 상당히 다층적이다.
단조로운 그림체나 간혹 구분되지 않는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독해를 방해하기도 하지만(이는 이후에 수정된 바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삶을 대하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 그리고 그것을 스토리로 엮어내는 작가의 충실함이 이 작품을 계속 정주행하게 만든다. 독자들은 인물들의 사연이 자신과 비슷해서 공감하기도 하지만, <쌍갑포차>의 묘미는 작가가 무심하게 내뱉듯 던지는 삶에 대한 통찰에 있다.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던 독자들은 작가가 던진 한 마디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쌍갑포차>의 월주신이나 무녀, 삼신할매와 같이 한국적 정서에 기대고 있어 작품을 읽는 새로운 묘미를 전해준다.
△ <쌍갑포차>- 박속낙지 편(16화) 중에서
뿐만 아니라 작가의 기발함이 두드러지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감초처럼 등장하는 인연들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인연들이 이전 에피소드에서 어떻게 스쳐지나갔는지 바로 찾곤 한다. 한 에피소드 안에 다른 에피소드의 인물이 등장하고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끝을 맺기도 하지만, 때론 더 깊은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웹툰 <쌍갑포차> 속 이승을 사는 그들만 모를 뿐이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작가가 전하는 위안의 메시지를 상기 시키곤 한다. “혼자 외줄타기 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 눈에 보이지 않는 길과 인연이 더 많은 게 인생”(16화)이라는 작가의 통찰은 혼술, 혼밥을 즐기는 이 시대인들의 고독을 위로해 주는 듯하다. 그리고 작가가 강조하는 인연은 “쌍갑”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게 한다. <쌍갑포차>의 “쌍갑”은 “너나 나나 다 갑이라고. 쌍방간에 갑”(2화)이라는 의미다. 갑을 관계가 인간을 수직관계로 묶어버린다면, “쌍갑”은 서로가 연대하여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들로 엮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베스트도전’ 출신 작가답지 않다는 독자들의 놀람이나 작가의 나이, 성별, 경험을 묻는 댓글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 <쌍갑포차>- 돼지뒷고기 숯불구이(1화) 중에서
<쌍갑포차>가 위치한 곳은 ‘그승’이다. ‘그승’은 이 작품에서 창작된 꿈의 세계이다. 주인공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승에 잠시 머물러 회포를 푼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쌍갑포차가 존재한다. 마치 직장에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회사에서 쌓였던 과중한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포장마차를 들르듯 말이다. <심야식당>의 손님들이 자신이 원하는 요리도 되지 않는 비좁은 심야식당을 들르는 것은 비단 요리가 맛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점장이 있고, 그리고 그곳이 살 부대끼며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이미 과거로 흘러갔지만 회포를 풀 수 있는 공간은 다시 새로운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쌍갑포차>의 공간 역시 이승에서 풀지 못한 회포를 그승에서나마 풂으로써 새로운 ‘오늘’을 살아가게 만든다. 때로는 죽음으로써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가기도 하지만, 이미 마음 속에 품었던 깊은 회한과 정은 그승의 쌍갑포차에 내려놓았기에 남겨진 이승의 사람들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 <쌍갑포차>의 월주신이 내어주는 술과 안주는 바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