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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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

무한 확장의 우주 속으로, 양영순 작가의 송경원(씨네21 기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란 게 이런 심정일까. 덴경대를 자처하는 의 팬들은 매주 다음 주 전개를 예상해보지만 양영순 작가의 전개는 번번이 독자의 상상력...

2017-01-03 송경원
무한 확장의 우주 속으로, 양영순 작가의 <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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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씨네21 기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란 게 이런 심정일까. 덴경대를 자처하는 <덴마>의 팬들은 매주 다음 주 전개를 예상해보지만 양영순 작가의 전개는 번번이 독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덴마>의 무대가 되는 제 8우주는 방대하고 앞으로의 전개는 미래를 읽는 데바림들조차 예측하기 어렵다. 독자들은 새로운 분기가 제시될 때마다 900편이 넘는 웹툰을 다시 정주행하며 그간의 퍼즐들을 끼워 맞춰본다. 그러다 혹시라도 몇 달 전에 작은 한 컷의 그림으로 제시된 복선이 회수되는 지점을 발견하면 온몸에 돋는 소름을 만끽하며 <덴마>의 치밀함을 찬양한다. 미안, 함부러 예측한 내가 나빴어.
 
양영순 작가의 <덴마>는 방대한 스페이스 오페라다. 우주 택배기사 덴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웹툰에는 정작 덴마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출발한 <덴마>는 양영순 작가의 특기인 짜임새 있고 완결된 에피소드들을 차례로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각 챕터 별로 소주제에 따라 완성된 이야기를 이어붙인 방식은 전작 <천일야화>를 연상시키는 구조다. 우주의 물리적 오류로 발생한 능력자 퀑이었던 덴마는 어느날 뇌전단 스캐닝이란 기술로 의식만 꼬마의 몸으로 옮겨진다. 택배회사 실버퀵의 택배기사로 근무하는 덴마를 따라 택배를 신청한 사람들의 사연을 하나씩 소개하는 것이다. 초창기엔 그저 참신한 설정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웅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에 돌입했다. 322화까지였던 첫 번째 챕터를 지나 두 번째 챕터에 이르면 택배기사 덴마가 아닌 ‘프로젝트 덴마’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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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의 방대하고 치밀한 이야기는 양영순 작가에게도 첫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그간 기발한 설정과 매 에피소드의 아이디어를 선보인 양영순 작가도 이토록 긴 호흡의 이야기는 거의 다뤄보지 못 했다. 개별 에피소드의 완성도나 심금을 울리는 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작가임에도 하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현재 연재 중인 웹툰 중에 이만큼 치밀하고 장대하고 웅장한 세계관을 선보인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양영순 작가의 고백에 따르면 처음부터 이런 큰 밑그림을 그리고 시작한 작품은 아니었다고 한다. 캐릭터 설정, 끝내 도달해야 할 엔딩은 정해져 있었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작가 자신에게도 미지의 상태다. 대신 꼼꼼하게 구성된 매 에피소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것을 놓치지 않고 확장해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우주를 넓혀가는 중이다. 큰 밑그림을 그리고 채워 넣는 게 아니라 디테일한 작은 조각까지 나중에 복선이 되도록 새로운 이야기의 단초로 삼는 전개야말로 <덴마>의 이야기가 마르지 않고 풍성하게 피어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확장하는 우주를 닮은 <덴마>의 세계관은 매번 새로운 상상력을 덧붙이며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긴다.
 
<덴마>에는 3가지가 없다. 주인공 덴마가 없고 빤한 결말이 없으며 함부로 버려지는 캐릭터가 없다. 대신 <덴마>에는 3가지가 있다. 한번 시작하면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고, 매 에피소드 모든 캐릭터가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으며, 여러 번 반복학습하게 하는 방대한 세계관이 있다. 덴마를 한번도 보지 못한 독자는 있을지언정 세계관의 확장을 경험한 다음에야 한번만 본 독자는 있을 수 없다. 사랑에 목숨 건 순수사제 이델, 종단의 3광견 저승사냥개 발락, 비운의 사보이 가알, 의외의 개그코드를 폭발시키는 갓 고든, 최강의 퀑 공자와 가우스, 슈트 간지 별명왕 롯까지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다. 웹툰에서 이만큼 풍성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대한 세계를 본적이 있던가. 2010년 연재를 시작한지 어느새 6년, 주 3회 연재로 방대한 분량을 그려낸 웹툰 <덴마>는 연재 한 편 한 편이 의미 있는 기록인 동시에 새로움을 향한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