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로봇의 관계성, < 3단 합체 김창남>
1. 3단 합체 김창남
2008년에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하일권 작가의 세 번째 작품, <3단 합체 김창남>은 과학은 계속해서 발전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고 도태되는 소외계층, 호구와 실험을 위해 전학 온 인간형 로봇 시보레가 짝이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SF 청춘 만화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여름만이 계속되는 미래 세계. 세상은 초대형 로봇을 만들고 축제 분위기에 취해있지만 부모님을 일찍 여읜 가난한 주인공, 호구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손주도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와 오빠를 무시하는 동생, 호구를 괴롭히는 같은 반 친구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휴식할 수 없는 호구에게 시보레는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누구보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로봇과 그 로봇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호구의 이야기, <3단 합체 김창남은> 연재 된 지 13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은 그림과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스토리가 돋보이는 명작이다.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기계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과연 로봇에겐 인권이 있을까? 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룬 현재, 우리는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를 과거의 작품에서 배울 수 있다.
2. 인간에 대해 논하다
인간형 로봇, 시보레의 제작 컨셉은 ‘얼마나 인간다운가.’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예를 들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 등과 같은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인격이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시보레는 ‘기계는 사람과 얼마나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해 호구네 반으로 전학 온다. 눈앞에서 같은 반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못 본 척 외면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시보레만이 호구에게 “나쁜 건 호구가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친구를 때리고 괴롭히는 사람이 나쁜 거 아닌가? 남들과 좀 다르다고 따돌리는 사람들이 나쁜 거고 괴롭힘 당하는걸 보고도 가만히 방관하는 사람들이 나쁜 거잖아.” 라고 말해준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반복해서 인간다움을 언급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인간답지 못하다. 시보레를 성희롱하는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 기계 오작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쳤음에도 로봇 수리비로 나갈 돈만을 걱정하는 비인간적인 사장, 김창남. 가장 반인류적인 그가 인간다운 로봇을 만드는 모순적인 모습은 우리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호구의 진심이 담긴 선물을 버려버리는 유진과 선물을 지키기 위해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참아내는 시보레의 모습을 대비시켜 우리가 인간으로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을 상기시켜준다.
3. 기계와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로봇에게도 인권이 있을까? <3단 합체 김창남>은 과학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상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다운 로봇으로 만들어졌다면, 그 로봇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는 걸까. 작품 속 인물들은 인간다운 기계를 만들기 위해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 그들은 시보레를 CCTV가 설치된 방에 가둔 채 하루 종일 감시한다. 차가운 방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며 사생활을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시보레는 로봇이기에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우리는 대체 로봇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 것일까.
작품 속 호구와 안나의 아버지는 로봇을 사랑의 대상으로 본다. 그리스 로마신화 속 피그말리온이란 조각가는 현실의 여성들에게 만족하지 못해, 자신의 이상형을 직접 조각해 그 조각과 사랑에 빠진다. 작품 속 안나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을 로봇으로 만들어내고 사랑에 빠진다. 반면 호구의 친구, 재민이는 호구에게 시보레를 잠시 빌려달라고 하며 “그냥 MP3나 디카 빌려준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라고 말한다. 또, 반 아이들은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나쁜 짓들을 시보레에게는 쉽게 저지른다. 감정을 교류한 로봇을 단순한 기계로 보아도 되는 것일까. 누군가를 걱정하고 위해줄 줄 아는 로봇은 존중받아 마땅한가?
<3단 합체 김창남>은 과학발전을 이룬 미래에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들을 지적한다. 발전하는 세상 속 윤리 의식이 흐려지는 모습을 다룬 이 작품은 과학발전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우리에게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빠르게 발전해가는 세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문하고 답을 내려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