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성사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된다. 당시 이 대국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현재의 AI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를 확인할 기회라는 점. 둘째, 인간이 여전히 특정한 분야에서는 기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우주 내 원자 수 이상의 거대한 탐색 공간 속에서 직관, 상상력, 지적 깊이를 요구”한다고 일컬어지는 바둑이라는 종목의 특성은 두 번째 이유의 충분한 근거가 되었는데 직관, 상상력, 지적 깊이 등의 표현들은 유사 이래로 오롯이 인간만을 위한 개념들로 생각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대국의 승자는 당연히 인간이 될 것이라는 관측과 기대 그리고 믿음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대국의 결과는 대다수의 예상과는 다르게 알파고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 결과를 목도한 이들은 AI가 더 이상 공상과학 속 기술이 아닌 눈앞으로 다가온 현실임을 직시하게 되었고, 더불어 그간 인간을 규정해 온 “호모사피엔스”라는 오래된 정체성이 더 이상 인간의 고유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회 전반에서는 AI의 안전성과 미래에 대한 논의,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 등이 이루어졌다.
다만 이 같은 소란은 SF 장르 등에 익숙한 층에게는 다소 어색한 풍경이었다. 당시 사회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논의들은 기존 SF 장르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져 왔던 테마 또는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다. SF 장르, 그중에서도 AI 관련 소재를 다루는 작품들의 수준들은 이미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이 시기 이전부터 SF에서 다루어지는 AI에 대한 담론은 단순히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을 형상화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계 혹은 AI라고 명명되는 미지의 타자를 통해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우스 키퍼>는 이러한 SF 장르의 수준 높은 성찰이 웹툰화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되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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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키퍼>는 근본적으로 고증에 의한 기술의 예측을 통해 미래를 재현하는 형태의 작품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AI인 하스티와 그의 주인 네빌의 아포칼립스 액션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드코어한 SF 장르의 소비자들이 보기엔 라이트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SF를 표방할 뿐이라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하우스 키퍼>는 “인간을 인간으로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SF적 물음을 충실하게 던지는 작품이다.
특히 <하우스 키퍼>에서 인상적인 것은 바로 P-인플루엔자에 걸려 좀비가 되어버린 인간에 대한 부분인데, 작중 P-인플루엔자에 걸린 인간은 크리처로 명명되며 인류에게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이는 AI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유전자 정보를 통해 인간을 인간으로 인식하는 AI에게 크리처는 마찬가지로 인간과 전혀 별개의 생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인 하스티는 네빌을 가리키는 모든 정보가 그가 “인간이 아님”을 알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여전히 자신의 주인, 즉 인간으로 인식한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하스티의 헌신은 작중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과 대비되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물론 이러한 담론의 전개가 이 작품의 모든 매력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하우스 키퍼>는 AI라는 소재를 활용한 아포칼립스 액션물의 형태를 띠고 있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작품의 중심 테마를 무겁지 않게 전달을 하는 것도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끊임없이 그 지위와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불편하지만 예정된 미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미래를 준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SF 장르에서 나타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은 이러한 미래에서 먼저 도착한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중 하나를 놀랍게도 웹툰에서 발견했다고 말한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