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만 함께 걸어가는 길 : <그림을 그리는 일>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 성민이 좌충우돌을 하며 작가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즐거움과 고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방황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성민과 같은 경험을 해왔을 것이다. 막연하게 시작된 꿈이 현실이 되는 설렘과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듯한 좌절감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 순간을 말이다.
사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작은 인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 속 성민 역시 처음에는 단순한 낙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반 친구가 만화 <드래곤볼>의 손오공 캐릭터를 멋있게 그려온 것을 보게 된다. 먹지를 대고 그린 줄 몰랐던 성민은 자신도 손오공을 잘 그리고 싶은 마음에 며칠 동안을 그림에 빠져 지낸다. 아마도 그것이 그림의 매력을 느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좋아하는 것에 몰두했던 경험이 운명처럼 그를 그림을 그리는 삶으로 이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경험일 수 있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몰입했던 그 시간의 즐거움이 오랫동안 뇌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자신의 미래로 선택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취미로 시작한 일이 자신의 미래가 되는 순간 외로운 길을 가야만 한다. 더구나 작가가 되는 길은 실로 고독한 일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경제적인 부담 등의 이유로 작가의 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성민도 학창 시절에는 집안 사정 때문에 그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꿈이 온전히 응원받을 수 없는 현실. 안타깝지만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성민은 자신의 미래를 바꿀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입한 대학의 만화 동아리 선배는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단순히 재미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성민에게는 잊고 있던 꿈을 되살려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그는 용기를 내서 그림을 그리는 일에 본격적으로 도전해 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미술학과로의 전과에 성공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림을 동경하던 소년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는 순간부터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된다. 개중에 작가로서 일찍 이름을 알리는 이들은 손꼽을 정도다. 대부분은 기약 없는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 생활하는 주변 사람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들에 비해 아직 제대로 된 출발조차 못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자신의 선택한 작가의 길이 잘못된 길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매 순간 엄습한다.
“종종 인생이 이렇게 외로운 것인가 생각한다. 모두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이게 다 그림 때문이다”(7~9쪽)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꿈만을 좇으면서 살 수 없는 현실이 옥죄어 온다. 대중들에게 선택받는 작가가 되지 못하면 꼼짝없이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생계를 이어나가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다 보면 작업에 몰두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을 누구나 겪는다. 그러다 보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꿈에 도전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성민의 친구처럼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선택을 비겁하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애써 쌓은 노력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결심을 하는 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민이 작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길은 외롭지만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성민이 작가가 되는 과정에도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함께 했다. 혼자만 그리던 그림을 좋아해 준 짝꿍이 있었고,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대학 동기 덕분에 외롭지 않게 작가의 길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봐 준 선배의 도움으로 그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성민을 기다려 준 가족들의 배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알게 모르게 자신을 응원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성민은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특별한 예술가가 아닌 내가 그림을 그리며 얻은 것은 불확실한 내일과, 늘 잔고에 시달리는 통장뿐인 것 같다. 그런데도 왜 이걸 그만두지 않느냐고? 글쎄... 잘 모르겠다.”(14~16쪽)
잘 모르겠다. 그저 좋아서 할 뿐.
도종환 시인의 글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한 명의 작가가 탄생하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여정을 한 편의 영화처럼 만났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작품을 위해 고민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만화 속 선배가 한 말을 전하고 싶다.
“너 그냥 작가 해!! 충분해 너 정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