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너와 내가 만났을 때 : <욕망이라는 것에 대하여>
흔히 연애는 서로 맞춰 나가는 거라고들 한다. 살아온 나날들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상처는 덜 주고 사랑을 많이 주려면 때때로 자신의 기준을 내려놓고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현실의 관계를 가꾸는 과정에서 타협의 어려움을 경험한 우리는 로맨스 콘텐츠에서도 주인공들이 다름에서 생기는 갈등을 헤쳐나가는 서사에 쉽게 공감한다. 상반된 면을 가진 두 인물이 갈등의 과정을 거쳐 서로를 이해하고 닮아가는 모습은 몰입감을 높이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끌어올린다. 오늘은 필자의 취향을 저격한 이해와 타협 서사 웹툰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만화과의 동갑내기 선후배 사이인 범철과 재희는 과에서 유명한 앙숙이다. 형태 자체의 아름다움에서 의미를 찾는 범철은 연출을 살리려 작화를 간단하게 생략하는 재희를 이해할 수 없고, 이야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재희는 작화에만 치중하는 범철을 이해할 수가 없다. 서로의 작품을 비난하고 형태와 이야기의 미학에 대한 논쟁을 펼치다가 얼떨결에 가까워진 둘은 어느 날 충동적으로 자게 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정반대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면서, 성격적인 간극에서 생기는 오해와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소개한 줄거리는 만화과에 다니는 두 커플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웹툰 <욕망이라는 것에 대하여>(이하 <욕망>) 2부의 내용이다. <욕망이라는 것에 대하여>라는 제목에 알맞게 작품은 1부와 2부에 나누어 ‘순애-성애’와 ‘형태의 미학-이야기의 미학’이라는 서로 다른 욕망의 충돌과 이해를 그렸다.
<욕망>의 재미는 무엇보다 특색 있고 입체적인 캐릭터 성에서 온다. 강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친구 앞에서는 눈물도 보이고 짝사랑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선진, 그리고 아무 생각 없어 보이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때때로 스스로 침잠하는,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솔직해지려 노력하는 범철. 이들 캐릭터는 BL을 위한 BL에서 공식처럼 사용하는 전형적 캐릭터와는 다른 양상으로 묘사된다. 인물의 성격적인 설정이 오직 커플 사이의 권력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한 인간을 그려내는 요소가 된다. 살아 숨 쉬는 캐릭터를 통해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개연성이 부여되고 독자는 인물에게 더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인물에게 공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일부 BL 작품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욕망>은 BL 장르의 전형적 법칙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큰 틀에서는 BL로 분류될 만한 전형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공수의 역할이 정해져 있고 그에 따른 성애적 표현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과 수가 강약의 관계로 드러나지 않고 동등한 관계로 묘사된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범철과 재희 커플에서는 공과 수의 결정도 고작 가위바위보로 이루어진다. 우승과 선진 커플은 연애 경험이 없었던 우승보다 선진이 스킨십을 주도하는 구도로 시작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우승이 자신의 마음과 (성욕을 포함한) 욕망을 솔직하고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으로 그 구도가 전복된다.
인물들이 소통과 이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으려면 정해진 권력 관계가 아닌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이다. <욕망>은 그 당연한 원리를 녹여내 몰입도 높은 로맨스를 만들어냈다. BL 장르의 공식을 일부는 가져오고 일부는 무너뜨리며 상업적 재미와 서사적 완성도를 모두 챙겼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귀여우면서도 19금 성애 장면의 표현이 가능한 선에 있는 그림체와 고퀄리티 작화, 개그 요소와 감정선을 잘 살린 연출 모두 <욕망>을 어디 내놓고 추천하기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야기의 후반부, 재희와 범철은 재희의 연출과 범철의 작화로 팀 과제를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 둘은 자신의 것을 버리고 상대에게만 맞추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의 의도와 스타일을 이해하고 그 합일점을 찾았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웹툰 작품의 협업 과정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에 겹쳐 보이면서, 독자는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어찌 보면 사랑과 연애, 섹스도 모두 일종의 협업이 아닐까. 지금도 서로 노력해 협력하며 어딘가에 잘살고 있을 것만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욕망이라는 것에 대하여>. 카카오페이지와 리디북스에서 시즌 2까지 볼 수 있으니, 유쾌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BL 아닌 BL에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