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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보는 명작, <오늘의 순정망화>

2021-09-15 최정연



숨어서 보는 명작, <오늘의 순정망화>


1. 숨어서 보는 명작

요즘 ‘숨듣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있다. ‘숨듣명’이란 ‘숨어서 듣는 명곡’의 줄임말로, 너무 좋은 노래지만 남들 앞에서 대놓고 듣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노래를 칭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웹툰에서도 숨어서 보는 명작이 하나 있다. 바로 <오늘의 순정망화>이다.


 네이버 웹툰에서 2018년 9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손하기 작가의 <오늘의 순정망화>는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무려 주 3회 연재되는 대략 20컷의 짧은 웹툰이다. 이 작품은 부유한 학생들이 다니는 사립 그랜드마스터 고등학교에 전학가게 된 평범한 서민 가정의 여주인공, 가야가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세 명의 초특급 엘리트 삼국시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어디에서 한 번쯤은 보고 들었을 뻔한 줄거리이지만, 예상을 빗나가는 참신한 전개와 개그 속에 숨겨져 있는 탄탄한 스토리의 떡밥들은 이 작품을 뻔하지 않고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훌륭한 작품을 남들 몰래 숨어서 봐야 한다는 것일까? 


2. 평범함은 거부한다

 <오늘의 순정망화>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바로 순정만화가 아닌, 순정‘망’화이기 때문이다. 이 의도적인 틀린 맞춤법은 이 작품이 다른 평범한 순정만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제목에서부터 내포하고 있다. 보통의 순정만화에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은 첫눈에 반하거나, 혹은 처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나중에는 미운 정이 들어 사랑이 싹트거나 한다. 하지만 <오늘의 순정망화>는 평범함을 거부한다.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부르는 호칭이 무려 ‘대감마님’인 것만 봐도 그렇다.


 작품의 여주인공 가야는 어느 만화에서도 본 적 없는 특이한 성격의 캐릭터이다. 작품을 숨어서 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주인공의 성격이 아닐까 싶다. 작품 속 가야는 서바이벌 특기생으로 전학 오게 된다. 순정만화에서 서바이벌 특기생이 나오리라고 누군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가야는 서바이벌 특기생인 만큼 가난한 서민 여주인공에게 당연하리만치 따라오는 괴롭힘들을 가볍게 이겨낸다. 친구들이 책상을 숨기면 없는 대로 누워서 수업을 듣거나, 교과서가 사라지면 천장에 매달려 옆자리 친구의 책을 빌려보곤 한다. 그뿐인가 장미 밭을 보고 자신의 고향이 떠오른다며 타잔처럼 줄기를 타고 놀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독특한 것은 여주인공만이 아니다. 남주인공, 고구려는 가야와의 우정 템으로 족쇄를 하고 다니고, 가장 조용하고 침착한 이미지의 백제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제품을 광고한다. 작품의 조연, 이혈희 마저 사실은 인간이 아닌 모기였다는 참신한 설정을 갖고 있다. 이렇듯 <오늘의 순정망화>만의 무근본 개그는 예측이 불가해 독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지만 누군가에게 선뜻 추천하기에는 어쩐지 부끄러운 부분이 있다.


3. 개그 속 탄탄한 스토리

 <오늘의 순정망화>는 매화 색다르고 신선한 개그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에 개그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을 명작이라고 칭하는 데에는 개그 속에 숨어있는 탄탄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가야는 사립 그랜드 마스터 고등학교의 학생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작게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부터, 크게는 서바이벌 특기생으로 체육과 생존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 있다. 이러한 설정들은 가야라는 캐릭터가 워낙 재미있고 독특한 성격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냥 개그로 받아들이고 넘어간 부분들이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스토리의 떡밥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오늘의 순정망화>의 진정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사실 가야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보던 <오늘도 빙글뱅글!>이라는 작품 속에 들어온 것이라는 충격적인 반전 스토리를 보여준다. 단순히 넘겼던, 가야가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다는 설정은 가야가 작품 속에 들어올 때 핸드폰을 통해 들어오면서 핸드폰을 현실 세계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으며 또, 그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순정만화가 아닌 '정글지옥' 이라는 만화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그곳에서 5년 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서바이벌 특기생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파티에 간다고 가야를 열심히 꾸며준 친구들도 사실 가야랑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는 점과 친구들이 ‘그럼 누구야, 쟨?’ 라고 말하는 33화의 내용도 가야가 다른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들이 가야를 모른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던 작품 속 세계로 들어온 가야는 과연 어떻게 될까?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는 <오늘의 순정망화>는 단순히 웃기기만 한 작품이 아닌, 제대로 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남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부끄러운 예측할 수 없는 개그와, 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나오는 의외의 탄탄한 스토리는 <오늘의 순정망화>에서만 볼 수 있는 신선한 충격이다. 

필진이미지

최정연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