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만화가 상경기

살다 보면 언젠가...- 사이바라 리에코 김소원 (만화연구가, 만화포럼 위원)웃프다. 웃기지만 슬프다. 사이바라 리에코의 만화는 슬프지만 웃긴다. 작품 속에 그려진 참담한 일상이 슬프지만 그 속에서 기어이 끄집어내는 티끌 같은 희망이 우습다.&nb...

2016-09-30 김소원
살다 보면 언젠가...
 - 사이바라 리에코 <만화가 상경기>

김소원 (만화연구가, 만화포럼 위원)

 웃프다. 웃기지만 슬프다. 사이바라 리에코의 만화는 슬프지만 웃긴다. 작품 속에 그려진 참담한 일상이 슬프지만 그 속에서 기어이 끄집어내는 티끌 같은 희망이 우습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힘든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운 옛이야기가 되듯 사이바라 리에코가 그린 개그만화 속에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삶이 담겨있다. 사이바라 리에코는 시코쿠의 작은 어촌에서 태어났다. 그녀를 임신 중일 때 부모님은 별거를 시작했고 그렇게 얼굴도 모르던 알콜 중독자 아버지는 그녀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난다. 엄마와 재혼한 새아버지는 도박 중독으로 큰 빚을 남기고는 대입시험 전날 목을 매 자살한다. 사이바라 리에코도 음주문제로 퇴학을 당하고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지만 현금 100만 엔을 들고 도쿄로 상경해 미대에 입학하고 만화가가 된다. 그러나 남편의 알콜 중독과 암 투병 등으로 만화가가 된 후의 인생도 그리 평탄치는 않다.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계속되는 비극이 그녀에겐 그리 낯설지 않아서였을까? 사이바라 리에코는 그 지독한 삶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 인생을 관조하는 재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재능은 자신의 남다른 인생을 작품에 유쾌하게 녹여낸다. <우리집>에서는 마약과 매춘이 일상인 가난한 어촌 아이들의 출구 없는 서글픈 일상을 통해 자신의 유년기를 투영했고 <매일 엄마>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만화가로서 자신의 일상을 그린다. 그리고 <만화가 상경기>에서는 미대에 입학한 후 만화가로 데뷔하기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도 모르는 어떠한 재능이 있으리라 믿고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한 도쿄. 그러나 그곳에서 처음 깨달은 것은 그녀가 그날을 위해 마련한 신발과 옷이 죄다 꼴불견이라는 사실이었다. 도쿄 변두리 싸구려 아파트에서 동거하는 남자친구는 대책 없는 백수이고 사이바라 리에코 혼자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해도 월세 내고 쌀을 사고 나면 지갑은 늘 텅 비어 버린다. 결국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스티스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되지만 생활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답답해 못 견디겠는 상황의 연속이지만 그녀는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CZPI1rXWAAA7qgg.jpg
 
 ‘눈물과 웃음은 같다’고 한 작가의 말처럼 사이바라 리에코는 성한 곳이 없어 보이는 상처투성이의 과거를 웃음으로 그려낸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전철을 2번 갈아타고 자전거로도 20분을 더 가야 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폭설이 내려 발이 푹푹 빠지는 우울한 귀갓길의 끝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눈을 구경하는 장면이다. 더운 나라에서 온 그들이 옷을 마구 껴입고 신기하게 눈을 보는 마지막 칸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만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시코쿠 출신의 가난한 학생을 주눅 들게 하는 대도시 도쿄의 퍽퍽한 삶과 주변 사람들의 그저 그런 인생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녀는 99%의 절망 속에서도 1%의 희망을 찾아낸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자 조급해진 그녀는 그림을 그려 넣은 수제명함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려 드립니다. 뭐든지 그려드립니다”라고 외치며 명함을 돌린다. 그리고 드디어 성인 잡지에 작은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하게 되고 만화가로 데뷔한다. 그리고 문예춘추만화상,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만화부문 우수상, 테즈카 오사무 문화상 단편상, 일본 만화가협회상 참의원의장상을 수상하게 된다. 지금은 주간, 월간, 격월간, 계간지 등 12개 매체에 단편, 4칸 만화, 칼럼 등을 연재 중이다. 성공한 만화가인 그녀의 현재가 있기에 만화 속에 그려진 숱한 절망 속에서도 독자는 희망을 읽는다. 
 그리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웃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만화가 남들한테 힘이 되는 것이 이토록 기쁜 일인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이다음에는 또 뭘 그리면 삶에 지친 사람들이 활짝 웃어줄까요? 아무쪼록 여러분이 그 책을 읽어주시고 웃어주신다면 저는 정말 행복할 겁니다. 아주 작은 자그마한 위안이라도 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