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 사람냄새가 그리울 땐
- 조금산의 <우리동네에 왜 왔니>
서은영(백석대 외래강사, 만화포럼 위원)
얼마 전 방영된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전작들에 비해서도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종영되었다. <응팔>의 높은 시청률에는 “남편찾기”라는 <응답>시리즈 특유의 게임서사, 코믹한 사건전개, 유쾌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 설정, 배우들의 열연 등 여러 요인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응팔>이 전작들과 차별점을 보이는 것은 바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다. 개발되기 이전의 쌍문동이라는 지역, 그리고 70-80년대의 골목문화를 재현한 <응팔>은 많은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30-40대 이상의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의 골목문화에 향수를 느꼈다면, 10-20대의 시청자들은 그 감수성에 대해 일종의 부러움을 표출했다는 점이다. “쌍문동과 세 명의 아즘마(일명 ‘태티서’)”는 30대 이상의 시청자에게는 추억이었겠지만, 그 이후 세대에게는 일종의 판타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초월해서 공감하는 동네 골목에 대한 감성이 드라마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골목의 풍경. 변화된 2000년대의 골목에서 여전히 발견하고 싶어 하는 감성을 담은 짧은 웹툰이 있다.
조금산의 <우리동네 왜 왔니>(다음, 2010.3-2010.6)는 한 주택가 골목에서 벌어진 깡패들의 이권싸움을 지켜보던 동네 주민들이 결국엔 그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동네를 지킨다는 이야기다. 첫 장면은 동네 깡패로부터 사채를 갚지 못해 팬티 차림으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깡패들이 물고문을 하며 협박하지만 절대 굴하지 않는 깡과 기개를 보여주는 남자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가 영웅일 것 같은 직감이 든다. 이 첫 장면이야말로 영웅을 다루는 대중서사에서 흔히 쓰이는 장면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직감은 바로 기대를 저버린다. 그 남자는 영웅은커녕 싸움의 기술도, 힘도 없이 악만 남은 소시민일 뿐이다. 그 후로도 혹시나 했던 영웅은 역시나 등장하지 않는다. 동네 노인, 노인의 아들, 동네 아저씨, 주부 등 그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일 뿐이고,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는 없다.
조금산의 웹툰은 대중 서사의 관습에 익숙한 독자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한다. <탁구공>(다음, 2010. 1월)이나 <노숙자 블루스>(다음, 2010.8-2011.2)에서도 익숙한 서사와 인물들에서 조금씩 빗겨난 스토리를 구성한다. 마치 거대한 기둥을 가진 나무에서 잔가지들이 새롭게 뻗어 나가는 식이다. 예를 들어 <탁구공>의 6화 마지막 장면에 대한 독자 반응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 준다. 노숙자가 들이민 장미꽃에 식겁한 독자는 댓글로 “장미보고 식겁했다. 흉기인줄 알았다”고 적고 있다. 이 댓글이 베스트 댓글로 가장 상단에 랭크된 것을 보면 이런 상상을 한 독자가 비단 한두 명은 아닌 게다. 노숙자가 장미를 들이밀기 이전까지의 이야기가 분명 소소하고 따뜻한 전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알게 모르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조금산이 독자들을 배반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는 시종일관 우리 주변의 사건과 인물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영웅의 등장을 상상하고, 극적인 사건과 임팩트 있는 반전을 기대한 것은 바로 독자일 뿐이다. 어찌 보면 영웅의 등장과 드라마틱한 전개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우리네 현실 이야기가 오히려 더 낯선 전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를 다 보고 나면 익숙한 관습에 물들어 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이제는 판타지만큼이나 멀어져 버린 골목 안 사람들의 이야기. 소위 “사람냄새”나는 이야기로 인해 어느새 울컥거림이 올라온다.
<우리 동네 왜 왔니>의 골목 안 풍경이 더욱 인간적인 것은 용기를 얻기까지의 주저함 속에서 인물들의 면면이 다각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깡패를 몰아내야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지닌 것은 아니다. 작가는 모두가 방관자가 되어 선뜻 나서길 주저하는 골목 안 소시민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동네주민들 사이에서 공동의 목표가 암묵적으로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깡패와 동네 주민의 1:1 대결을 거치면서 조금씩 축적된다. 자칫하면 이 과정이 지루해질 수 있지만, 조금산 작가는 극 전환을 이룰 타이밍을 절묘하게 잡아낸다. 그는 터질 듯 터지지 않는 풍선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 관객을 노련하게 조련할 줄 안다. 마침내 작품의 결말에서 초인적인 영웅의 등장이 아니라 소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승리를 이루어냈을 때, 독자들은 야릇한 승리감을 맛보며 감동을 받는다.
<우리동네 왜 왔니>의 압권은 바로 “내가 사는 동네”가 “우리동네”가 되는 순간이다. 김상만이 왜 팬티바람으로 싸우는지 그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들어주는 장면이다. 그것은 방관자의 자세를 버리고 이웃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며, 승리를 장담할 순 없더라도 “함께” 연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TEPAL”은 동네 주민들의 각성을 명징하게 울리는 소리이다(10화). 웹툰 밖에서도 “TEPAL”의 울림이 실현되는 것. 이 웹툰에 감동받은 모두의 마음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