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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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뭐 먹었어?

매일 저녁의 따뜻한 집밥 - 요시나가 후미 김소원 (상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외래교수) 프랑스의 미식 평론가 브리야 사바랭은 음식이 가진 의미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정의를 내렸다. ‘당신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이야기하...

2016-05-25 김소원
매일 저녁의 따뜻한 집밥 - 요시나가 후미 <어제 뭐 먹었어?>
 
김소원 (상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외래교수)
 
 프랑스의 미식 평론가 브리야 사바랭은 음식이 가진 의미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정의를 내렸다. ‘당신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이야기하면,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했던가. 음식은 기본적인 생존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문화이기도 하다. 국민소득 수준이 향상되면 자연스럽게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의 방향이 바뀐다. 사람들은 ‘배고픔’에서 벗어나면 음식을 즐겁고 맛있게 그리고 건강하게 먹고자 한다. 음식 만화의 발달은 이와 같은 식생활의 변화를 드러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술, 커피, 와인, 케이크, 빵, 라멘처럼 음식을 종류별로 다루거나 요리 베틀, 에세이, 레시피 소개 등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 된 음식 만화가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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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뭐 먹었어?(きのう何食べた?)」는 2007년부터 주간 『모닝』지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으로 제목대로 주인공들이 매일매일 ‘무엇을 먹는지’를 그렸다. 작가인 요시나가 후미는 2000년대 이후 주목 받는 여성 만화가의 한 명으로 특유의 세계관과 섬세한 심리묘사, 그리고 무엇보다 감각 넘치는 대사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식도락’에 대해 대단한 식견과 애정을 드러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2000년도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드라마로 한국에서는 영화로 제작된 「서양골동양과자점(西洋骨董洋菓子店)」 에서는 다채로운 케이크와 과자를 실감나게 묘사했고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愛がなくても?ってゆけます)」에서는 에세이 형식을 빌려 작가가 선별한 식당을 소개했다. 그리고 「어제 뭐 먹었어?」에서는 동거중인 변호사와 미용사 커플이 등장하고 이들이 마주한 식탁의 음식들이 자세한 레시피와 함께 소개된다. 물론 두 주인공의 주변인물의 이야기도 요시나가 특유의 유쾌함을 담아 펼쳐진다.
 「어제 뭐 먹었어?」를 한 줄로 요약하면, ‘변호사와 미용사 커플, 그리고 그들이 먹는 집밥’의 이야기이다. 자, 여기서 질문 한 가지. 그럼 작품 속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것은 누구일까? 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이들이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떠올릴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안타깝게도(?) 변호사와 미용사는 남남(男男) 커플이고 매일 저녁 요리로 스트레스를 풀며 다양한 집밥을 선보이는 것은 ‘미중년’ 변호사인 가케이 시로이다. 명문 게이오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BL 동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화제작 「오오쿠(大?)」에서 여자 쇼군과 남첩이라는 역사 판타지로 파격적인 세계관을 보여준 요시나가의 이력을 생각하면 ‘남남 커플과 요리’란 그리 놀라운 조합도 아니다. 어쩌면 「어제 뭐 먹었어??야 말로 요시나가가 지향하는 궁극의 세계 두 가지를 절묘하게 섞어 놓은 작품일 것이다. 게이가 등장하지만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정도의 간단한 회상이 있을 뿐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중심은 시로가 매일 저녁 만드는 ‘집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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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이 다양한 음식만화들 중 특별한 이유는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의 재료들이 집 앞 슈퍼에서 부담 없이 살 수 있거나 어느 집 냉장고에든 한두 가지는 들어있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에피소드는 시로가 슈퍼에서 장을 보고 식재료를 고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집 근처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슈퍼에서 고른 재료로 만든 특별할 것 없는 시로의 음식은 엄마의 집밥을 닮았다. 특별하지 않지만 요리엔 만드는 이의 정성과 나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변호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게이’인 자신의 미래를 썩 낙관적으로는 보지 않기 때문에 늘 절약해서 노후 대비를 해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로는 매달 정해진 범위 안에서 식비를 해결하려고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의 과정에 과장이 없이 생활의 냄새가 나는 이유이다. 자취를 해 보거나 집에서 음식을 해 본 경험이 있다면 꽤 공감 갈만한 에피소드들도 많다. 특가 상품의 가격을 보며 별로 싸지도 않다거나 아무리 싸도 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 필요없다거나 하는 시로의 혼잣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레시피는 저녁식사로 흉내 내보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편안한 저녁식사. 당연하지만 어느새 특별한 것이 되어버린 시대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당신은 어제 뭘 먹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