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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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타케다 씨 댁이죠…? OX경찰서입니다. 오늘…14년 전 타케다 씨께서 실종 신고를 내셨던 따님이…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발견 현장은 나가노 현 OX마을 골프 주차장이며 시신은 사후 14년이 경과했는데 유류품 및 본인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연...

2016-01-13 김현우
“타케다 씨 댁이죠…? OX경찰서입니다. 오늘 14년 전 타케다 씨께서 실종 신고를 내셨던 따님이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발견 현장은 나가노 현 OX마을 골프 주차장이며 시신은 사후 14년이 경과했는데 유류품 및 본인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연락처는
-1권, 31~32p 中에서 발췌

샐러리맨으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한 남자. 가족은 아내와 딸 하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지만, 이 남자는 가족을 외면한 대신 회사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 바로 그 앞까지 왔다. 오랜 세월 동안 인고(忍苦)의 노력이 있었다. 회사에서 그 남자에게 붙여준 현재의 직함은 전무. 지금의 자리조차도 모든 샐러리맨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자리가 아닌 선택받고 살아남은 극소수 중의 한 명이지만, 그는 좀 더 확실한 결과를 원했다. ’사장’이라는 아주 쉽고 명확한 결과를. 그리고 마지막 목표인 사장실의 의자까지 가기 위해선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또 대가로 바쳐야만 다다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아마 그는 오랜 인생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더 이상 희생해야 할 것이 주변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가족사는 매우 독특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간장 및 췌장 상피성 악성 종양’으로 6개월 동안의 힘든 투병생활 이후 세상을 떠났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주변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경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그의 아내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14년 전, “여행을 다녀오겠다” 말하고 집을 나선 이후 갑자기 실종되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딸이….

그러나 그는 너무 괴로워서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로 일이 바빠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내의 간병도 딸 찾기도 ‘결과적으로’ 모두 외면해버렸다. 딸이 실종된 지 올해로 14년째.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텅 빈 집과 가족사진, 그리고 ’전무’라는 회사에서의 직위뿐이었다. 그런 외롭고 초라한 중년의 그에게 신(神)은 아주 가혹한 마지막 시험을 던진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악마의 농간이라고 보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잔인한 시험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가혹했던, 신인지 악마인지 모를 미지의 거대한 의지가 원했던 ‘사장 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마지막 대가는 바로 자기 자신의 목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만에 찾은 병원에서 자신이 아내와 똑같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의사의 입을 통해 듣게 된다. 아내의 경우와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의사의 말이 희망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담당의사는 딱 잘라 말했었다. “저희로서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마도 앞으로 반년 1년이 채 못 될 겁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다소 진행되긴 했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싸울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아직. 어디 이런 경우 수술보다는 약으로 타케다 씨 함께 싸워 나가는 겁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의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 “싸움이라는 건, 그렇게 된다는 거다! 최선이라는 건 그렇게 된다는 거야!” 아내의 마지막 모습, 암세포와 전쟁을 치르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풍경들이 그의 머릿속을 잠식했고 그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나오미, 용서해줘…. 이렇게 괴롭고 무서운 줄 알았더라면 당신을 외면하지 않았을 거야…. ‘일’이라는 핑계로 외면하고 도망치지 않았을 거야….

실종된 딸의 여고생 시절 사진을 보면서도 그는 말을 걸었다. “사와코. 벌이다…, 벌을 받은 거야…. 나오미를 내버려두고 널 찾을 생각도 않던 벌…. 이번에는 아빠 차례구나. 아빠가 죽을 차례…. 아빠가 버림받을 차례구나.”  

결국 공포와 회한, 자괴감에 깊이 빠져든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한다. 집 천장의 여유가 되는 곳에 줄을 묶고 자살을 시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 게 최선이라면 그런 게 싸움이라면 필요 없어!’ 아내의 고통에 몸부림치던 모습이 다시금 그의 뇌리를 스치며 그는 준비해놓은 의자로 자신의 몸을 올렸다. 목을 줄에 매기 전 그는 생각했다. ‘미안하다…. 좀 더, 좀 더 함께 있어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좀 더 좀 더 좀 더…. 미안하다!’

목에 줄을 걸고 마지막 한 걸음만 내딛으면 모든 것이 종막을 맞을 시점에 그의 텅 빈 집안의 적막을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찢어버렸다.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그는 회사에서 부하직원과 점심을 먹을 때 나눴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이 건이 성사되면 실적 면에서 이시야마 파벌을 따돌리고 앞서게 됩니다…. 그럼 필연적으로 차기 사장은 후후…. 성사되는 대로 연락드릴 테니….”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음에도 그는 자신의 몸을 받치고 있는 위태로운 의자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자신의 목에 줄을 걸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제 됐어….”,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마지막 넋두리가 그의 입을 통해 조용히 흘러나왔다. 받지 않은 전화는 전화기의 자동응답기능으로 넘어갔다. “용건이 있는 분께서는 용건과 연락처를.”

“타케다 씨 댁이죠? OX경찰서입니다. 오늘 14년 전 타케다 씨께서 실종 신고를 내셨던 따님이 ???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려던 그의 눈빛이 놀람과 충격으로 커지면서 전화기 쪽으로 돌린 그?? 얼굴에서는 어떤 느낌인지 형언하기 어려운 강렬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신호야! 내 남은 수명과… 네 살인 사건의 공소 시효… 이게 거의 일치한다는 건! 그야말로… 나한테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신호!”
-1권, 51p 中에서 발췌      

나가노 현에 위치한 경찰서에서 14년 만에 마주한 그의 딸, 사와코의 시신은 그저 끔찍할 뿐이었다. 살점 하나 남김없이 앙상한 뼈들만이 사람의 형태로 갖춰줘 있을 뿐, 그가 알고 있던 사진 속의 딸의 모습은 세상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의 눈앞에 누워 있는 백골들이 ‘현실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딸’의 모습일 뿐이었다. 

딸의 유골들을 수습해서 화장(火葬)한 후, 납골함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기차 안에서 그는 담당 형사와의 대화를 떠올렸???. “수사…? 예… 일단 개시는 했는데, 뭐니 뭐니 해도 14년이나 지난 사건이 되어놔서요…. 범인에 대해 무슨 유력한 단서라도 나왔다면 또 몰라도… 힘든… 수사가 될 것 같습니다…. 시효요?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입니다. 예? …예, 분명 남아 있습니다. 한 반년쯤…. 예, 그렇죠. 잘 아시는군요. 범인이 해외에 나가 있었을 경우 등에는 그 기간이 연장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좀 더 유예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1년은 될지도…. 수사본부요? 원체 14년이나 지난 사건이 되어놔서 그 정도의 구성을 갖출 수 있을지 없을지….” 형사의 말을 들으면서 그는 생각했다. ‘수사 따위 할 마음이 없어…. 한다 해도 대충대충 하고 말 거야…! 왜냐하면 저 사람들은… 슬프지 않으니까…!’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영정을 모신 불단 옆에 딸의 영정과 납골함을 놓고 합장하며 분향했다. 그는 생각했다. ‘사와코?? 죽고 싶지 않았던 거지? 내가… 지금 죽고 싶지 않은 것처럼.’ 결심을 굳힌 그는 다시 한 번 담당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담담히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각오도 다 하신 것 같으니… 말씀드리죠. 타케다 씨의 암은 이미 말기입니다. 남은 수명은 아마 한 반년쯤…. 하지만 1년 이상 생존한 사례도 있습니다.” 의사의 솔직한 말에 그는 운명을 느꼈다. 딸을 살해한 범인의 공소시효와 자신의 남은 수명이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의사에게 의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걸로 확실하게 결심이 섰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회사로 돌아가 사직서를 냈다. 그를 따르는 그의 파벌 사람들부터 충성심 깊은 부하직원들까지 모두 놀라면서 간곡히 만류했다. 그의 심복인 나카무라가 옥상에서 강하게 항의했다. “타케다 전무님, 왜 이러십니까?! 고지가 바로 눈앞이에요!” 그는 무언가 후련해진 듯, 의연한 표정으로 엷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뭘 위해??일까? 뭘 위해서 일을 하는 걸까? 뭘 위해서 출세를 하는 걸까? 나카무라… 뭘 위해서일까?”

집으로 돌아온 그는 딸의 방에 들어가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그 방의 시간은 그날 이후로 멈춰 있었다. 딸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세심히 살펴보면서 ‘딸과의 추억들’이 편린(片鱗)처럼 떠오른 그는 다시금 지난날 자신의 과오를 무겁게 느끼면서 괴로움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이번만큼은 실망과 자책으로 끝내지 않았다. 죽은 딸아이가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일종의 ‘사명’을 부여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아달라’고. 그는 다시금 마음을 강하게 다잡고 단서를 찾는 일에 집중했다. 막막함 속에서 시작한 단서 찾기, 조금씩 지쳐가던 그는 문득 오래 전 아내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아내가 같이 관(棺)에 넣어 달라 부탁했던 딸의 일기장, 당시의 그는 절대 그러지 말라며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서재로 달려가 ‘딸의 일기장’을 찾아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슬픈 사람이 직접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 범인은… 내가 반드시 찾아낼 거야!’


“생각대로였어! 그 뒤 곧바로 우??노 타츠키의 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관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14년 전 그 당시 나가노의 어느 작은 미술관에서 타츠키 전(展)을 한 적이 있었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 중학생의 그림을 보려고 사와코는 나가노에 갔던 게 아닐까? 우연이 아냐! 역시 사와코는 나가노에 갔던 거야. 아마 그 미술관에! 1984년 9월 15일 사와코가 여행을 떠났던 날, 그날도 이런 하늘이었을까? 살아있는 모든 것을 축복하는 듯한 푸른 하늘…. 따라가 보자…, 사와코가 그날… 14년 전 걸었던 길을, 사와코가 본 것을, 느낀 것을… 느껴 보자…. 이래 갖고 범인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는 나도 몰라. 뜬구름 잡는 듯한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선 그 정도밖에, 사와코가 정말로 여기에 왔다면 혹시 뭔가… 뭔가 남겨두지 않았을까?!”  
- 1권, 71~74p 中에서 발췌

<도박묵시록 카이지> <은과 금> <최강전설 쿠로사와> 등 극단(極端)의 인간모습을 리얼하고 처절하게 표현한 작품들로 수많은 독자들???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만화가 후쿠모토 노부유키가 원작(스토리)을 쓰고, <침묵의 함대> <메두사> <이글> <태양의 묵시록> <지팡구> 등 무겁고 심오한 사회적, 역사적 주제를 개성적인 자신만의 필치로 재해석해 담아낸 역작(力作)들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수많은 팬들에게 거장(巨匠)의 칭호를 얻은 만화가 카와구치 카이지가 작화를 맡은 매우 특별한 만화 <생존>은, 약간 두꺼운(신장판 형태) 두 권의 책으로 엮여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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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예전에 네 권짜리로 이 작품을 접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땐 왜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처럼 뭉클하고 강렬한 느낌을 받지 못했었다. 뭐, 큰 상관은 없다. 원래 좋은 ??품이란 건 읽을 때마다 해석의 여지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고, 나이나 경험에 따라 감동이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2015년 겨울에 두 권의 신장판으로 다시 만난 <생존>은,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필자에게 아주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겨주었다(1999년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당시의 일본에는 살인죄 공소시효가 있었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사라졌다고 한다. 읽으실 때 감안하시길 바란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작가 후쿠모토 노부유키나 <침묵의 함대>의 작가 카와구치 카이지나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 강렬해서, 사실 이런 특별한 기획은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원래 화학작용이라는 건 각자의 요소가 분해, 결합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것은 소멸하고 어떤 것은 새로 생성되면서 기존에 없던 절묘한 조합을 찾아가기 마련이고, 원래 있던 두 개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면서까지 각자의 원형을 유지한 채 화학작용을 통해 새로운 것이 발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 기획자나 콘텐츠 기획자들이 흔히들 저지르는 초보적인 실수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거장(巨匠)들??? 만남을 통해 ‘공동 작업’으로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대단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엄청난 대작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기획들을 구상하고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것인데, 이런 경우가 성공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물과 기름이 절대로 섞이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그들의 분야에서 거장(巨匠)이라 불리는 이유는 자신만의 선명한 색깔(또는 재능)과 남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자신만의 경험치(굳이 단어를 바꾼다면 기량이랄까 노하우랄까)가 명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둘은 원래 서로 다르다는 명확한 이유로 각자의 자리에서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들을 억지로(또는 인위적으로) 하나로 합쳐놓으려 한다면, 섞여서 시너지가 나기는커녕 반대로 엄청난 반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거장들의 만남을 통해 공동작업의 형태를 거쳐서 각자의 장점을 살린 좋은 콘텐츠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생존>의 경우가 그런 경우인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어느 한 쪽이 상대의 색깔에 물들어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느 한 쪽이 자신의 색깔을 ‘많이 뺀’ 상태로 작업하는 경우인데, <생존>의 경우는 원작자인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색깔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아마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글보다는 그림과 연출의 비중이 훨씬 커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원씨아이는 원작자 후쿠모토 노부유키와 작화가 카와구치 카이지의 ‘콜라보 콘텐츠’를 두 종류 한국어판으로 출간했는데, 지금 소개하는 <생존>외에도 한 권짜리 <고백>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두 작품에서 작화와 연출을 맡은 카와구치 카이지는 자신만의 그림과 호흡으로 후쿠모토 노부유키에게 받은 원작을 자신의 색깔로 물들여간다. 이것은 아마도 작품의 제목처럼 ‘작품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반대로 후쿠모토 노부유키가 작화를 맡았더라면, 엄청나게 잔인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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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메인 스토리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14년 전에 실종된 딸의 주검을 접하고 자신의 남은 시간, 범인의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까지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태워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소재만으로도 강렬한데 여기에 원작자의 치밀함이 스며들면서 읽는 내내 쫄깃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잘 만들어진 걸작 스릴러 하나가 탄생한 것 같다.

위의 리뷰 1, 2장에서 본문의 대사나 독백을 발췌하고 글로 각색한 부분이 본편의 만화로 따지면 고?? 2회 분량, 즉 작품의 도입부다. 사실 리뷰를 통해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작품의 정보나 인상적인 상황들이 훨씬 많지만 딱 도입부분에서 멈춘 것은 아직 이 작품을 ???하지 않은 분들의 읽는 재미를 고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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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장점을 꼽자면 아까 위에서 지적한 대로, 두 거장(巨匠)의 만남이라는 ‘위험한 화학작용’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면서 좋은 작품으로 탄생되었다는 것이다(물론 두 작가의 명성이나 개성만을 본다면 기대치에 한참을 못 미칠 수도 있다, 편집자가 ‘최고’보다는 ‘최선’을 선택한 느낌이랄까?). 원작자인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색깔, 즉 인간성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이라든가, 어떤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가서 평상시엔 숨겨져 있던 인간의 잔혹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낸다거나 하는, 그런 디테일한 묘사나 인상적인 스토리 전개도 충분히 맛볼 수 있고, 작화가인 카와구치 카이지 특??의 안정감 있는 탄탄한 작화나 스릴러에 최적화 시킨 절묘한 연출력 같은 요소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두 번째의 장점을 꼽자면, 책이면서도 왠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를 감상하는 듯한 독특한 느낌을 독자가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걸 원래부터 염두에 두고 만든 것지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야기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면서 강렬하게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느긋하게 앉아서 책장을 넘기며 대사나 상황을 음미하며 사색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극장 스크린 앞에 앉아서 “범인은 누굴까? 공소시효 내에 과연 잡을 수 있을까?”와 같은 조급함과 쫄깃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힘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원래 독자(讀者)와 관객(觀客)은 호흡 자체가 다르다. 책은 읽는 것이고 영화는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하루는 책을 읽고 하루는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동일인’일지라도,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점이나 집중도가 완전히 다르며 콘텐츠에 대한 해석이나 여운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책과 영화라는 두 개의 장르가 시장 속에서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별도로 존재하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아무리 만화라는 장르가 ‘글과 그림’이라는 특성 때문에 독자와 관객의 ‘중간형태’에서 소비되는 콘텐츠라 하더라도 출판물 특유의 감성이나 호흡이 존재하는 법인데, <생존>은 ‘약간 결이 다른 느낌’이다. 마치 윤태호의 만화가 아니라 강풀의 웹툰을 보는 느낌이랄까? 출판물보다는 영상물 쪽으로 좀 치우친 느낌이 드는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만화로서 훌륭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마지막 장점은, 훌륭한 원작과 그 원작을 만화적으로 훌륭히 재구성한 거장(巨匠)들의 뛰어난 기량이다. 주인공인 타케다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을 태워 혼신의 힘으로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 과정, 그 상황과 상황 사이의 디테일한 묘사(필사적인 단서 찾기라든지, 긴박감 넘치는 추적과정, 범인이 밝혀진 후 공소시효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대치과정 등등)?? 압권이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한동안 마음이 무겁고 뭉클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완결시키는 기술, 즉 기승전결의 과정이 매우 완벽에 가깝다는 반증인 것이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