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4월 7일부터 1980년 1월 26일까지 ‘나고야 TV’를 통해 총 43화로 방영된 ‘선라이즈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은, 애니메이션 역사에 강렬한 획을 그은 전설적 작품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전설의 명작이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탓인지 정작 첫 방영 당시에는 시청률이 낮아서 스폰서와 방송국의 압력에 의해 43화로 조기종영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방영 후반기부터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 있다”는 입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재방영에 들어간 이후 시청률 20를 가볍게 넘을 정도로 ‘전설’을 창조하기 시작하지만, 아무튼 기획 당시부터 첫 선을 보인 시점까지는 이 작품이 80년대를 상징하는 애니메이션이자 ‘혁명적인 작품’으로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콘텐츠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팬들에게 ‘퍼스트 건담’이라고 불리는 <기동전사 건담>은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아이의 적(敵)은 어른’이라는 테마로 기획한, 당시 소재 고갈과 매너리즘으로 고민하던 선라이즈 스튜디오의 새로운 시도 중 하나였다고 한다. 세계를 호령하는 재패니메이션의 계보가 1970년대를 대표하는 <우주전함 야마토>, 1980년대를 대표하는 <기동전사 건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시대의 대표작으로 삼듯이, 어느 시대에나 혁명은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당시 선라이즈의 기획자였던 야마우라 에이지는 소재와 형태가 계속 동어 반복되는 옴니버스 스토리를 벗어나 <우주전함 야마토>처럼 장편 대하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 하에, 야마토의 제작사인 오피스 아카데미에서 데이터를 입수, 분석하여 <우주전함 야마토>가 마니아층을 타깃으로 삼아 기획한 사업임을 파악한다. ‘하이타깃을 설정해 30만에서 40만의 열광적인 팬들을 잡으면 장사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고, 매주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두기 위해 계속 스토리가 이어지는 작품을 기획한 것이 <기동전사 건담>의 시발점이었다.
초기의 설정은 <우주전함 야마토>의 영향이 짙어, 우주전함을 타고 유랑하는 <15소년 표류기의 우주판> 같은 느낌이었고 등장하는 메카닉도 ‘화이트 베이스’와 우주전투기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폰서인 클로버가 “완구매출을 위해 로봇이 반드시 등장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여 제작 노선을 대폭 수정하게 되었고, 스폰서와 제작사가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거쳐 마징가Z와 똑같은 18m의 신장을 가진, 실제 전쟁을 모방하여 장거리, 중거리, 백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세 종류의 로봇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기획 당시 스튜디오 누에의 타카치호 하루카가 <스타쉽 트루퍼스>와 <파워드 슈트>를 모방한 디자인을 선라이즈에 제시했고 <파워드 슈트>의 삽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디자인을 한 것이 ‘모빌슈트’의 콘셉트로 발전하였다. 원래는 주인공이 탑승할 메카를 <스타쉽 트루퍼스>에 등장하는 장거리 전차형으로 구성하였으나, 이 역시 “탱크의 캐터펄트를 완구로 구현하려면 단가가 많이 상승한다.”는 스폰서의 반대로 인해 ‘일본식 갑주’를 모태로 디자인 한 백병전 메카닉으로 변경되었으며, ‘파워드 슈트’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면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당할 우려가 있어서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최종적인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인 토미노 요시유키는, 20대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액션 활극과 로맨스를 펼치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스토리를 비틀어 ‘사랑’을 중심 테마에서 배제하는 한편, 등장인물의 연령대를 10대로 대폭 낮추어 ‘전쟁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소년들의 성장기’로 스토리의 중심축을 삼는다.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여타의 다른 로봇 애니메이션처럼 매 화마다 적의 메카가 한 대씩 꼭 나오는 작품으로 하라.”는 스폰서의 압력이, 초기 설정엔 오직 ‘자쿠’ 하나뿐이었던 ‘지온공국’의 ‘적(敵) 메카’를 ‘돔’이니, ‘구프’니 하면서 수중전형, 육전형, 고기동형 등등으로 다양하게 차별화시켜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며, 이로 인해 <기동전사 건담>은 향후 최고의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춘 셈이 되었다. 후에 작화감독을 맡은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14화와 15화 같은 경우는, 스폰서의 요구로 급히 노선 변경을 하느라 시간벌기용으로 급조된 에피소드였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스폰서와 제작사가 첫 방영 당시에 매우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양자 간의 갈등과 불만은 쌓이고 쌓여 초반의 시청률 부진과 기대 이하의 완구 매출로 결국 조기종영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후반부 들어 입소문을 타면서 시청률과 완구 매출이 눈에 띄게 상승하자 스폰서 측에서 급히 조기종영 요청을 철회하였으나, 토미노 요시유키는 이를 무시하며 냉정하게 거절, 총 43화, 평균 시청률 5.3로 종영되며 ‘전설’의 첫 시작은 이렇게 초라하게 마무리된다.
<기동전사 건담>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팬들에 의해 ‘건프라’라고 불리는, 건담 프라모델의 탄생비화도 매우 독특하다. 재방영 이후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기동전사 건담>은 카와구치 카츠미를 중심으로 결성된 모델러 집단 ‘브레인 베이스 팀’이 완구 최초의 ‘풀 스크래칭 빌딩(부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작하여 모형을 제작하는 방식)’ 형식으로 모빌슈트 모형을 제작, 발표하면서 완구시장에서 선풍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건담의 상품성을 제대로 파악한 ‘반다이’의,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어찌나 인기가 좋았는지 건프라 판매 장소에 사람이 하도 몰려 압사 사고가 일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재방영 이후,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프라모델을 비롯한 관련 매출이 급증하며 <기동전사 건담>이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자,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은 TV판을 다이제스트로 편집한 3부작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개봉하였고, 이 극장판은 발표될 때마다 그 해 일본영화 흥행 순위 탑 10에 들 정도로 대???공을 거둔다.
1981년 2월 22일, 신주쿠의 광장에서 ‘애니메이션 신세기 선언’이라는 이벤트가 개최된다. 1만 5천 명이라는 대군중이 모여들었고, 감격한 토미노 요시유키는 “이만큼의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위해 이벤트를 개최하였는데 어째서 애니메이션을 저속하다고 표현하는 것인가”라는 내용이 담긴, 명연설을 발표한다. 1982년 3월 13일, TV판 31화부터 43화까지를 편집한 <기동전사 건담3, 해후의 우주>편이 개봉하고, 12억 9천만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흥행수입을 거둬들이며, 그해 애니메이션 영화 수익 1위의 기염을 토한다. 프라모델을 비롯한 관련 상품의 매출은 수직상승하였고, 극장판의 주제가 역시 속속 오리콘 차트를 점령하는 등, <기동전사 건담>은 이때를 기점으로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발전하였다.
전설이 시작된 이후, ‘건담’은 OSMU와 미디어 믹스를 상징하는 콘텐츠처럼 엄청난 수의 관련 상품과 신(新)시리즈를 꾸준히 세상에 내놓게 된다. 팬들에게 ‘우주세기 시리즈’라고 불리는, 퍼스트 건담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Z건담’처럼 전설의 첫 작품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부터 ‘헤이세이 건담’, 신(新)건담이라 불리는 ‘건담X’나 ‘건담 SEED’ 같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수의 건담들이 탄생 35주년을 맞은 지금까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건담의 본령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소설, 만화, 게임 등등 다른 매체로 옮겨져 제작된 관련 콘텐츠들도 매우 다양하고 방대하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도 이러한 건담 관련 콘텐츠 중 하나이며 ‘우주세기’를 배경으로 한 오리지널 작품이다.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일평>, <문라이트 마일>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만화가 오타가키 야스오가 그린 건담 코믹스다. 월면 도시로 이주한 인류의 모습을 리얼하고 드라마틱하게 펼쳐낸 <문라이트 마일>로 팬들에게 ‘극사실주의 SF작가’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은 그가, ??담 애니메이션의 외전이나 관련 스토리가 아닌 우주세기 오리지널 스토리를 그린다고 하여 연재 초기부터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2015년 2월에 5권(한국어판으로는 2015년 5월 현재, 4권까지 나와 있다)이 발매되면서 ‘건담 코믹스’로는 드물게 누계부수 40만 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쇼가쿠칸(小學館)의 격주간 만화잡지 <빅 코믹 스페리올>에서 연재 중이며, 코믹스의 인기에 힘입어 반다이에서 HG등급으로 ‘썬더볼트 시리즈’ 프라모델이 6종 발매되었다. 애니메이션 제작 소식은 아직 없다.
작품의 배경은 ‘1년 전쟁’의 말기, 콜로니의 잔해와 잦은 전투로 인한 무수한 데브리가 떠다니며 수시로 강력한 방전을 일으키는 ‘썬더볼트 주역’이다. 썬더볼트 주역은, ‘아 바오아 쿠’로 가는 중요한 보급로였기에 필사적으로 이 주역을 지키려는 지온공국과 어떻게든 이 주역을 빼앗으려는 지구연방 간의 치열한 전투가 반복되고 있는 곳이다.
이 작품도 건담 시리즈의 인물 패턴인 두 명의 주인공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 지온 공국을 대표하는 주인공 캐릭터는 ‘데릴 로렌츠’ ??사로, 전쟁 중에 두 발을 잃고 의족을 단 채 상이군인으로만 이루어진 ‘리빙데드 사단’에 들어가 ‘에이스 스나이퍼’가 된 인물이다. 1권 도입부에 연방군 병사들에게 ‘혼자서 40기를 저격했다’고 소개되는 원거리 스나이퍼로서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인물이며 저격용으로 개조된 ‘자쿠Ⅱ’를 탄다. 지구 연방 측의 주인공은 ‘이오 플레밍’ 소위로, 엄청난 승부욕과 집념을 지닌 남자로 천재적인 조종 실력을 타고난 ‘사이드 4 무어’ 출신의 파일럿이다. 썬더볼트 주역의 장악을 위해 새로 개발된 ‘풀 아머 건담’을 타고 출격, 리빙데드 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의 매력은 기존의 건담 세계관(우주세기)에 오타가키 야스오만의 색깔이 아주 적절히 배합되어 매우 긍정적인 화학반응이 일어났다는 데 있다. 건담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우주세기 1년 전쟁’을 작품 배경으로 삼은 것도 이 작품의 성공 요인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무엇보다도 작가가 새롭게 창조해낸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에 관한 묵직???고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이 작품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상이군인으로 이루어진 지온공국의 리빙데드 사단이나, 지구연방군에 속해 있긴 하지만 실상은 무어인이라 불리며 무시당하는, 콜로니4 출신들로 이루어진 비하이브 함대의 인물들은 그간 보지 못했던 독특하고 신선한 건담의 캐릭터이며, 이 독특하고 신선한 캐릭터들이 기존의 ‘건담 VS 자쿠’(또는 연방 VS 지온)의 대결 구도에 새로운 긴장감과 감동적인 드라마를 선사하며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강하게 끌어들인다.
오타가키 야스오가 새로 디자인한 모빌슈트들도 아주 매력적이다. 썬더볼트 시리즈로 프라모델이 출시될 만큼, 저격용으로 개조된 ‘자쿠’(Ⅰ,Ⅱ를 바탕으로 한 BIG GUN 자쿠와 사이코 자쿠)와, 연방의 주역 모델인 ‘짐’의 개량 모델, 그리고 엄청난 화기와 방어구로 무장한 ‘풀 아머 건담’까지 아주 멋지고 신선한 디자인의 메카닉들이 등??한다. 4권에 들어서는 지구로 작품의 무대를 옮겨 새로운 모습의 ‘화이트 베이스’와 단좌식으로 개량된 ‘앗가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담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며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아틀라스 건담’이 4권의 라스트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건담 시리즈’를 전혀 몰랐던 사람들도 읽기에 아무 불편이 없는, 사실적인 SF세계관과 훌륭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는 오리지널 시리즈라는 점이다.(기존의 건담의 팬들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 아직 접해보지 않은 독자들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왜 건담이 애니메이션의 전설로 불리는지, 어떻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대를 거쳐 가면서 계속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