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때는 불행하고 암울한 시기를 지날 때이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면 아직 이뤄지지 않는 꿈과 달콤한 미래를 상상하면서 고통을 잊기 때문이다. 복권 한 장이면 일주일 동안 벼락부자가 되는 상상만으로 출근길을 버틸 수 있고 머잖아 각종의 합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매일 밤잠을 줄이며 책과 씨름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의 피니시 라인을 눈앞에 둔 불치병 환자들은 어떤 환상을 꿈꾸며 앞으로 나갈까. 작가 김보통의 <아만자>는 그 궁금증을 담담하면서도 흡입력 있게 풀어서 독특한 감동을 선사한다.
주인공 아만자는 스물 여섯 살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암환자이다. 날벼락 같은 현실을 가족에게 고백하고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 진통제에 취해 잠에 빠져든 아만자는 신비로운 숲에 떨어진다. 그리고 가라사니, 호드기, 더펄이라는 생명체를 만나면서 사막의 왕 때문에 숲이 점점 사막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숲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막의 왕을 만나러 떠나는 아만자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면서 남은 생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아만자>는 일반 병실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암환자와 가족들의 현실을 낱낱이 보여주고 동시에 환상 속 여행과 모험을 전개하며 현실에 숨겨진 인생과 가족, 용서와 애도의 의미를 그린다. <아만자>는 암환자의 현실과 환상 속 모험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허상처럼 보였던 아만자의 꿈은 투병생활 속에서 잊고 있었던 생의 의미가 가진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아만자의 현실과 환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 비밀이 흥미진진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암울하기만한 암환자와 가족 앞에 놓인 씁쓸한 현실을 아만자의 모험에 대비시켜 사막의 의미와 왜 사막의 왕을 막아야하는지에 몰입시킨다. 독자들은 끔찍한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병실의 아만자를 동정하기보다 온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더라도 사막의 왕을 만나러 가는 아만자를 응원하며 위로를 얻는다.
아만자의 끈질긴 삶의 의지는 곧 삶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이어진다. 투병 생활을 시작한 아만자는 통증을 견디기 위해 진통제에 의지하면서 깊은 외로움에 빠진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탈출구도 없이 죽음을 향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만자는 환상 속에서 만난 수부기에게 “사라져버리고 싶을 만큼 외롭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만자는 사막의 모래처럼 사라진다 해도 살아있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할 만큼 생의 의지와 의미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현실과 환상 속을 오가면서 아만자는 자신이 누군지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다가 비커리를 만나고 나서야 어디로 가서 무엇을 구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작가는 비커리를 만나기 위해 함께 모험을 한 친구들을 통해서 인생을 끈질기게 살아내자고 말한다. 철규가 비커리와의 만남으로 제 2의 기회를 얻는 것도 그가 ‘도망치지 마!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건 실패조차 못해보는 거야’라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비로소 생의 의지를 불태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는 아만자와 비커리와의 만남을 통해서 출구가 없는 외로운 죽음의 길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불태우며 사는 것이 생을 사는 자의 도리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 끝은 정해졌고 피할 수 없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비커리와 헤어진 아만자는 잃어버린 마음과 사막의 왕을 찾는 모험으로 이어진다. 아만자라는 이름도 비커리와의 대화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며 본격적인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황폐한 모래 사막을 통과하면서 아만자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조금씩 사막의 왕에게로 다가간다. 두 눈을 가린 채 아니다만 반복하고 뜨거운 분노를 토해내다가 용서의 눈물로 상처를 치유하고 스스로 생의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 장기기증으로 타협하며 눈과 손, 발이 떨어져나가도 혼자서 외롭고 우울한 모래의 성을 올라가는 아만자의 모험은 조금씩 사막의 왕에게 가까워진다. 아만자는 사막의 의미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죽음이라고 여기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죽음 뒤에 가려진 새로운 의미를 깨닫는다.
<아만자>는 독자에게 불치병 환자를 내세워 인생 자체가 선물인 것처럼 포장하지 않는다. <아만자>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현실에 치여 사는 소시민들이다. 이들은 선물처럼 주어진 인생에 무조건 감사하기보다는 팍팍한 생활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우울한 사람들이다. 이 불행한 사람들은 비겁하고 구질구질한 인생에 매달리며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죽어도 죽는 순간까지도 살아낼 거야라는 눈물겨운 다짐을 통해서 인생을 받아들이려는 끈질긴 노력에서 생의 의미가 비롯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홀로 남겨지는 게 두렵고 실패에 무너져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더라도 버티고 버텨서 악착같이 사는 것만이 인생을 사는 자의 도리이자 책임이라고 전하는 듯하다. 끝이 보이더라도 그 끝 앞에서 망설이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한번뿐인 허망한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만자>를 통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라고 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후회 없이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라고 독자에게 생의 비밀을 전해준다.
누구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다만 그 피니시 라인이 눈앞에 얼마나 가깝게 두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비록 <아만자>는 인생의 피니시 라인을 원치 않게 넘어야 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무리 끔찍한 인생이라도 멈춰서 고민하고 주저하기엔 짧으니 어서 뛰라고 등을 밀어주는 위로를 얻게 된다. 두려움과 고독을 ???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 슬픔에서 벗어나 행복을 구하려는 마음이 한번뿐인 인생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조건임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