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후유증

드라마 ‘후유증’은 총 11부작으로 만들어져 올해 1월 웹을 통해 발표됐다.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이돌이 주인공을 맡아서 화제가 되었고, 회별 누적 조회수가 수십만 건에 이르면서 이른바 ‘웹드라마 열풍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웹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2014-10-28 김성훈
드라마 ‘후유증’은 총 11부작으로 만들어져 올해 1월 웹을 통해 발표됐다.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이돌이 주인공을 맡아서 화제가 되었고, 회별 누적 조회수가 수십만 건에 이르면서 이른바 ‘웹드라마 열풍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웹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으며, 일본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는 ‘후유증’은 알다시피 김선권의 동명 웹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원작의 경우 2012년에 발표되었으니 이미 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드라마처럼 웹툰 역시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그러니 이 작품, 새삼 그 내공이 궁금해진다.


“목소리에서 참기 힘든 악취가 풍겼다”

주인공 ‘안대용’은 백수다. 취직과 학업 등 사회적 활동은 하지 않은 채 게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괜찮다고 다독이지만, 새아버지는 ‘쓰레기’라며 심할 정도로 구박한다. 그리고 비난의 화살이 자신이 아닌 어머니에게로 향하자, 결국 대용은 자살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빌라 옥상에서 몸을 날리지만, 자동차 위에 떨어진 덕분에 다친 곳도 없이 멀쩡히 살아남는다. 헌데, 그는 정말 ‘멀쩡히’ 살아남은 것일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대용은 스스로 자신이 어딘가 변했다고 느낀다. 그리고 변화의 출발점이 ‘소리에서 냄새를 맡는 후유증’에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자신에게 호감을 지닌 사람의 목소리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며, 적대감을 지니고 내뱉는 말에는 악취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설령 겉으로는 좋은 얼굴을 하고 있더라도 나쁜 속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지없이 악취가 나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이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믿을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작품은 이처럼 소리와 냄새의 불가분한 관계를 통해 사람의 진심을 읽을 수 있다는 독특한 설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이종교감’의 능력은 지금껏 타인으로부터 쓰레기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존감을 잃어버린 채 살아온 주인공에게 새로운 세상을 제안한다. 즉,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에 대해 쓸모없다고 욕하더라도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재확인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짝사랑 하던 여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새아버지와 함께 살 때에도 주인공에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괜찮다”면서 주인공에 대한 무한 사랑과 애정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식 사랑은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아들을 위해 새아버지와 헤어지고 아들을 위해서만 살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녀의 진심어린 말 속에서 주인공은 짙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한편, 자살 전 주인공은 새아버지의 박대를 피할 때면 빌라 옥상에 올라 한숨을 돌리고는 했다. 그때마다 자주 마주쳤던 한 여인에 대해 흠모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백수 처지라서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자살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후유증’을 통해 자신에 대한 타인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게 된 주인공은 이제 그 여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결심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악취가 아닌 향기로운 목소리를 보여준 ‘주희경’의 반응에 따라 주인공도 이제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평생 남에게 먼지 만큼도 쓸모없었던 내가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자살에 실패한 덕분에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 주인공. 게다가 특별한 능력까지 얻어서 자신을 향한 다른 이들의 진심을 알 수 있게 된 덕분에 꿈꾸던 사랑까지 덤으로 얻게 된 그는 얼마 뒤, 자살의 후유증이 단지 목소리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즉, 죽음에 이르게 될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까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가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 붉은 색일 경우 곧 죽음이 닥쳐오게 된다. 다만, 이처럼 ‘곧 죽게 될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은 얼핏 생각해보면 살아가는데 전혀 쓸모가 없는 듯하다. 그저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을 예견하게 되므로 마음 약한 사람에게는 꽤 괴로운 능력이다. 남에게 도움은 안 되더라도 피해는 주지 말자는 생각으로 지내온 주인공에게도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제 사랑하는 여인도 만나게 된 마당에 이런 골치 아픈 능력은 하등에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무시’다. 사람들의 눈이 붉은색으로 보이든 말든 그저 모른 채 지나면 평범한 일상이 보장될 것으로 믿었고, 실제로 한동안 평온하게 여자친구와 데이트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정작 그의 능력이 ‘꽤 쓸모 있음’을 자각할 기회는 우연히 찾아온다. 희경을 만나기 위해 공원에서 기다리던 대용은 우연히 조건만남을 하러 나온 여인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붉은색임을 알아채고는 사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자리를 피한다. 그런 대용을 오해하여 계속 뒤쫓아 오던 여인의 눈은 어느새 붉은색이 아닌 평범한 색으로 변한다. 즉, 그녀는 대용을 쫓아감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살인자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다. 대용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죽음에 직면한 이들의 삶 속에 조금만 개입하더라도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자각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된다는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해 적극적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도록 견인한다. 


001.jpg
 

“욕망이 적으면 적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더 이상 자신이 지닌 특별한 재능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며 많은 이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기에 이른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도 기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편, 푸른색 눈은 곧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 주인공은 위험에 빠진 사람들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비록, 자신의 능력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이 모를지라도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그동안 찌질했던 그의 인생을 점점 즐겁고 행복하게 바꾸어 나간다. 게다가 그런 선행이 경찰서에까지 자주 오르내리자, 이제 동네에서는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인사가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유명세가 더해가자 주인공은 욕심이 생긴다. 사실 그의 선행은 그저 착한 일이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므로, 더욱 많은 이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길 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거대한 욕망으로 자리잡힐 즈음, 그는 엄마와 여자친구가 자신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초심’을 잃는다. 과거의 자신처럼 무능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쓰레기’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자신은 그들과 전혀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여러 사람들이 자신을 찾게 되자, 여자친구 희경에게도 소홀해진다. 전화가 와도 귀찮아서 받지 않으며, 바쁘다는 핑계로 일부러 만남을 피한다. 희경을 향해 내뱉는 말들이 향기로웠던 시간은 멀어져 가고, 어느새 그녀를 향한 목소리에 악취가 생긴다. “욕망이 적으면 적을수록 인생은 행???하다”는 문구가 그의 귓가에서는 맴돌지만, 그것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기엔 어느덧 그의 욕망은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이처럼 작품은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무언가 한 가지 특출난 재주가 있을 수 있으며, 죽음이 일어나게 되는 모습을 통해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행복이라는 가치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욕심이 커질수록 행복의 무게감은 더욱 낮아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작품의 마지막은 꽤 의미심장하다. 변해버린 대용의 모습에 희경은 이별을 고하고, 대용은 희경과 헤어지게 되는 원인을 새아버지에게로 돌린다. 그리고 파란눈으로 변해버린 대용을 막기 위해 희경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러니 파란눈인 대용이 다시 평범한 눈으로 돌아오는지 혹은 그대로 파란눈을 간직하게 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과연 주인공은 특별한 재능이 부른 과도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평범한 일상의 행복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필진이미지

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