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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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얼간이들

웹툰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십여년 전과 비교해 본다면 최근의 모습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양적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루어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초창기 손에 꼽을 만하던 작품의 수는 현재 주요 포털 세 곳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 수만 합쳐도 이...

2014-09-01 김성훈
웹툰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십여년 전과 비교해 본다면 최근의 모습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양적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루어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초창기 손에 꼽을 만하던 작품의 수는 현재 주요 포털 세 곳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 수만 합쳐도 이백 편이 훌쩍 넘는 변화를 가져왔다. 여기에 만화전문 사이트의 작품까지 합친다면 그야말로 ‘요즘 대세는 웹툰’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작가,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고 있으니, 그만큼 웹툰도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얘기도 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가운데서도 ‘군계일학’의 작품은 분명 있다는 사실이다.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이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선천적 얼간이들>은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지난 2012년 6월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2013년 10월까지 총 70회로 연재가 마무리 되었다. 독특한 그림체, 기묘한 캐릭터 그리고  재기발랄한 패러디 등으로 연재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입소문을 타더니, 곧 단행본이 출간되었고 급기야 올해는 부천만화대상에서 우수상을 차지해 인기와 함께 작품성도 공인받았다. 말하자면, 수많은 작품 가운데 군계일학이 된 셈이다. 그럼 이 작품이 어떻게 ‘한 마리의 학’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매력 포인트를 꼽아보자.
 
1. 일상적인 이야기
 
무엇보다 <선천적 얼간이들>이 지닌 특징은 작품의 소재가 지극히 일상적이라는 데 있다. 곧 문을 닫게 될 동네 동물원을 방문했던 기억이나 지인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카페에서의 경험담 등이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혹은 PC방에서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며 나누는 시시껄렁한 대화도 고스란히 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다. 가령, 학창시절 축제 장기자랑에 대한 에피소드인 ‘우리는 락스타’ 편을 들여다보자.
 
락 스피릿에 충만한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은 의기투합하여 오디션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매일 방과 후 연습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안타까움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오디션에 대한 개인적 경험으로 출발하여 한국 락 페스티벌의 특징까지 보여주게 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모습 하나하나가 모두 ‘만화적’일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만큼 작품은 ‘생활밀착형’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육두문자 역시 매우 현실적이다. 물론 원색적인 표현이 여과없이 나타나려고 할 때 다른 말풍선이 그 대사들을 가려버리는 작가의 센스도 빛난다. 이처럼 만화가 지닌 독창적인 문법을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더해져 작품은 누구라도 즐길 수 있으니, 이 또한 누구에게나 ‘일상적인 만화’라 할 수 있으리라.
 
2. 우화적 표현 
 
<선천적 얼간이들>이 지닌 또 다른 특징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즉,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행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물들의 모습은 모두 개나 고양이 혹은 물고기와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인간의 그릇된 모습을 동물에 빗대어 웃음과 함께 교훈을 이끌어낸 전통적인 우화의 방식과도 매우 흡사해 보인다. 가령, ‘삶의 모토’를 주제로 잡은 에피소드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인맥관리의 황제인 학교 선배는 들개의 얼굴로 등장한다. ‘은혜와 복수는 반드시 갚는다’는 그의 좌우명은 결초보복(結草報復)하는 행동들과 어우러지며 동물적인 얼굴과 조화를 이뤄낸다.
 
마음에 든 연상녀에게 다가서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 돈을 모아 다이아몬드반지를 산 ‘아는 동생 데이브’의 얼굴 역시 이목구비 뚜렷한 메뚜기의 모습이다. 그는 연상녀에게 고백했지만 실연을 당한 후 상처와 깨달음으로 ‘다이아몬드만 영원히’라는 좌우명을 얻는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얼굴은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는데, 느리고 우직하지만 또한 순박한 느낌을 지닌 거북이의 특징은 고스란히 주인공의 성격으로 전이된다. 다만 고전적인 우화가 인간화된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선천적 얼간이들>의 경우 동물화된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 한편으로 그것은 인간이 여전히 진화 중이라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 끊임없는 언어유희
 
<선천적 얼간이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은 대사 하나 하나가 견고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 간의 대화나 특정인물 혼자만의 독백 등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러한 언어사용의 묘미는 그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말장난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것은 특히 그림과 ‘일체화’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성난 정의’ 편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주인공의 친구 ‘산티아고’가 등장하는데, 그는 ‘불의를 참지 않는 정의의 사나이’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 그가 금연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길을 가던 중 흡연 중인 어린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금단현상에 시달리고 있던 그의 분노는 청소년 교화의 목적과는 약간 다른 초점을 보여주며 웃음을 끄집어낸다.
 
거기에 학생들을 나무라는 친구의 모습을 본 주인공이 “라마단 기간에 삼겹살집 손님 패는 것 같군!”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주인공의 분노가 담배 피우는 학생들에게로 쏟아지는 과정을 한 문장으로 담아낸 이러한 대사는 ‘언어유희의 묘미’를 매우 밀도 있게 보여주는 셈이다. 한편, 이른바 ‘청소년 치안’이 좋지 않았던 동네에 대한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일진 사냥꾼’ 에피소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 ‘불량배’에 대해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일곱 살의 주인공은 돈을 빼앗는 중학생에게 서슴없이 돈을 건넨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당당하게 다시 돈을 달라고 하고, 주인공으로부터 돈이 없어진 사연을 들은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스톡홀롬 증후군’이 아닌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스톡홀롬 증후군’은 불량배에 대해 분노나 무서움을 느끼기보다는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받아들인 아들의 생각과 행동을 비꼬는 단어로서 선택된 것이다. 이처럼 <선천적 얼간이들>이 담보한 언어유희는 그것이 찰나의 감각보다는 상황에 대한 좀 더 ?????직한 입담임을 거듭 확인시켜 준다.
 
4. 사건의 유형화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작품이 사람들의 모습을 몇 가지로 유형화시키는 데 있다. 가령, 커피숍을 찾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특별한 손님들’ 에피소드를 살펴보자. 여기에는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에 따라 손님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한다. ‘기생수형’의 경우, 손님이 대개 커플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주문은 숙주로 일컬어지는 한 명이 도맡아 하는 부류다. 한편, ‘에스프레소 도전형’은 말 그대로 에스프레소를 처음 마셔보는 손님들을 일컫는데, 이들은 ‘작고 쓰다’는 바리스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주문을 바꾸지 않다가 한 모금 마신 후 불평하는 특징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전서구형’은 다수로 구성된 손님들 가운데, 한 명이 대표로 주문을 하러 왔다가 커피의 유형, 크림의 가감, 포인트카드의 소지 여부 등 종업원의 갖가지 확인절차에 따라 여러 번 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처럼 유형화 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우여곡절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서 웃음의 포인트로 작용한다.

지금 우리는 수백 편의 웹툰이 연재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작품, 좋은 만화가 나올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진다는 얘기로 이어진다. 그것은 만화 독자로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당신의 손에 선택된 <선천적 얼간이들>은 분명 당신의 얼굴을 웃음으로 가득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 만일 당신이 아직도 이 작품을 보지 못했다면 부디 ‘얼간이들’의 해피 바이러스에 하루 빨리 감염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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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저자
http://blog.naver.com/c_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