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시간>은 고 김근태 의원이 겪은 고문의 기록 <남영동>을 바탕으로 박건웅 작가의 취재와 구성이 더해진 작품이다. 김근태는 1985년 9월 4일부터 22일간 10차례 끔찍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김근태가 겪은 고문의 기억이 그의 목소리로 서술된다. 작품의 또 다른 한 축은 작중 화자인 만화가 이기영이다. 기영은 학생운동을 하다가 군대에 갔다 오고 졸업해 사회에 나와서 여러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기영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만화 작품을 준비하고 있으며, 현재는 인권센터로 바뀐 남영동에 취재를 간다. 이 작품은 김근태의 이야기에 기영의 삶이 겹쳐지면서 그 두 삶이 이어지는 장면을 목격하는 독자들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어두운 과거의 기억, 현실의 공포
<짐승의 시간>은 읽기가 버겁다. 두툼한(564쪽) 양장본은 보기에도 무겁고, 여느 만화라면 흰색으로 남겨질 공간은 꽉 닫힌 듯 검게 채워져 있다. 암실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밀려온다. 상대는 뱀처럼 혀를 쉴 새 없이 낼름거리며 나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는데, 나는 상대가 누군지조차 모를 때의 공포감.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고,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부로 옮겨온다. 이 공포와 불안은 애써 피하려고 했던 과거의 선명한 기억 때문이다. 폭압시대에 대한 기억이, 신음하는 인간의 절규가 책장을 떨리게 한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이 짓밟히고, 인간의 폭력성이 끝 간 데 없이 드러나는 장면이 되풀이 되면서 눈은 어둠에 익숙해진다. 굵고 거친 선을 뚫고 고문의 고통이 흐느껴 울고, 고문 기술자의 한마디 한마디는 고통보다 더한 폭압의 시대를 증언한다.
공포는 어둠 때문이 아니었다. 어둠은 30여 년 전 기억을 불러온 배경일 뿐, 공포는 지금 이 순간에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근태와 이기영. 과거와 현재.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이제 어둠을 뚫고 현실을 똑바로 봐야만 한다. 이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건 이 방법밖에 없다. 기영한테서 똑같은 공포만 되풀이해서 본다면 우리는 그 공포와 절망을 끝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짐승의 시간>은 김근태의 이야기와 만화가 이기영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흔히 하듯 과거의 김근태는 흑백으로, 현재의 이기영은 채색해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조차 흑백으로 그려내면서 과거가 과거에서 끝나지 않았음을, 이기영이 사는 현재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짐승의 시간>은 정치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쿠데다 군사정권, 정치범, 공권력, 고문, 폭로. 더 이상 정치적일 수 없는 소재들이다. 그런데 이 속에서 한 인간이 꿈틀거리고 있다. 거기에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져있다. 한 사람의 드라마, ‘한 인간이 겪은 고난과 그 고난의 극복기’로 이 작품을 소개하면 정치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려는 기만술로 비춰질까. 우리는 한 사람이 품는 시대, 한 사람이 그리는 드라마에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현실에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는 그럴 리 없다고 손사래 친다. 500년 전에 죽은 이순신이어야 전란의 시대를 통째로 안을 수 있나. 여기 그런 사람이 있다.
한 가지 색으로 그려낸 수 만 가지의 감정
매 작품마다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체를 고민해왔던 박건웅 작가가 이번 작품을 위해 선택한 것은 ‘먹’이다. 전기고문의 고통은 펼쳐진 양쪽 면에 걸쳐 하얗게 표현되었고, 물고문의 고통을 전하는 정점은 역시 전면에 묵직하게 채워진 검은 먹이었다. 온통 검은 바탕에 하얗게 긁힌 생채기는 고통스러운 상처를 더 극대화시킨다. 색이 없기에 선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되고, 표현 요소로서의 ‘공간’은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낸다. 펜선이 아니라 붓으로 그려졌기에 끝없이 빠져 들어가는 심연의 고통을 더욱 선명하게 표현한다. 고문의 고통과 점점 황폐해져가는 주인공의 심리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선으로 그려지는데 검은 선이 주는 서늘함과 검은 공간이 주는 공포에 소름이 돋는다.
흔히 이야기의 전환을 위해 넣는 배경 컷들도 <짐승의 시간>에서는 버릴 장면 없이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김근태와 인재근의 만남 사이, 고문과 고문의 고통 사이에 들어가는 배경은 달아오른 독자들의 감정을 헤치지 않고 다음 장으로 이어간다. 칸 사이를 독자들의 상상으로 채우도록 유도해 낸다.
두 명의 화자가 이야기하는 한 가지 질문
<짐승의 시간>을 보는 재미는 두 명의 이야기를 교차시킨 구성적인 장치에 있다. 작품의 주축은 당연히 김근태가 겪은 남영동에서의 기록이지만 이기영의 이야기를 삽입하면서 두 가지의 효과를 얻는다. 첫 번째는 감정의 조절이다. 끝없이 가해지는 고문을 목격하면서 독자들은 마음이 버겁고 상처 입는다(실제로 한 번만으로도 견뎌내지 못할 것 같은 그 고통이 22일간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날카로워진 독자의 감정이 현재의 화자, 기영이 개입하면서 독자들의 피로도를 줄이는 것이다.
두 번째 효과는 작가가 독자에게 하는 질문을 드러내게 한다는 것이다. 기영이 군대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마주했을 법한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른바 운동권이었던 기영이 군대에서 운동권의 배후를 지목하라는 압박을 받고 그 강압에 순응해 밀고하는 모습은 김근태가 겪은 고문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겪을 법한 현실이다. 그리고 밀고가 가져온 결과와 현실에 순응해 일상에 찌들어 가는 장면에서 독자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게 작가는 묻고 있다. 김근태의 시간과 지금 나의 시간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과거가 과연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가? 더 고도화되어 눈에 띄지 않는 강압, 아니면 강압에 길들어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잘 ??고 있는 것인가?
작가의 이 질문은 책 끝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만남’이라는 장에서 두드러진다. 이야기가 끝나고 고문을 받았던 남영동의 사진까지 보고나서 이어지는 이 에피소드는 1985년으로부터 20년이 흐른 2005년 보건복지부 장관이 된 김근태와 교도소에 수감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만남을 소개한다. 김근태는 참혹한 기억과 마주하면서 공포와 분노를 이겨내고 이근안을 용서한다. 하지만 그 이듬해 교도소를 나와 목사가 된 이근안의 인터뷰까지 읽게 되면 다시금 억장이 무너지며 우리가 사는 현재가 정말 그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해 반문하게 된다.
<짐승의 시간>은 양장에 하드커버 케이스에 담겨 있다. 케이스는 벽돌무늬에 좁고 긴 창문이 내어진 남영동의 공안분실 건물을 나타낸다. 케이스에서 뽑아낸 하얀 책의 표지엔 붉은 십자가만 그려져 있다. 아니 십자가가 아니다. 고문대에 묶인 김근태의 모습이다. 남영동으로 들어가 김근태의 고문 현장을 만나는 느낌이다. 22일간의 그 기록으로 만나는 것은 우리의 현재다. 부디 고개 돌리지 말고 끝까지 마주하기를 권한다.
2014년 6월 출간된 <짐승의 시간>은 2014년 8월, 제11회 부천만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