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구레 주민들 이야기
“지구 끝에서 마유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구나.” -chapter 1, 꽃집주인의 대사 中에서 현재 애인과 전 애인 사이에서 흔들리는 꽃집 점원, 애인을 3년 동안이나 방치한 카메라맨, 아래층 여대생을 엿보는 윗집 남자, 갈 곳 없는 갓난아기, 제 6의 미각을 ...
2014-03-31
김진수
“지구 끝에서 마유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구나.” -chapter 1, 꽃집주인의 대사 中에서 현재 애인과 전 애인 사이에서 흔들리는 꽃집 점원, 애인을 3년 동안이나 방치한 카메라맨, 아래층 여대생을 엿보는 윗집 남자, 갈 곳 없는 갓난아기, 제 6의 미각을 가진 신통방통 여자...낡은 목조주택 ‘코구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웃기면서도 슬픈, 그리고 따스한 라이프 스토리를 담은 7개의 단편이 수록된 만화책 “코구레 주민들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작품은 동명의 원작 소설(원제 木暮莊物語)이 있는 만화다. 원작자는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배를 짜다”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미우라 시온, 작화는 도도 야마사키가 맡았다. 원작 소설도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이라는 제목을 달고 ‘은행나무’출판사를 통해 정식 한국어판이 출간되어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몇 번인가 나미키가 찍은 사진이 보내져왔다. 그의 렌즈가 담아 낸 순수하고 격렬한 영혼을 품은 세계. 난 그것을 사랑했다. 그렇다고 해도 세상 어디를 뒤진들 지난 3년간을 메우고 용서할 이유 같은 건 발견될 리 없다.” -chapter 1, 마유의 독백 中에서 사실 이 작품은, (작화를 맡은 만화가의 정보가 워낙 없기도 하지만) 원작자인 소설가 미우라 시온의 유명세에 힘입어 만화로 각색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미우라 시온의 작품은 발표된 소설이 거의 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어 있고, 나오키상 수상작인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같은 경우는 소설뿐만 아니라 만화 버전도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어 있다.(하코네 역전경주를 소재로 한 청춘소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같은 경우도 소설, 만화 모두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어 있다) “미우라 시온은 일본의 문학상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소설가로 대학 졸업 후, 편집자 지망생으로 구직 활동을 하던 중에 한 편집자에게 작가의 길을 제안 받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우라 시온의 처녀작은 자신의 실제 취업 활동을 소재로 쓴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 그는 주인공 가나코를 통해 버블 세대의 무기력한 초상을 코믹한 문체로 그려냈다. 2006년에는 격월간지에 연재한 작품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제135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요시모토 바나나 이래 가장 참신한 작가’, ‘현재 일본에서 ‘인간’을 묘사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젊은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채널예스, 엄지혜, 미우라 시온 인터뷰 中에서 발췌 위의 간단한 소개 글만 보더라도 미우라 시온이 현재 일본의 문학계에서 얼마나 주목받고 있는 작가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일본 문학계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나오키상’과 서점직원들이 뽑아주는 ‘서점대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작가’라는 것은, 돌려 말하면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특별한 작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서정적인 문체, 독특한 소재 등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미우라 시온의 소설은 만화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배를 짜다”)되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상했어. 네가 코구레 아파트에 산다는 게 말야. 낡고 좁은데다 현관문은 합판 1장으로 돼 있어. 일해서 수입이 있는 여자가 살고 싶어할만한 집이 아니잖아....넌 그 집에서 줄곧 기다리고 있었던 거구나.” -chapter 1, 아키오의 대사 中에서 “코구레 주민들 이야기”는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 편마다 각각의 사연과 인물이 다르지만, ‘코구레 장’이라는 낡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으로 엮이기 때문에 ‘배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연작단편집’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만화와 소설을 다 읽어 본 관점에서 보자면, 소설과 만화 버전은 다소 차이가 있다. 원작 소설은 70대 노인이 주인으로 있는 허름한 목조 빌라를 주 무대로, 그곳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사랑과 성(性)을 테마로 한, 일곱 가지의 에피소드를 엮어낸다. “소설의 주 무대는 도쿄 중심가라고는 믿기지 않는 정겨운 동네의, 고작 방 여섯 개가 딸린 2층 목조건물 고구레 빌라. 허름하지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곳에 세대, 성별, 직업 등이 서로 다른 평범한 소시민들이 살고 있다. 3년 동안 소식불통이던 옛 연인의 등장으로 난데없이 현재 애인과 함께 셋이서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된 꽃집 아가씨(Simply Heaven), 일흔이 넘은 나이에 갑작스레 강렬한 성욕에 사로잡힌 주인 할아버지 고구레(심신(心身)), 전철역 기둥에 달린 남근 형태의 물체를 보고 기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야쿠자 두목과 애견 미용사 아가씨(기둥에 난 돌기), 커피 맛으로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아내(검은 음료수), 번갈아 남자를 바꿔가며 문란한 생활을 하는 여대생(Piece)과 그녀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윗층 회사원 총각(구멍), 옛 여인을 잊지 못하고 스토킹(?)하는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 여인(거짓말의 맛)이 그 주인공들이다. 언뜻 보면 모두 ‘평범’하고는 거리가 먼,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독특하고 자유분방한 입주자들의 ‘연애소동’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잔잔한 여운과 따뜻한 공감을 느끼게 된다.” -yes24 제공,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 소개글 中에서 발췌 만화에서는 일단 ‘코구레 장’의 주인인 코구레 할아버지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만화로 각색된 원작 소설의 에피소드는, 3년 만에 갑자기 돌아온 전 애인과 현재 애인 사이에서 흔들리는 꽃집 아가씨의 이야기 “Simply Heaven”, 아래층 여대생을 훔쳐보는 위층 남자의 이야기 “구멍”, 번갈아 남자를 바꿔가며 문란한 생활을 즐기던 여대생이 친구의 아이를 맡아 돌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는 “Piece”,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그녀 주위를 맴돌던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 제 6의 미각을 가진 특이한 여자의 이야기 “거짓말의 맛”이다.(커피 맛으로 외도를 눈치 채는 “검은 음료수”는 아주 살짝, 다른 에피소드에 섞여 짧게 등장하고, 야쿠자 두목과 애견 미용사 아가씨의 이야기 “기둥에 난 돌기”와 일흔이 넘은 나이에 갑작스레 강렬한 성욕에 사로잡힌 주인 할아버지의 이야기 “심신”은 만화 버전에서 아예 빠졌다.) 만화 버전에서는 꽃집 아가씨 마유와 그녀의 전 애인 사진작가 나미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대생 츠치야와 그를 훔쳐보는 위층 남자의 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원작 소설의 장점만을 따와 만화로 잘 살려낸 작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