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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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집 시누이

이것은 마치 KBS 주말드라마 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다. 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집에 사는 시어머니(윤여정)와 며느리(김남주)는 여느 고부관계처럼 갈등 요소가 많았다. 가장 뜨악했던 순간은 며느리가 내놓은 쓰레기봉투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발견한 시어머니의 모습이...

2013-09-24 이가온
이것은 마치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다. 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집에 사는 시어머니(윤여정)와 며느리(김남주)는 여느 고부관계처럼 갈등 요소가 많았다. 가장 뜨악했던 순간은 며느리가 내놓은 쓰레기봉투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발견한 시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은 여느 드라마에서 보던 그것과 많이 달랐다. 차윤희(김남주)는 불합리한 상황이 닥치면 시어머니에게 예의를 지키되 조목조목 따졌고, 심지어 ‘고부협정’이라는 무기를 꺼내들었다. 어색하지만 하루에 한 가지씩 상대방에게 칭찬하는 약속까지 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고부관계를 막장으로 끌고 가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린 드라마였다.
 
김진 작가의 <아랫집 시누이>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같으면서도 묘하게 다르다. 모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꿈꾸는, 어쩌면 가장 이상적일 수도 있는 시월드 풍경을 그려낸다. 시누이가 된 김진 작가의 시점에서 새 가족을 들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아랫집 시누이>는 새언니와 시누이, 며느리와 시어머니, 아내와 남편, 여동생과 오빠, 딸과 엄마 등 비단 고부관계뿐 아니라 모든 가족관계의 실상을 보여준다. 마치 헬스장을 등록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결혼을 발표한 오빠의 선언을 시작으로, <아랫집 시누이>는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소녀 같은 새언니이자 며느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집의 위치만 달라졌을 뿐, <아랫집 시누이>도 <넝쿨째 굴러온 당신>처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윗집, 아랫집 다정하게 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댁이 아랫집이라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시어머니가 아닌 며느리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위 아래층이긴 해도 현관문도 따로 있고 그냥 다른 집이려니 생각해”라고 배려하는데 며느리가 “전 가까워서 너무 좋은데”라며 해맑게 웃어 보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며느리’가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해맑은 리액션을 할 수 있을까.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이렇게 싹싹한 며느리와 귀여우면서도 상식 밖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 시어머니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아랫집 시누이>를 보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건강한 고부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아랫집 시누이>는 결혼 생각 없는 미혼자들마저 ‘시월드’에 대한 환상을 품을 만큼 신기하고 이상적인 고부관계를 그려낸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도 전혀 불편한 기색 없이 시댁에 자주 들르는 며느리, 기어코 당신이 설거지를 하겠다는 시어머니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백허그를 하는 며느리, 시어머니가 집 비밀번호 물어볼까 전전긍긍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집 센서키를 시어머니에게 건네는 며느리.
 
어디 이 뿐인가. 혹시나 아들 부부에게 피해가 갈까 눈치 보면서 출근길 아침 주스를 건네는 시어머니, 차마 며느리의 집 비밀번호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아 꾹 참고 있는 시어머니, 며느리가 건네 준 센서키를 며칠 동안이나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시어머니, 며느리의 예고 없는 백허그 애정표현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말을 더듬는 시어머니. 늘 우리들의 상식을 초월하는, 그러나 지극히 상식적인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모습이다. 에피소드 형식의 생활 웹툰을 꾸준히 읽게 만드는 힘은 뚜렷한 캐릭터다. 드라마에서 수없이 봤던 고부관계를 소재로 다뤘음에도 <아랫집 시누이>에 계속 눈길이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심지어 모나지 않은 며느리와 합리적인 시어머니 캐릭터, 꽤나 신선하지 않은가.
 
<아랫집 시누이>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이 웹툰이 관찰자 시점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시월드’를 드라마로 배운 시누이인 김진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시월드’ 만화로 향하는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김진 작가는 새언니 될 사람이 첫 인사를 오기 전 드라마 속 새언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잔뜩 긴장을 한다. 오빠네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기 전, 엄마에게 “아들을 ‘내 남자’로 생각하지 말 것, 2층에는 모르는 신혼부부가 들어와서 산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고부갈등 예방 캠페인을 세뇌시킨다. 정작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중간에서 전전긍긍하는 시누이의 모습이 초반 <아랫집 시누이>의 가장 큰 웃음 포인트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상적인 관계는 신기하고, 그들을 이상적인 관계로 만들려는 김진 작가의 노력은 귀엽게 비춰진다.
 
아무래도 캐릭터의 공이 가장 크겠지만, 그것이 <아랫집 시누이>가 따뜻한 시월드 웹툰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전부는 아니다. 김진 작가 특유의 따뜻한 그림체도 한 몫 했다는 얘기다. 특히 새언니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의 순간순간을 담아낸 20화는 대사 한 마디 없이 가족들의 표정, 임신 소식을 전하는 휴대폰 클로즈업, 하얀 눈이 내리는 풍경만으로도 그 따뜻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임신 소식을 듣고 온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 가족들, 빵집에 들러 케이크를 고르는 시어머니의 표정, 집 앞에서 두 손을 꼭 잡고 마주보는 오빠와 새언니, 새언니라는 가족을 받아들인 것도 아직 얼떨떨한데 조카까지 생겨버린 시누이의 미소. 김진 작가는 20화 작가의 말에 “저 때 만큼은 그 기억 그대로 그리고 싶었다”고 남겼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느껴지고, 전해지는 에피소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20화 동안 쌓아온 스토리와 캐릭터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랫집 시누이>의 중심은 시누이 관점에서 바라본 시어머니-며느리의 에피소드지만, 그것만큼이나 <아랫집 시누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누이인 김진 작가 모녀의 티격태격하는 일상이다. 며느리와 큰 갈등 없이 잘 지내다가도 “벼룩시장에라도 내놔야 하나”라며 긴 한숨과 함께 딸을 바라보는 어???니의 마지막 표정, 아침식사 대용으로 주스를 만들어 먹으려는 며느리에게 새 믹서기를 건네며 “원래는 쟤(딸) 시집갈 때 주려고 했던 건데”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씁쓸한 한 마디가 <아랫집 시누이>를 보는 백미다. 말하자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고부관계를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손님 이건 현실이에요’라며 ‘레드썬’을 외치는 느낌이랄까. 결혼하지 않은 딸을 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엄마, ‘작가의 말’을 통해 엄마에게 소심하게 반항하거나 반성하는 딸. <아랫집 시누이>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그러나 엄마와 딸은 겉으로는 틱틱대면서도 서로 챙기는, 누구도 감히 쉽게 끼어들 수 없는 그런 관계다. <아랫집 시누이>의 엄마도 “늙을수록 내 맘 알아주는 건 남편도, 아들도 아니고 딸내미더라”며 며느리가 임신한 손주가 딸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아랫집 시누이>는 회를 거??할수록 스토리의 영역을 고부관계에서 가족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결혼 웹툰, 반려동물 웹툰, 연애 웹툰 등 생활 웹툰의 소재는 다양했다. 그러나 ‘시월드’를 전면에 내세운 건 <아랫집 시누이>가 처음이다. 드라마에서도 지겹게 다룬 시월드를 웹툰 소재로 차용한 건, 신선한 동시에 우려가 많이 되는 소재였다. 그러나 김진 작가는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있다. 이제 새 언니의 임신으로 <아랫집 시누이>의 이야기는 임신, 출산, 육아 등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무뚝뚝한 오빠는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에게 어떤 애정표현을 해줄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며느리는 이 험난한 출산 과정을 어떻게 이겨낼까. 새언니에 조카까지 생긴 아랫집 시누이는 어떤 고모가 될까. 시어머니는 출산을 앞둔 며느리를 위해 어떤 선물을 해줄까. 또 자신의 딸에게는 어떤 잔소리를 하게 될까. 갈수록 이 가족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어쨌든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