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대장 악동이
평범하지만 진실된 삶의 모습을 담아낸 생활만화 30년 전에 읽히던 만화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저 빛바랜 희미한 추억에 지나지 않는 비망록일까? 아니면 여전히 존재 이유가 분명한 현재진행형 콘텐츠일까? 민주화의 염원이 아직은 요원해 보이던 1980년대,...
2013-05-15
황민호
평범하지만 진실된 삶의 모습을 담아낸 생활만화 30년 전에 읽히던 만화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저 빛바랜 희미한 추억에 지나지 않는 비망록일까? 아니면 여전히 존재 이유가 분명한 현재진행형 콘텐츠일까? 민주화의 염원이 아직은 요원해 보이던 1980년대, 위태한 삶을 아슬아슬하게 이어올 수 밖에 없었던 소시민들에게 그 시절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구태여 30년 전이 아니라도 예전에 읽히던 만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현재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어떤 모습으로 그 시절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가를 심도있게 반추해 볼 수 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미덕이 30년 전 발표된 한 편의 만화를 통해 실현 가능해진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보물섬에 연재되었던 이희재의 <골목대장 악동이>는 한국만화사상 드물게 생활만화 틀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이다. 넓게 보면 명랑만화의 울타리 안에 있지지만 <골목대장 악동이>는 분명 이전의 명랑만화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생활만화 라는 다소 낯선 이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전의 명랑만화가 보여주던 흥미위주의 과장된 연출과 희화화된 등장인물들의 허구적인 에피소드가 이 만화에선 보이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삶, 그 일상의 모습을 왜곡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골목대장 악동이>는 문학이나 영화 같은 다른 서사구조들과는 달리 만화에서는 간과했거나 애써 외면해왔던 당대의 현실비판적 이야기들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1980년대 문학의 잣대를 들이 댄다면 <골목대장 악동이>는 참여문학의 옷을 입은 만화였던 셈이다. 1982년에 창간된 소년만화잡지 보물섬은 만화의 교육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창간 초기에는 창작만화보다는 세계명작을 번안, 각색한 만화들을 연재하는데 주력했다. 이희재 역시 ?보물섬? 지면을 통해 창작만화 대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을 각색한 만화를 연재했다. 반응이 좋아서 빅토리아 빅터의 소설 <악동일기>를 원작으로 한 만화를 이어서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이 바로 <골목대장 악동이>였다. 그러나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이희재는 창작만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곧바로 원작 소설의 각색이라는 형식을 버리고 순수창작으로 전환하기에 이른다. <골목대장 악동이>는 매회 특정 제목 아래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연속성있는 스토리 전개보다는 그때그때 작가의 현실관찰에서 비롯된 다양한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는 만화이다. 이희재는 소년만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꿈이나 모험,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대신 독자들이 학교와 집에서 경험하게 되는 현실적이고 진실한 세계를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주인공인 악동이도 그저 독자들이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또래의 평범한 소년이다. 대부분의 소년만화 주인공들이 초인적 힘을 가진 수퍼맨이나 영웅인데 반해 악동이는 개구쟁이에다 말썽꾸러기지만 용기도 있고 의협심도 강한 평범한 소년이다. <골목대장 악동이>를 생활만화라고 부를 수 있는 직접적인 요인도 악동이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설정과 에피소드의 전개가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악동이라는 이름은 다분히 반어적 표현이다. 우악스럽고 살벌한 어른 세계의 느낌이 아니라 고약한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 앙증맞은 말썽꾸러기의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주인공 악동이의 얼굴에선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다. 민대머리에 두가닥 솟아오른 머리카락은 애교스럽다. 전자오락에 몰두하거나 엉뚱한 행동으로 부모님 속을 썩이며 공부는 늘 낙제점수에다 친구들과 다투고 유리창을 깨서 야단을 맞기도 하지만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도 함께 나눌 줄 아는 기특한 소년이다. 일테면 크레파스를 잃어버려 아버지한테 혼난 친구를 위하여 크레파스를 찾아주거나 불구인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미워하는 친구에게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도록 설득할 만큼 어른스럽기도 하다.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거나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못된 친구들에 맞서 그들을 혼내줄 만큼 용기와 패기도 있으며 병든 병아리를 정성껏 보살펴주는 따뜻한 마음도 가졌다. 이런 악동이를 통해 이희재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꿋꿋하고 밝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아이들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만화 속에서 착한 아이들(악동이, 순기, 봉식이)과 악역을 맡은 아이들(왕남이, 서림이, 수철이, 종철이)의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는 설정을 통해 아이들 세계의 절실한 문제점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왕남이나 거기에 빌붙어 지내는 서림이, 장길이 같은 고약한 친구들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당시 아이들 세계에서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희재는 아이들의 세계를 마냥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그리는 대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생활을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골목대장 악동이>는 아이들 눈으로 본 아이들 세상의 얘기지만 그것은 어른들, 나아가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얘기이기도 했다. 이희재는 악동이와 왕남이를 통해 사회 지배계층와 사회적 약자로 양분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비판적 시선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러나 <골목대장 악동이>의 만화세계가 현실적이기만해서 만화의 본질적 속성을 모두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악동이가 손오공의 여의봉으로 요술을 부린다든가 고물기계를 이용해 미운 사람들의 코를 피노키오의 코처럼 만드는 에피소드(이것은 결국 꿈으로 처리되었다.)는 독자들에게 허구의 세계, 동화의 세계를 경험하는 재미를 안겨주는 소년만화의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골목대장 악동이>자체가 소년만화이므로 단순히 아이들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중의법’이라는 프리즘을 들이대고 보면 거기엔 아이들의 단순한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든 뜻밖의 세계가 도사리고 있다. 권력의 전횡과 거기에 빌붙는 자, 농촌총각의 결혼문제, 4.19가족들의 불행, 가진 자의 횡포 등등 추악한 어른의 세계, 나아가 우리사회 전체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정면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작가의 사회적, 역사적 시선을 통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밀려온다. 30년 전의 <골목대장 악동이>를 지금 다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우성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