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에
“쇼헤이는 학기 도중에 드물게 전학 온 학생이었다. 전날 선생님께 쇼헤이의 불행한 사정을 들었기에 우리는 그를 동정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둘이서 어머니가 태어난 이 고장에 왔다는 것...게다가 몸이 약해서 운동을 못 한다는 것...학교도 자주 쉬어서 지금까...
2012-10-04
김현우
“쇼헤이는 학기 도중에 드물게 전학 온 학생이었다. 전날 선생님께 쇼헤이의 불행한 사정을 들었기에 우리는 그를 동정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둘이서 어머니가 태어난 이 고장에 왔다는 것...게다가 몸이 약해서 운동을 못 한다는 것...학교도 자주 쉬어서 지금까지 친구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우리는 모두 쇼헤이의 보호자라도 되어줄 것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피아노의 숲”이라는 작품을 통해 애잔하고 아름다운 감수성을 선보인 만화가 잇시키 마코토의 단편집 “나 어릴 적에”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20년 만의 작품집’이라는 타이틀답게 잇시키 마코토가 여러 잡지에 투고했던 미공개 단편을 엮어 집대성한 작품집으로 이 작가의 팬에게는 너무도 반가운 책일 것이고, 이 작가를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는 책인 것 같다. “그건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듯한 슬픈 이야기였고 그 속에 나오는 개와 소년의 ‘아름다운 사랑’에 난 감동했다. 이야기 속의 파트라슈는 당연히 쇼헤이네 집 파트라슈와 겹쳐졌다.” 이 단편집은 ‘나 어릴 적에-’라는 타이틀로 다섯 편, ‘바보’라는 타이틀로 다섯 편, 총 10개의 단편이 엮어져 있다. ‘쇼’, ‘그 녀석은 몰라!’, ‘코마코(전,후)’, ‘누나(전,후)’, ‘언제나 함께’ 등이 책의 전반부를 이루고 있는 “나 어릴 적에”라는 타이틀에 해당하는 다섯 개의 단편들이며, ‘바보’, ‘타마키가 좋아서!’, ‘얼굴’, ‘사키에게 항복(①,②)’, ‘연인의 고리’ 등의 다섯 편이 책의 후반부를 이루고 있는 “바보”라는 타이틀에 해당하는 다섯 개의 단편들이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파트라슈도...쇼헤이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고, 무슨 말을 해도 멋지고 어른스러워서 우리들은 모두 쇼헤이를 동경했다.” “나 어릴 적에”는 팬들이 좋아할만한, 잇시키 마코토의 색깔이 아주 잘 묻어나는 단편집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인물과 인물간의 사소한 사건들을 절묘하게 엮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데는 발군의 재능이 있는 것 같다. “5학년이 됐을 때 파트라슈가 죽었다. 이튿날 절집 아들의 조처로 장례식을 치렀고, 쇼헤이는 훌륭히 상주 역할을 해냈다.” 10개의 단편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다가왔던 두 편은, 복잡한 출생비밀과 불행한 가정환경 탓에 어린 나이부터 힘든 삶을 보내야 했던 아름다운 여학생과 그 여학생의 소꿉친구이자 가족 같은 이웃으로서 그녀를 꾸준히 지켜주었던 남학생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코마코”와 한 커플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해 연쇄적으로 만남과 이별이 일어나는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구성을 보여주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 “연인의 고리”였다. 이미 “피아노의 숲”이라는 대표작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잇시키 마코토이기에 더 이상의 부가적인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나 어릴 적에”는 읽어보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