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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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와 시리즈 세트 (나와 그들과 그녀의 이야기)

“누나가 누군가를 대신해 죽어야 하는 거라면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누날 대신하면 된다. 그래. 대신할 사람만 있으면 돼.” 토지츠키 하지메의 “나와 그녀와 선배의 이야기”는 애니북스에서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나와 그녀와 시리즈” 두 번째 권으로, 전편에 해당하는 “...

2012-09-15 김현우
“누나가 누군가를 대신해 죽어야 하는 거라면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누날 대신하면 된다. 그래. 대신할 사람만 있으면 돼.” 토지츠키 하지메의 “나와 그녀와 선배의 이야기”는 애니북스에서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나와 그녀와 시리즈” 두 번째 권으로, 전편에 해당하는 “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가 2009년에 나온 작품이고 “나와 그녀와 선배의 이야기”는 2011년에 나온 후속 권이다. 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전편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스즈키 선생의 과거를 다룬 이야기여서 내용적으로는 앞 권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우리 집 여자들은 모두 일찍 죽는 거죠?” “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가 코미디적인 요소도 다소 섞인 좀 가벼운 느낌의 “환상기담”이었다면, “나와 그녀와 선배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공포영화적인 요소가 부각되는 무겁고 진지한 느낌의 “환상기담”이라고 하겠다. 전편에서는 ‘선생’역에 해당하는 스즈키가 본편에서는 ‘나’역에 해당하는 인물로 바뀌었으며 ‘그녀’역 역시 조카인 코마치가 아닌 ‘무녀’ 메이사로 바뀌었다. 전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은 ‘나’와 ‘그녀’보다는 ‘선생’역의 스즈키가 맡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나’와 ‘그녀’보다는 ‘선배’역에 해당하는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나카무라 칸’이 스토리의 중심을 맡고 있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는 기질의 사람이 있다....이 집안 여자들은 액운을 대신 뒤집어쓰는 무녀 같은 존재다.” 작품의 시작인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나’역의 스즈키와 ‘선배’역의 칸이 만나는 것부터 시작된다. 전편에서 편안한 느낌의 인상 좋은 아저씨로 등장했던 스즈키 선생이 날카롭고 심각한 젊은 날의 모습으로 등장해 자신의 집안에 대대로 얽힌 누나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고민하던 스즈키가 ‘주술사’의 길을 걷는 선배 칸을 만나 ‘액받이 무녀’라는 누나의 운명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이것저것 알아보는 내용들과 ‘그녀’역의 메이사를 만나는 인상 깊은 장면들이 밀도 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해둘 게. 네가 누나를 구하겠다는 건 이 집안의 핏줄과 대립하겠다는 뜻이 된다. 언젠가 집안을 버리는 일이 될지도 모르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부터 본격적인 ‘주술’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전편의 가볍고 코미디적인 요소가 확 줄어들고 ‘주술’에 대한 ‘무겁고 진지한 접근’이 이루어지는 이 작품은, 전편에서 ‘누나의 부활’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스즈키가 그 목적을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하고 묵직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바로 이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 ‘그 길’을 발견해내고 탐구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나와 그녀와 선배의 이야기”는 스즈키의 누나인 코우가 아직 죽기 전의 이야기라는 것이며 코우가 남편의 액운(厄運)을 서서히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고 있던 시점으로 단계가 설정되어 있다. 스즈키가 집안의 비극적인 운명을 알게 되고 시집간 누나를 걱정하던 시기에 ‘주술사’의 길을 걸어가던 선배 칸을 만나고, 칸은 자신의 시키가미(式神, 음양도에서 음양사의 명령에 따라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면서 신기한 재주를 부린다는 정령)를 써서 코우가 받아야 할 액(厄)의 일부를 자신이 나누어 받는 방법으로 운명의 시간을 조금씩 늦춰 보려한다. 이 과정에서 ‘주술사’의 길을 걷는 칸이 추구하는 ‘어떤 목적’과 그것을 말리며 걱정하는 ‘무녀’ 메이사, 자신이 가야할 길을 칸의 모습을 보며 점차 발견해내게 되는 스즈키의 모습이 그려진다. “혼은 영원히 죽지 않은 채 사지가 모이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오른 손은 이제 손에 넣을 거다. 이제 곧!.... 그 영감도 그리 오래 가진 않겠지.”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오래 전에 사지를 절단당해 죽어 손, 발, 머리 등이 각각 다른 장소에 묻혀 봉인된 영험한 스님의 육체를 하나하나 회수해 가는 칸의 행적이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스즈키의 누나가 아이(전편의 코마치)를 임신했다는 것, 요이치로(전편에 등장했던 스즈키가 부리던 식신 여우)가 만들어지게 되는 이유와 과정 등이 드러나는데, 완벽한 주술사가 되기 위해 치밀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타인의 유언까지 조작하며 과감하게 움직이는 칸과 그런 칸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목적과 길’을 본격적으로 걸어가게 되는 스즈키의 모습이 음습하고 음울하게 그려진다. “나한테 오는 액운이 점점 커지고 있어, 혹시 만에 하나 내가 죽으면 네 누나도 죽게 되겠지. 그때는 죽은 지 7일 안에 몸의 일부를 취해두면 혼은 황천으로 떠날 수가 없어, 혼의 일부를 지상에 묶어둘 수 있지, 그런 다음 나머지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만 있다면 완벽하게 되살릴 수 있다.” ‘네 번째 이야기’ 에서는 칸이 ‘오른 손’을 얻은 지 1년 만에 ‘머리’를 얻으며 주술사로서 ‘각성’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어느 시골 마을에서 20년에 한 번씩 행해지는 성스런 봉납의식에 민속학도라는 명목으로 참가한 칸과 스즈키가 ‘스님의 머리’를 얻게 되는 장면이 매우 무섭다. 칸의 얼굴이 스님의 얼굴로 바뀌며 ‘전부 생각났어.’라는 대사 한마디가 던져지는 부분은 정말 오싹하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누나가 딸을 출산했다는 소식(코마치 출생)이나 스즈키가 전편에서 행했던 ‘부활의 주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드러난다. “12월 눈 내리는 밤에 선배는 사라졌다.” ‘다섯 번째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칸의 실종과 누나의 죽음, 슬퍼하는 메이사의 모습 등이 그려진다. 결말 부분에서 스즈키는 칸이 알려준 대로 누나의 유골을 훔쳐 ‘부활의 의식’을 시작하고, 벌레를 소환해 저승 어딘가에 있을 칸과 누나에게 전갈을 보낸다. 전편의 시작 부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마지막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다. ‘마지막 이야기’가 끝난 후 ‘그 후의 이야기’ ‘하나’와 ‘둘’에서 보여주는 열린 결말의 여운도 아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