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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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투스 (소환)

“가난한 아이여, 구걸하며 사는 게 싫다면, 싸워라, 이 콜로세움에서 필요한 건 오직 힘뿐이다.”” 일본 만화 산업의 강점은 참신한 소재 개발에 있다. 시장의 특수성이나 규모, 문화적 환경 차이 등등 한국의 만화 산업과 비교되는 부분이 워낙 많지만, 개인적인 생각...

2011-12-08 석재정
“가난한 아이여, 구걸하며 사는 게 싫다면, 싸워라, 이 콜로세움에서 필요한 건 오직 힘뿐이다.”” 일본 만화 산업의 강점은 참신한 소재 개발에 있다. 시장의 특수성이나 규모, 문화적 환경 차이 등등 한국의 만화 산업과 비교되는 부분이 워낙 많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난, 일본 만화 산업의 원동력이자 추진력은 참신한 소재를 발굴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본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비르투스”는 ‘격투기’라는 전통적인 소재와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투기장’을 매우 잘 결합시켜낸 웰메이드 판타지다. 타임슬립, 공간소환 등등 판타지를 성립시키는 수많은 장치들 중에서 ‘시간을 조종하는 비술’이라는 가장 진부한 방법을 썼지만,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 세계 유도 챔피언 출신인 일본인 무도가가 시공을 뛰어넘어 소환된다”는 이 작품의 컨셉은 ‘격투기 만화’로서 가장 환상적인 화학작용이라고 보여진다. “약한 자를 돕고 강한 자를 꺾는다, 무도가로서 약자를 지키는 방패가 되어라, 강자를 무찌르는 창이 되어라, 우리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그것이다. 스승님께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비르투스”에서는 두 가지의 가치관이 충돌한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는 무도정신, 도덕심, 타인에 대한 배려심 같은 현대 사회의 룰이 일절 통하지 않는다. 그저 관중들의 쾌락을 위해 글라디에이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울 뿐이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무서운 세계, 그 곳을 관장하는 가치는 오직 힘뿐이다. 일본의 교도소에서 고대 로마로 시공을 뛰어넘어 소환된 작품의 주인공 타케루는 유도 세계챔피언 출신의 정통파 무도가다. 그에게 절대적인 가치는 약자를 지키고 강자를 꺾는 무도 정신이다. 그런 타케루가 오직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콜로세움 안에서 무도 정신을 지키려 안간힘을 쓸 때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관은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돌출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절대적인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삶을 위한 이기적인 투쟁심인가? 남을 배려하고 같이 살아가려 하는 자애로움인가?” 작가는 이 잔인하고도 진지한 만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이제 달아날 곳은 없다. 싸워야 해.” “비르투스”는 정통 격투기 만화로도 전혀 손색없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타케루가 쓰는 유도기술을 비롯, 고대 로마의 권술(권투의 유래), 판크라치온(레슬링의 유래), 검술 등등 인간이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시킨 다양한 격투기들이 등장한다. 작품의 조연인 하이지마의 입을 통해 자세하고 리얼하게 해설되는 각종 격투기의 기술과 유래는 격투기 팬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양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고대 로마로 소환된 타케루 일행이 사회에서 격리된 흉악하고 사나운 범죄자들, 즉 교도소의 죄수들이라는 데 있다. 자신만의 살아남는 기술을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그들이 고대 로마의 격투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진진하다. 오랜만에 발견한 수작(秀作) “비르투스”를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