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자 Danza (옴니버스 단편집)
“아버지는 귀찮아하는 것 같아요, 미켈레 아저씨하고 둘이서 가꾸던 밭이었으니 제가 끼면 성가신가 보죠.” "not simple"의 작가 오노 나츠메의 책들이 속속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그간 애니북스에서 오노 나츠메의 책들("not simple", “납치사 고...
2010-01-11
김현우
“아버지는 귀찮아하는 것 같아요, 미켈레 아저씨하고 둘이서 가꾸던 밭이었으니 제가 끼면 성가신가 보죠.” "not simple"의 작가 오노 나츠메의 책들이 속속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그간 애니북스에서 오노 나츠메의 책들("not simple", “납치사 고요”, “리스토란테 파라디조”, “라 퀸타 카메라”, “젠떼”, “테조로”)을 독점하듯이 한국어판으로 번역해서 출간했었는데, 이번 작품 “Danza”는 학산문화사에서 ‘시리얼’브랜드(판형을 크게 하고 고급지를 써서 보기엔 좋으나 책값이 많이 비싸졌다는 단점이 있는 고급 브랜드 중 하나, 만화출판사들의 새로운 전략 중 하나인 것 같다. 사하라 미즈의 “버스 달리다”, “마이 걸”, 우미노 치카의 “3월의 라이온”등이 이 브랜드로 출시되었다)를 달고 출간되었다. 뭐, 오노 나츠메를 좋아하시는 팬들이라면 고민의 여지없이 구입하실 것이고, 잘 모르시는 분들이라도 깔끔하고 독특한 그림 때문에 한번쯤은 집어 보실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뭐니뭐니해도 오노 나츠메의 강점은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스토리에 있으므로, 이러한 단편집들은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돌아가는 게 어렵다면, 친구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랐는데...그것도 어려운가 봐요, 와인도 못 마시게 하고, 아저씨가 부럽네요.” 첫 번째 단편 “장화”는, 어머니의 재혼 상대를 아버지라 불러야 되는 한 청년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 얘기를 다루고 있다. 친아버지는 고향에서 오랜 친구와 함께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포도밭을 가꾸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그와 함께 일했던 친구가 죽자, 아버지 혼자 포도수확하기가 힘들다는 핑계로 어머니의 반대를 무릎 쓰고 아버지를 만나러 온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같이 포도를 수확하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버지의 무뚝뚝함 탓인지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오노 나츠메의 마력이 드러나는 시점은 아주 사소한 소품 하나로 이 소원한 부자 사이를 단숨에 친밀감 있게 만드는 것인데, 그것은 ‘장화’ 한 켤레다. 그래서 인지 이 짧은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두 남자 사이의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혈연관계가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제가 먹고 싶으니 먹은 게지, 왜 싫은 건 싫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는 게 그 나라 국민성 아니냐? ‘노’ 하고, 일본인은 말이지... 좀처럼 그런 말을 못해요, 그래도 그게 문화거든” 이번 단편집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작품은, 세 번째 단편 “상자정원”이었다. 완고하고 고지식한 일본인 남자가 덩치 크고 호방한 독일계 미국인을 사위로 맞게 되면서 벌어지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유쾌한 작품으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오노 나츠메의 장점은 이야기의 시작에서 결말까지의 흐름이 마치 물 흐르듯 유려하다는 점인데, 이 단편 “상자정원”은 그런 것이 가장 돋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고집스럽던 일본인 장인이 미국인 사위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무등타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재미있는 흐름이 아주 깔끔하고 정겨웠다. 이 책"Danza"에는 총 여섯 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고 각 이야기마다의 연관성은 없다. 다만 오노 나츠메 특유의 정서를 여섯 개의 작품들이 공유하고 있으며, 아마도 오노 나츠메의 팬이라면 이러한 정서적인 느낌을 즐겁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