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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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황기 (海皇紀)

“조건이 나쁘면 나쁠수록 나는 펄펄 날지.” 판타지의 미학은 설정과 인물에 있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판타지만큼 인물과 설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장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인물을 그리려니 수고로운 것이고,...

2009-06-05 석재정
“조건이 나쁘면 나쁠수록 나는 펄펄 날지.” 판타지의 미학은 설정과 인물에 있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판타지만큼 인물과 설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장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인물을 그리려니 수고로운 것이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에 참고하고 비교할 것이 없어 더 어려운 것이다. 모든 SF, 모든 판타지의 기본이 되는 바이블 “은하 영웅 전설”에서부터 이 지난한 수고로움은 시작되었지만, 그나마 후대의 작가들은 훌륭한 7-80년대의 “전설”격의 작품들이 많이 있어서 창작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은하영웅전설”의 공식에 따르면 판타지의 주인공은 “고뇌하는 천재형”과 “오만한 천재형”이 등장해야 하고, 세계는 반드시 “대립” 또는 “전쟁” 중 이어야 한다.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는 말이 있듯이, 작품의 재미를 위한 필수조건은 바로 “영웅”이다. 설정에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상상의 세계이되 우리가 아는 현실과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규칙이 다르고 질서가 다르면 독자들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없기 때문에 “그럴듯한 세계관”은 작품의 재미를 위한 필수적인 설정요소다. “나는 바다에서 싸우면 당신을 결코 이기지 못할 겁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해황기”는 바다를 주무대로 하는 판타지다. 시대배경은 정확하진 않지만 “과학”이라는 옛 힘을 찾아 여행하는 이야기이므로 먼 미래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주인공인 판 감마 비젠은 “바다의 일족”이라 불리는, 영토를 갖지 않고 바다에서 살아가는 전설의 일족 출신의 영웅이다. 이 장대한 이야기는 이웃나라 로날디아의 침략으로 인해 멸망해버린 왕국 온타나의 왕녀 마이아 스알이 “과학”이라 불리는 힘을 찾아 여행하던 중 판 감마 비젠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1권에서부터 주인공인 판 감마 비젠은 비범한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항해를 통해 만나는 여러 인물들을 싣고, 그의 상징과도 같은 “그림자선”을 타고, 바다를 누비는 일종의 모험 활극이라 할 수 있겠다. “아까 전투에서 돌아올 때, 수상한 사내들을 봤다. 그건 아마도 이베르겐” “해황기”는 현재 38권까지 나와 있다.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나름 재미가 있겠지만, 지극히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연출방식 때문에 재미없어 할 독자들도 꽤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스토리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바다와 육지의 패권을 놓고 영웅들간에 서로 힘과 지혜를 겨루는 이야기에 “과학”이라는 미지의 힘을 설정으로 깔아놓음으로써 작품의 재미를 더했다. 아쉬운 점은 항해술에 관한 너무 전문적인 설명인데, 독자들의 관심과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 정도로 매니악하다.(전문가가 아니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