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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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대원)

“못 사귀는 게 아니야. 필요 없으니까 안 만드는 것뿐이라구.” 한때 매년 5월이면 9시 뉴스에까지 등장해 “일진회 따라하기”, “학교폭력을 부추기는 만화”, “무분별한 일본폭력만화의 수입실태”, “일본폭력물에 열광하는 아이들” 등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청소년...

2009-06-01 안경엽
“못 사귀는 게 아니야. 필요 없으니까 안 만드는 것뿐이라구.” 한때 매년 5월이면 9시 뉴스에까지 등장해 “일진회 따라하기”, “학교폭력을 부추기는 만화”, “무분별한 일본폭력만화의 수입실태”, “일본폭력물에 열광하는 아이들” 등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청소년 범죄의 원인인 것처럼 매도되던 전설의 만화 모리타 마사노리의 “비바 블루스”(원제:ろくでなしBLUES)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일본에서 흔히 경파물(硬派物)이라 불리는 이 불량아 만화들은 아주 오래 전 해적판 시절부터(나름의 계보도 있다) 형성된 인기를 등에 업고, 여전히 넓고 깊게 한국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런 불량아들을 소재로 한 학원물은 일정하면서도 단단한 수요층이 있는데, 특히 10대 남자아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10대 시절 남자 아이들의 간절한 동경의 대상이라면 ‘힘’과 ‘이성(異性)’이고, 소위 말하는 “짱”을 다룬 만화들은 ‘힘’에 관한 한 10대 소년들의 판타지적인 욕구를 아주 잘 충족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토모키를 마지막으로 발로 찬 게 너였지. 그걸로 비긴 것으로 해주겠어.” 2000년대 들어서 이러한 경파물도 형식과 주제에 있어 조금씩 변화를 보인다. 의리, 동료의식, 강함에 대한 동경, 결투 후의 우정, 나만의 꿈 등은 여전히 유효하게 소비되는 이 장르의 공식이지만,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스타일이 점차 개성적으로, 좀 더 다양하게 변해간다. 즉 90년대처럼 조직의 대의에 의해 움직이거나 의리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하는 모습보다는 자신의 꿈, 내가 좋아하는 것, 나만의 자긍심, 나만의 취미에 몰두하는 모습 등 조금 더 개인적인 소재나 주제, 즉 인물들의 개인주의화 된 모습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이것은 시대상의 변화와도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찌됐든 요즘의 추세는 좀 더 명확한 ‘개인의 모습’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학교의 명예나 동료의 자존심을 위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초흥분하는 모습은 2000년대의 독자들에게는 좀 촌스럽다고 여겨지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다카하시 히로시의 “크로우즈”는 전통의 미학과 현재의 유행코드를 적절히 혼합하고 멋지게 균형을 잡은, 잘 만들어진 학원경파물이라 하겠다. “크로우즈”의 힛트 이후 이런 류의 학원물이 다시금 유행을 타기 시작했는데(“크로우즈”도 그 후속편 격인 “워스트”에선 위와 같은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클로버”는 소위 말하는 학원경파물의 정통공식을 살짝 비틀어 변주한, 2000년대 식의 조금은 낯선 불량아 만화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경파물의 주인공이라 보기엔 아주 낯설다. 동료보다는 ‘친구’라는 개념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의리나 자존심보다는 자신만의 취미나 사연에 더 민감하다. 물론 그런 성격을 지닌 아이들이 무언가의 사건을 계기로 잊고 있던 오랜 우정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고 잔잔한 감정을 만들지만, 30대 후반의 나로선 이 만화를 보며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