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 Comic mook (Comic mook 04)
“1억이야, 단 하룻밤에 1억을 버는 거야. 어때?” 만화 전문 출판사인 거북이북스와 청강문화산업대가 산학협동 형식으로 내놓은 무크지 시리즈가 벌써 네 번째 책으로 엮여 출간되었다. 1호인 “밥”, 2호인 “에로틱”, 3호인 “거짓말”에 이어 이번 네 번째의 키워...
2009-04-30
석재정
“1억이야, 단 하룻밤에 1억을 버는 거야. 어때?” 만화 전문 출판사인 거북이북스와 청강문화산업대가 산학협동 형식으로 내놓은 무크지 시리즈가 벌써 네 번째 책으로 엮여 출간되었다. 1호인 “밥”, 2호인 “에로틱”, 3호인 “거짓말”에 이어 이번 네 번째의 키워드는 “유혹”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매 호마다 하나의 단어 또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 명의 작가들이 모여 단편을 창작하고 그것들을 책으로 묶어 내놓는다는 점인데 이제 벌써 4호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 이상 ‘신선한 시도’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여전히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색깔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도만으로도 의미를 가지는 좋은 기획이라 생각한다. “내가 장면을 만들고 그 장면이 나를 이끌어 동하게 하니…내가 나를 유혹했구나.” 이번 호의 키워드는 “유혹”이다. 이 키워드에 맞추어 여러 가지 색깔의 단편들을 훌륭하게 이끌어낸 몇몇 작가들의 뛰어난 역량이 눈에 띠는데, 일단 “도로시의 제안”의 한혜연과 “유혹”의 윤태호, “시드 비셔스 & 낸시 스펑겐”의 조문주 등이 눈에 띤다. 하룻밤 동안 모텔에서 일어난 도박판을 둘러싼 살인사건과 그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영화적인 기법으로 엮어낸 단편 “도로시의 제안”은 순정 만화계의 한 축을 당당히 담당하고 있는 중견작가 한혜연의 관록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한혜연의 강점이라면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와 유려한 연출, 짜임새 있는 구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번 “도로시의 제안”을 통해 선보인, 만화만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특성을 잘 활용하여 이야기를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능력을 보니 한혜연은 이제 만화가로서 달인의 경지에 이른듯하다. “그게 낸시도 똑 같은 걸 하고 있더라구, 보통은 자물쇠에 열쇠 아니야? 자물쇠에 자물쇠라니, 웃기지 않아? 답 없는 게 꼭 지들 같잖아.”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라는 유명한 고사를 이용해 한 순간의 성적(性的) 망상을 깔끔하게 단편으로 풀어낸 윤태호의 “유혹”도 중견작가의 파워를 유감없이 발휘한 잘 만들어진 단편이라 하겠다. 특히 맨 마지막 장면에서 그것이 한 순간의 망상임을 깨닫는 식당 사장의 실망한 표정과 “내가 장면을 만들고 그 장면이 나를 이끌어 동하게 하니…내가 나를 유혹했구나.”라는 클로징 멘트는 아주 훌륭한 마무리라 생각한다. 실존인물인 섹스피스톨즈의 시드 비셔스와 그의 애인 낸시의 삶을 다룬 조문주의 “시드 비셔스 & 낸시 스펑겐”은 이런 단편보다는 좀 더 짜임새 있고 호흡이 긴 장편으로 기획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하지만, 어쨌든 주어진 지면 안에서 이 정도의 연출이면 단편으로서 성공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이 외에도 8개의 단편이 더 들어있는 “유혹”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