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깔=꿀색 (한 해외 입양인 이야기)
“나는 지구 어딘가에서 태어났다. 1965년 12월 2일, 아시아에서….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서울에서, 1970년이다. 늘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다섯 살이었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거리에서 내 삶이 시작된 게 바로 이 나이부터였으니 말이다. 매우 조숙한 꼬마였다. ...
2009-04-23
석승환
“나는 지구 어딘가에서 태어났다. 1965년 12월 2일, 아시아에서….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서울에서, 1970년이다. 늘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다섯 살이었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거리에서 내 삶이 시작된 게 바로 이 나이부터였으니 말이다. 매우 조숙한 꼬마였다. 나이 다섯 살에 벌써 혼자서 먹고 살 줄 알았으니 말이다! 분명 내겐 부모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혼자 알아서 살아가고 있었다.....‘꼬마야 이리 오렴, 고아원에 데려다 줄게’, ‘거긴 콜라가 있나요?’…. 고아원은 ‘홀트’라고 했다. 큰 미국식 고아원이었다.” 한때 ‘지구상 최대의 아동 수출국’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던 어려웠던 시절의 대한민국이 있었다. 통계에 의하면 1953년부터 2007년까지 국외입양 된 한국인은 모두 16만 1506명이다. 그러나 집계되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20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피부색깔 = 꿀색”은 1970년대의 어려웠던 시절 홀트 재단에 의해 벨기에로 입양된 한국의 소년 전정식이 자신의 입양과정과 벨기에에서의 성장과정을 만화로 엮은 일종의 자서전 같은 작품이다 “나는 벨기에 사람들 표현처럼 황새가 데려다 준 아기가 아니었다. 1971년 5월 11일, 새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그들은 한국말을 알지 못했다. 나는 이상하게 생긴 고무 샌들을 신고 있었다. 내 발에 너무 컸는데, 샌들에 달린 두 개의 고무줄은 제 역할을 했다. 예쁜 팔찌가 내 손목에 감겨있었다. 내가 다시는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매우 유용한 팔찌였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정식은 어린 시절 입양된 벨기에에서 양부모들의 엄격한 교육방침 아래 매우 유니크한 성격을 가진 남자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그의 술회에 따르면, 남자 형제 한 명과 여자 형제 세 명, 그리고 후에 한 명 더 입양된 한국의 소녀 이성숙까지 포함해 무려 여덟 명의 대가족 안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정식은 어릴 때부터 입양아들이 흔히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극심하게 겪게 되는데, 특이한 점은 같은 학교 내에서 같은 처지의 한국인 입양아들을 만나면 서로 외면했다는 사실에 있다. 자신의 처지와 모호한 정체성이 떠올라서였을까? 아무튼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느낌이었다. “한국은 21세기 들어서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아이들이 매년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그 수치는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피부색깔 = 꿀색”은 어떤 정치적 의도나 사회비판적인 태도를 내포한 작품이 아니다. 그저 입양이라는 제도를 통해 벨기에에서 자라난 한국인의 유전자가 고민하고 성장해가는 ‘자아 찾기’의 이야기일 뿐이다. 만화라는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다소 무거운 느낌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