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심플 (not simple)
“정말이지 네 인생은 굉장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 만약 영화가 이렇다면 오히려 억지스럽겠지. 네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어. 1년 후.... 네가 그녀와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할 거야. ...그래도 되겠지?” 얼굴표정이 보이지 않는 한 남자에게 심각한 표정...
2007-09-12
이지민
“정말이지 네 인생은 굉장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 만약 영화가 이렇다면 오히려 억지스럽겠지. 네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어. 1년 후.... 네가 그녀와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할 거야. ...그래도 되겠지?” 얼굴표정이 보이지 않는 한 남자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한 남자가 말을 건다. 그리고 만화는 바로 매우 비극적인 프롤로그로 이동한다. 광고 포스터 같은 느낌의 일러스트 아래, 책표지에 쓰여 있는 광고 문구는 이렇다. “그의 비극은 운명마저 삼켜버린다! 2006년 일본 만화계 최대의 화두 오노 나츠메의 대표작” 누나이자 엄마인 여자를 찾아 온 세상을 떠도는 주인공 이안, 그런 그를 유일한 친구로서 가만히 지켜보며 언젠가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 말하는 게이 소설가 짐, 그리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등장해 작품에 안타까움의 정서를 입혀주는 여자,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에게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외로움’이다. “걷고 있으니까 친절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게 돼. 내가 지금 여기 있을 수 있는 건 그 사람들 덕분인지도 몰라. 따뜻한 사람들이야. 하지만......정말로 내가 원한 건 좀 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온정이었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누나를 강간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남자 이안은 엄마이자 누나인 카이리를 빼고는 아무도 그의 존재를 원하지 않는 불행한 남자다. 이안이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함께 따뜻한 저녁식사를 먹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잘못 끼워진 운명의 첫 단추는 그에게 아주 사소한 행복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안에게 더 무겁고 힘든 운명의 올가미를 설치한다. “어때요. 다시 만나기로 약속 안 할래요?” “만나서 서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면 좋겠네요? 오늘처럼...” “그래요. 1년 후... 아냐, 3년 후에....그땐 뭔가 크게 변했을지도 모르니까...” “분명히 변해 있을 거예요.” 여행에 지친 이안에게 정장 한 벌을 선물하고 레스토랑에 데려가 저녁을 대접한 여인, 그 녀 자신도 무언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순간, 이안과의 저녁식사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이라는 인생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누나의 죽음을 알고, 자신에게 얽힌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이안에게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 일, 그녀를 다시 한 번 만나는 것, 그 것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인의 소개로 읽게 된 오노 나츠메의 ‘not simple’은 ‘매우 충격이었다.’ , 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광고 문구처럼 ‘일본만화계 최대의 화두’, 라는 말은 좀 과장이겠지만 작가가 천재임은 확실한 것 같다. 도입부부터 프롤로그, 그리고 매우 쓸쓸하면서도 안타까운 본문의 기승전결, 마지막으로 진한 여운을 남기는 에필로그까지, 완벽하게 짜 맞춰진 작품을 참으로 오랜만에 보았다. 정말 세상에 천재는 존재하는구나, 라는 씁쓸함과 함께 책장을 덮었을 때, 너무도 비극적인 주인공의 운명이 읽는 이에게 주는 안타까운 여운을 담배 한 개비 피워 물며 오랫동안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