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 (純愛普)
8월 현재 시청률 27대를 기록하며 화제만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은 신선한 설정과 톡톡 튀는 대사, 매끄러우면서도 인상적인 연출 등으로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동시간대의 다른 드라마들을 누르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2007-09-11
석재정
8월 현재 시청률 27대를 기록하며 화제만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은 신선한 설정과 톡톡 튀는 대사, 매끄러우면서도 인상적인 연출 등으로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동시간대의 다른 드라마들을 누르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드라마가 신선하게 다가온 이유는 아마도 여자주인공 고은찬 역의 윤은혜가 “남장여자”의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해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화 팬들에게 영원한 고전이자 명작 1순위중의 하나로 꼽히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도 여자 주인공인 오스칼이 격동기의 역사 속에서 여자의 몸으로 근위대를 이끌어가는, 냉철하고 아름다운 남장여자였기에, 그 애절함과 신선함이 여성독자들의 감수성을 마구 자극하면서 명작의 칭호를 얻었다. 이처럼 주인공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역전되는 “전복”의 효과는 작품에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어 독자들을 이야기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런 “전복의 효과”와는 해석의 시각이 사뭇 다를 수 있지만, 만화시장에는 아주 예전부터 존재해온, 소위 말하는 “BL(Boys Love ; 혹은 야오이)물” 시장이 존재해 왔다. 소재의 특성상 결코 시장의 주류로는 떠오를 수 없었으나 “금단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총칭되는, 여성독자들의 내밀한 욕망을 은밀하게 자극해온, ‘남자 대 남자’의 사랑을 주제로 한 만화들은 결코 없어지지도, 결코 확장되지도 않으며 그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BL물의 익숙한 코드들-남장여자(또는 미소년), 우정을 넘어선 과도한 동경심 등-을 아주 조금씩만 대중의 수위에 맞추어 변용하면,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의 명단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앞서 얘기한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의 사례가 증명해주고 있다. 얼마 전부터 침체에 빠진 한국만화시장에서 쏠쏠한 실적을 올려주고 있는 것이 인기 작가들이 공통의 주제로 창작한 단편들을 무크지의 형태로 묶어 출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BL(Boys Love ; 혹은 야오이)물” 단편집이 인기인데 여기에 소개하는 “순애보2” 역시 동일한 주제로 기획되었던 단편집 “순애보”의 성공을 등에 업고 동일한 타이틀로 다시 나온 대원씨아이의 기획 단행본이다. 참여한 작가는 심혜진, 나예리, 이현숙, 강혜진, 이시영, 신유하, 임주연으로 주로 대원의 순정월간지 “이슈”에서 적을 두고 작업하거나 현재 연재를 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일단 시장성을 검증받은 작가들의 단편이어서 딱히 처지는 작품들은 없다. 모든 단편들이 어느 정도 작품성과 상품성을 갖춘 상태에서 이 작가들의 팬이라면 특별한 유희로,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올 만한 작품집이다. 개인적으로 이시영의 “그러나”와 임주연의 “성역”이 만화적으로도, BL물로도 매우 훌륭했다고 느꼈다. 어찌되었든 무더운 여름밤, 잠도 오지 않는 짜증나는 열대야에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여성독자가 있다면 한번쯤 권해도 그리 실망스럽지 않은 책이다. 인기작가라는 타이틀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시간과 실적이 만들어준 타이틀이기 때문에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