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노! (Bambino!)
‘밤비노(Bambino)’란 이탈리아어로 ‘촌놈’, ‘철부지’, ‘애송이’라는 뜻이지만 레스토랑의 주방에서는 갓 들어온 신참 요리사, 또는 제대로 일을 할 줄 모르는 견습생 등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간 나왔던 수많은 요리 만화가 음식의 맛이나 장인정신, 요리기법...
2007-08-02
석재정
‘밤비노(Bambino)’란 이탈리아어로 ‘촌놈’, ‘철부지’, ‘애송이’라는 뜻이지만 레스토랑의 주방에서는 갓 들어온 신참 요리사, 또는 제대로 일을 할 줄 모르는 견습생 등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간 나왔던 수많은 요리 만화가 음식의 맛이나 장인정신, 요리기법 등을 주로 다루는데 치중했다면 여기에 소개하는 ‘밤비노’는 기존의 요리 만화가 미처 바라보지 못한 지점인 ‘레스토랑 주방의 풍경과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색다른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기존의 요리만화가 깊게 다루지 않았던 문제인 ‘주방은 전쟁터다’라는 소재를 다룸으로써 ‘밤비노’가 얻는 것은 무척이나 많다. 사실 그간 요리만화를 보면서 가장 짜증났던 것은 아무리 주인공들이 환상적인 맛이라고 칭찬을 하더라도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 맛을 그저 짐작밖에 할 수 없고 ‘저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는 욕구불만만 쌓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밤비노’가 주목한 지점은 요리의 맛이 아니다. 록폰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카날레’를 무대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의 다양한 주문을 제 시간에, 맛있게, 계속, 만들어 내야한다는 프로 요리사들의 숨 막히는 긴장감과 내부적인 갈등, 경쟁 관계, 고충 등을 심도 있고 리얼하게 다룸으로써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주방’이라는 신세계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후쿠오카의 조난대 대학생으로서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이탈리아 요리점 ‘산마루자노’에서 주방보조로 일하는 반 쇼고는 언젠가 프로 요리사가 되어 애인인 에리와 함께 자신의 가게를 여는 것이 꿈이다. 졸업을 1년 앞둔 어느 날, ‘산마루자노’의 오너이자 주방장인 신 씨는 쇼고에게 자신의 후배가 록폰기에서 하고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카날레’에서 두어 달 정도 주방 보조로서 경험을 쌓아보라 제의하고 예전부터 프로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쇼고는 들뜬 마음으로 도쿄로 향한다. 그러나 록폰기의 전통 있는 이탈리안 요리점 ‘바카날레’는 쇼고가 아저씨와 함께 둘이서 운영했던 ‘산마루자노’같은 조그만 가게가 아니었다. 일하는 스텝만도 수십 명이 넘고 1, 2 층은 홀, 3층엔 웨이팅 바까지 갖춰놓은 하나의 기업이었다. 오래 된 전통의 맛을 자랑하는 도쿄 중심가의 레스토랑에서 ‘주방’이란 음식을 만들 때 천천히 요리의 간을 음미하며 느긋하게 손을 놀리고 손님들과 농담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의 ‘주방’이 아니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주문과 쌓여만 가는 설거지 거리, 식재료와 조미료가 끝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져가는, 물과 냉기와 불의 열기가 정신없이 뒤섞이고 요리사들의 바쁜 칼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말 그대로 ‘전쟁터’였던 것이다. 이 전쟁터에서 쇼고는 견습 첫날부터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이 만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요리’나 ‘음식의 맛’이 아니다. ‘주방’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며, ‘요리사와 레스토랑’이라는 일반인들은 알 수조차 없는 요식업계의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물론 요리를 소개하거나 만드는 법, 접객에 대한 이야기, 장인정신에 관한 이야기 등 ‘주방’이외의 부차적인 문제도 굉장히 자세하고 꼼꼼하게 잘 다루어져 있다. 기존의 요리만화와 확실히 다른, 이 만화가 다루고 있는 ‘시스템’에 관한 리얼함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독자들을 ‘주방’의 세계로 확 끌어당긴다. ‘밤비노’는 기존의 요리 만화에 식상했던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은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