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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력과 치밀함, 인간미...회사원의 로망 - 히로카네 겐시 작가의 <시마과장>

<지금, 만화> 제22호(2024. 7. 22. 발행) ‘나의 한 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5-04-14 김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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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력과 치밀함, 인간미

회사원의 로망

 

히로카네 겐시 작가의 <시마 과장>

 

글 김유식(디시인사이드 대표)

 

1993년 필자가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 휴대폰 TV 광고를 보았다. “과장 시마입니다로 시작하는 TV 광고는 일본 전역으로 출장을 다니는 시마 과장의 휴대폰은 언제 어디서든 통화가 잘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곧 그 시마라는 과장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샐러리맨이자 만화 주인공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세계적인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맹활약하는 시마 과장은 당시 샐러리맨들의 영웅이기도 했다. 필자 또한 시마 과장의 결단력과 치밀함, 인간미에 감동하며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만화에 빠져들었다.

 

시간은 또 흘러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2000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필자는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디시인사이드와 노트북 컴퓨터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노트북인사이드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둘 다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된 사이트였기에 과감하고 공격적인 시도가 필요했다.

200012, 노트북인사이드는 서울 용산에서 A기업(지금은 사라진 유명 PC 제조사)의 노트북을 대당 220만 원에 납품받아 2248000원에 판매했다. 시중가보나의 한 칸다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이었고 이용자들도 많은 주문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A기업은 용산의 공급업체를 압박하여 제품의 출하를 중단시켰다. 우리가 판매가격을 너무 싸게 책정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미 많은 노트북 주문이 들어와 있던 상황에서 필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판매가격을 정하는 건 판매자의 몫이 아닌가! 이대로 납품을 받지 못한다면 그 피해와 비난은 고스란히 필자와 회사의 책임이 될 터였다. 직원을 통해 A기업과 연락을 취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A기업의 영업담당자인 B부장은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로 우리가 더 비싼 값으로 팔지 않으면 납품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선주문으로 들어온 것만 처리하고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사정했는데도 시장에서 알아서 구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어쩔 수 없이 주문자들에게 사과를 하고 취소하려던 때, 얼마전 봤던 만화 <시미 과장>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시마 과장> 8편에는 비슷한 내용이 그려져 있었다. 대기업 제품을 싸게 파는 판매점을 상대로 대기업이 압박을 하는 내용이었다. , 제조회사가 생산한 제품에 대해 최저 판매가격을 지정하는 행위는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 반하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내용이 떠올랐다.

이러한 행위가 일본에서도 죄가 된다면 틀림없이 한국에서도 같은 내용의 제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필자는 공정거래법을 뒤졌다. 결국 공정거래법 제46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금지조항을 찾아냈고 이를 근거로 공정위에 제소를 했다. 이 사실은 당시 많은 언론에서 다뤘고 고압적이던 A기업의 B부장은 저자세로 바뀌어 회사로 연락을 해왔다.


<시마 과장> 출처:서울문화사

 

 

앞으로 우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어떠한 태클도 걸지 않고 오히려 저가에 납품을 해주겠다며 공정위 제소를 취하해달라고 사정했다. 스타트업이던 필자 회사로서는 당시 대형 PC 메이커인 A기업과의 관계를 고려해 결국 제소를 취하했다.

신권이 발매될 때마다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의 주인공 시마과장은 부장, 이사, 전무를 거쳐 사장, 회장 자리에 오른 뒤 2022년에 52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만화 주인공이지만 시마 과장이 사장으로 취임했던 2008년에는 실제로 도쿄에서 사장 취임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지금도 <시마 과장> 전 권이 필자의 회사에 있고, 시간 날 때마다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여전히 재밌다. 글이 많아 한 권을 정독하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주인공 시마 과장이 이사로 취임하고부터는 아시아 경제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날카로워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다만 만화에서 33세 과장부터 시작한 그의 나이는 현재 일흔도 넘는 고령이라 필자와 함께 같이 늙어간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한편, 당시 A기업과 분쟁이 끝난 어느 날, 회사 직원이 고압적인 자세에서 저자세로 바뀌었던 A기업 B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A기업 노트북 중에서 우리가 납품받을 만한 것이 있을까 하는 문의였다. B부장의 대답은 시장에서 알아서 구하세요였다. 성공한 회사원은 사안에 따라 태도를 바꾸면 안 된다는 <시마 과장>의 업무철학과는 너무 다른 태도여서 다시 <시미 과장>을 꺼내 읽으며 마음을 다잡은 기억이 난다.


<시마 과장> 출처:서울문화사


필진이미지

김유식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설립자이자 대표이사. 디시인사이드에서 유식대장으로 불리는 만화덕후이자 <지금, 만화> 애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