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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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이직, 노조 간의 갈등소송 전

애니메이션?영화제작과 배급의 거대공룡인 월트디즈니, 소니픽처스, 그리고 드림웍스 등이 임금동결 및 이직 금지 담합협정에 관한 소송에서 본격적인 반격을 가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2015-01-29 오필정


애니메이션?영화제작과 배급의 거대공룡인 월트디즈니, 소니픽처스, 그리고 드림웍스 등이 임금동결 및 이직 금지 담합협정에 관한 소송에서 본격적인 반격을 가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작년 애니메이션 제작자 몸값 동결 및 동종업계간 스카우트 금지 협약을 맺어 소송에 휘말린 사건의 연장선이다. 이는 현직 종사자는 물론 관련업계 아티스트를 지망하는 취업준비생에게도 큰 영향을 줄 만한 일이기에 미국 내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상황을 시시각각 지켜보고 있는 분위기다.





조직적인 인력 이동 저지와 암묵적 임금 동결, 그 전말과 현재
사건의 전말은 2014년 상반기 IT업계 기업의 ‘회사간 직원 이직금지 협약’에서 시작됐다. 2014년 4월 경, 구글, 애플, 인텔, 어도비 등 미국 IT업계를 대표하는 기업 간부진이 엔지니어 인력의 몸값 상승과 기술진 이동을 금지하기 위해 타사 경력직원 채용 및 이직을 금지하는 담합을 했고, 이것이 적발돼 소송이 시작됐다. 이들은 기술자의 이동과 몸값 상승을 막기 위해 서로의 채용 정보를 공유하거나 해당 직원의 주변을 통해 이직을 막는 등 적극적인 행동으로 빈축을 샀었다.

문제는 월트디즈니, 소니 픽처스, 드림웍스도 IT회사와 긴밀히 연결돼서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업계의 사건은 2014년 9월 수면으로 드러났으며, 그 과정에서 대형제작사뿐만 아니라 이들과 비즈니스 관계로 이어져 있는 작은 스튜디오까지 연루되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디즈니 픽사의 에드윈 캣멀은 이를 가장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인물로 꼽히며, 그와 과거 스티브 잡스 생전에 인력 유출 관련 정보교환을 했던 메일문건이 공개돼 엄청난 충격을 주었었다.

아래는 과거 애드윈 캣멀, 스티브 잡스, 디즈니 CEO가 주고받은 메일의 내용을 일부 발췌했다.

“소니가 픽사의 프로듀서와 접촉해 스카우트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ILM이나 드림웍스처럼 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아 소니를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쪽 사원이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있으므로 싹을 제거해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
“로버트 저멕키스가 드림웍스에서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해 직원 몇 명을 뽑아갔습니다. 인건비 인상을 피하고자 픽사, ILM, 드림웍스 외 소규모 제작사와도 협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디즈니와 픽사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략)”,
“동의합니다. (중략)”,
“작업자 상호 스카우트 금지 협약에 드림웍스가 합의했습니다. 우리 쪽 인사부에도 드림웍스 쪽 사람은 손대지 말라고 통보했습니다. (중략)”


문건과 증거들이 포착된 후, 작년 9월부터 각자 개인적인 소송을 제기했던 원고인들이 지난 12월에 한 개의 소송으로 통합되어 행동을 같이 하고 있다. 원고측은 아티스트 데이비드 웬트워스(David Wentworth), 로버트 니치 주니어(Robert Nitsch Jr.), 조지 까노(George Cano) 등을 주축으로 구성돼 3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접수한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기업들이 조직적인 대응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단체로 Gibson, Dunn&Crutcher, Covington and Burling, Orrick, Herrington&Sutcliffe LLP, Williams&Connolly plus McManis Faulkner등의 대형 로펌을 고용하는 등 물밑작업을 끝낸 상태로 알려졌으며, 기업측에서 주장하는 주요 기각 사유는 ‘공소시효 만료’라고 전해졌다.

기업의 현재 입장은,

“이미 관련 소송은 2009년, 2011년에도 제기되어 연방정부의 조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이슈화된 상태에서 현재의 원고측은 어떠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으며, 기업은 미국 법무부가 조사를 시작한 시점에서 거의 5년을 기다렸다고 했다. 원고측은 고급인력 스카우트 저지 및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불법혐의 건을 취합하기 위해 시일이 필요했다고 하지만, 법률적으로 헛된 시도였고 너무 늦게 문제를 제기했다.”

*법무부 및 연방의 기업 조사가 시작된 시점에서 4년 이내에 원고(피해자)가 법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공소시효 만료로 인정된다는 조항이 있음.

라고 피고측이 밝혔다.

원고측은 2014년 9월 8일, DWA의 시각효과 아티스트였던 니치가 소송을 건 것을 시작으로 까노의 사건이 곧이어 접수, 10월 2일에 같은 맥락의 사건으로 3번째 고소가 이어졌다. 이들은 12월 2일 합의점을 찾아 집단고소로 통합하여 법정공방을 시작했다. 피고인은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해 3억 2,500만 달러(약 3,502억 원)의 합의금을 제시했지만 원고측은 거부했다. 현재 피고인 측인 디즈니, DWA,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는 판사 Lucy Ko가 주관하는 청문회를 요청, 원고인의 증거 불충분을 언급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반대로 원고측은 추가 증거물 확보 및 소송이 공소시효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대립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공개한 내부 문건(경영진의 이메일 내역)은 극히 일부이며 아직 공개되지 않거나 인멸된 것이 많을 것이라 주장해 왔다.

일각에서는 이미 기업에선 비밀문건 인멸은 물론, 소속된 내부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감시하거나 자제시키는 등의 시도가 예측된다고 보고 있다. 미국 내는 물론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번 사건은 과연 담당판사가 누구의 편에 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문 인력만의 문제?
여기까지 사건 정황을 이해한 독자는 이런 의문을 가질 것 같다.

‘고위 연봉자만의 이야기 아닌가?’ ‘아트 디렉터급 이외 일반 제작사원이나 신입사원들은 해당사항이 없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의 답을 흑백 논리로 말하기 힘들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해당한다.’에 조금 더 가깝다고 결론 내렸다. 이 결론의 전제는 필자가 과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에서 유학하며 전해 들은 업계관련 소식이나 분위기 동향이 결정적으로 뒷받침 됐다.

필자가 미국에서 거주할 당시 취업?정착에 성공한 동문을 초청해 열리는 세미나와 취업 스터디 모임이 종종 있었다. 한국인은 애니메이션 관련 전공이 주로 많았던 탓에 자연스레 취업 관련 소식이나 현직에 있는 선배들의 현장 소식이 알려지곤 한다.

학생의 관심사는 한국, 미국 할 것 없이 1순위가 취업이다. 이들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제작사 소속인 애니메이터, VFX 외 다양한 분야 디자이너 선배를 보면 흔히 질문이나 포트폴리오 점검을 부탁하곤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필자는 좀 의아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한 학생이 특정 스튜디오를 한 곳만 지원하는 것이 아닌 두세 곳을 동시에 쓰고 싶은데 포트폴리오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묻는 것이었다. 대답은 뜻밖에 되도록 대형 스튜디오는 한 곳만 노리고 그 밖의2, 3지망은 작은 회사를 쓰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픽사는 픽사 스타일, 드림웍스는 드림웍스 스타일, ILM은 그곳의 스타일이 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신입을 뽑은 후 키워서 쓰길 바라지 어설픈 경력(디렉터급 이하)의 이직자는 선호하지 않는다. 한국과 다르게 경력이 쌓이면 더 큰 회사로 옮기는 게 아니라 되려 더 작은 스튜디오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요샌 규모 있는 제작사로 이직하고 싶어도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또한 디렉터급도 총감독(영화제작 총감독)이나 스카우트를 하며 옮겨다니지 파트별 디렉터급도 회사를 옮기거나 하는 경향을 들어보지 못했다.”

라고 말했다.

위와 같은 내용이 오간 시기가 기가 막히게도2010년 전후였다. 취업에 성공한 대부분이 동일한 말을 하며, 자신들도 지금의 회사에 버틸 만큼 버텼다가 정 못 버티면 작은 회사로 옮기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 일반 학생은 제외하더라도 한국에서 일하다 온 경력을 가진 학생, 그리고 미국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타 업종 사람도 좀 특이한 경우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에서 전문 분야는 경력과 포트폴리오가 쌓이면 이직을 하며 연봉을 올려가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이 필자의 넘겨짚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저런 조언을 해준 현직자들은 주로 우리가 이름을 대면 아는 대형 스튜디오(현재 소송에 휘말린 회사들) 직원이었고, 연차도 최소 5년에서 10년을 넘긴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팀장급(파트감독)을 달지 않은 현직자가 미래에 연봉을 높이는 이직 의사가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의아했다. 왜냐하면 미국 내 애니메이션 제작스튜디오는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저임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이 드림웍스를 방문했을 때, 애니메이션 제작파트 소속 사람 몇 명이 업계 저임금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피켓시위를 한 적도 있다.)

작년 하반기,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최저시급을 8불에서 10불로 인상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단편적으로 보자면 시급을 받는 시간제 노동자에게 해당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일반 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이 시급기준으로 측정되기에 그 영향은 아주 크다.

하물며 애니메이션은 최소 수천 명 이상의 실력 있는 아티스트가 재능과 시간을 쏟아야 작품 탄생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느 업종보다 인건비와 시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과거 한 애니메이션 회사는 연방정부의 시급이 캘리포니아 정부의 최저시급보다 저렴하다는 것을 착안, 대도시와 아트스쿨이 몰려 있는 근처 절묘한 장소에 스튜디오를 건설해 상대적으로 낮은 시급을 인건비로 지급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최저시급 8불, 연방정부의 시급은 6불 정도였다. ) 그만큼 제작사는 인력의 질과 인건비에 유독 민감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물론 시장논리에 따르면 경영진은 최소한의 비용에서 최대의 효과를 보길 원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보상 받길 바란다. 이런 절묘한 균형 속에 거대한 단체나 조직이 유지되는 것이지만, 문제는 이들이 단순 노동자가 아닌 작업자, 즉 아티스트라는 점이다.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흥행에 정답이 없듯이, 성적 좋고 스펙 좋은 사람을 데려다 놓는다고 훌륭한 작업자가 될 수 없다. 또한, 창의성, 재능, 노력이 밑바탕이 되는 공간에서 이들은 더욱 시너지 효과를 만들겠지만, 여기에 사측의 횡포가 지속된다면 과연 그 자리에서 작업자가 좋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대형 제작배급사의 담합과 이번 소송전이 작업자에게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 지켜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