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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그 이후

1월 11일, 이를 추모하는 대규모 행진이 있기 전날, 주간 샤를리의 만화가 중 한명인 뤼즈(Luz)가 ≪les in rocks≫지에 인터뷰한 것을 일부 소개한다. 뤼즈는 20년 전부터 샤를리에서 일을 했으며 몇몇의 ‘생존자’들과 계속 주간 샤를리를 이끌어나갈 예정이다.

2015-01-21 박윤선

프랑스 주간 시사만화잡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테러 사건 직후 많은 이들이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 라는 슬로건을 들었다. 1월 11일, 이를 추모하는 대규모 행진이 있기 전날, 주간 샤를리의 만화가 중 한명인 뤼즈(Luz)가 ≪les in rocks≫지에 인터뷰한 것을 일부 소개한다. 뤼즈는 20년 전부터 샤를리에서 일을 했으며 몇몇의 ‘생존자’들과 계속 주간 샤를리를 이끌어나갈 예정이다.



Q. 다음 수요일(1월 14일)에 나올 샤를리 엡도는 국가적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의 책임감을 어떻게 느끼는가 ?
A.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미키마우스 같은 것을 그릴 때 느껴지는 어떤 보호감을 느끼며(이 그림 때문에 내가 공격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 허나 지금처럼 사람이 죽고, 총기가 난사되는 이런 일들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모두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고, 우리들과 우리의 그림들은 무슨 상징이 되었다. 신문 ≪L’humanite(류마니떼)≫가 자신들의 표지에 ‘우리가 죽인 것은 자유다’라고 쓰고, 그 글 아래에 내가 예전에 우엘벡(Houellebecq) 가지고 장난친 그림을 붙여놓았더라. 사람들이 우리의 그림에는 있지도 않고 우리를 넘어선 그런 상징을 우리 어깨 위에 짐지운다. 나는 이런 상황을 힘들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다. (...) 덴마크의≪Jyllands-Posten(윌란스 포스텐)≫지가 무함마드 그림을 실은 것을 2007년에 우리가 다시 실은 것 때문에 우리는 선동가이거나 언론자유의 백마 탄 기사쯤이 되어버렸다. 2011년에 우리 건물이 불타버렸고, 또 한 번 백마 탄 기사가 되어버렸다. 2012년에는 이슬람교를 가지고 만든 그 영화 때문에(Innocence of Muslims), 우리는 늘상 하듯이 무함마드 그림을 그려서 내지에 실었다. 그랬더니 우리는 외국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들을 문 닫게 하고 위험으로 내몬 위험한 선동자들이 돼버렸다. 미디어들은 우리 그림을 엄청나게 뿌려댔는데, 사실은 고등학생들이 만드는 팬진 정도 되는 걸 가지고 말이다! 이것이 갑자기 국가의 상징이 되고, 국제적 상징이 되고… 이 그림 그린 사람들이 죽었는데, 무슨 표현의 자유를 죽였다니! (…)

무함마드 캐리커처가 출판된 이후 캐리커처가 가지는 무책임성이라는 것이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2007년부터 우리 그림은 그냥 1차적으로, 날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반인들이나 만화가들, 심지어Plantu같은 만화작가도 인터넷 같은 것 때문에 우리가 무함마드를 그려선 안 된다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우리가 이 프랑스 내에서 하는 일이 저기 콸라룸푸르나 다른 곳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 조심하란 소리다. 난 이런 말은 정말 참을 수가 없다. (…) 우리는 그냥 신문이다. 사람들이 이걸 사고, 다 읽으면 덮는다. 만약에 우리 그림을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리고, 미디어가 우리 그림 중 몇 개를 앞에다 내세우면, 그때부터 벌어지는 일은 그 사람들의 책임이지 우리가 아니다.

Q. 그런데 그게 지금 벌어지는 일은 완전 반대인데…
A. 우리는 지금 샤를리의 그림에 있지도 않은 상징적인 책임을 짊어지게 생겼다. 비록 우리가 그 상징이라는 것에 맞서 싸웠는데도 말이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니, 다른 전쟁 관련된 메타포니 하는 것은 우리랑 상관이 없다. 우리는 프랑스 유머로, 이 작은 프랑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정확한 한 지점, 디테일 위에서 일을 한다. (…) 샤를리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자기 그림을 그린다. 작가에 따라 그림의 성격이 달라진다. 허나 다 다르게 그린 이 그림들을 마치 한 뭉터기로 여기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우리를 우리가 늘 없애고 싶었던 그것(상징)으로 만들어 버렸다. 상징을 파괴하고, 터부를 없애고, 환상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리자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하는 건 참 멋지지만 샤를리의 그림이 가지는 의미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금 이 일체주의는 올렁드 대통령에게는 나라를 한 데 묶는 데에 참 유용할 것이요, 마린 르뻰 (극우파 총수)에게는 사형제 부활을 이야기하는 데에 참 유용할 것이다. 상징을 가지고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 푸틴조차도 평화의 비둘기에 찬성할 것이다. 그런데 샤를리의 그림을 가지고서 자기 마음대로 하지 좀 마시라. 우리가 몽매주의의 한 실제 예를 가지고 놀리거나, 어떤 정확한 정치적 상황을 가지고 놀릴 때 우리는 상징 안에 있지 않다.

Q. 계속 무함마드 캐리커처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A. 재미있는 점은 그 2007년 이후에도 우리는 무함마드 캐리커처를 계속 그렸다는 것이다. 2011년, 2012년 사건 이후에 Charb(샤흡)과 Zineb El-Rhazoui는 ≪La vie de Mahomet(무함마드의 삶)≫이란 2권짜리 책도 냈다. 하지만 이때 여기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샤흡은 우리가 계속해서 터부와 상징을 무너뜨리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자신이 상징이 돼버렸다. 내 자신이 상징이 된 마당에 어떻게 상징을 무너뜨리느냐에 대해선 아직 해답을 못 찾겠다. 그 상징이 된 샤를리에서 벗어나도록, 죽은 내 친구들을(절대 ‘프랑스’를 위해서 죽은 게 아니다!) 생각하며 힘을 내려 한다. 지금 사람들은 마치 샤를리가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쓰러졌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냥 그 친구들은 죽은 거다. 우리들이 사랑했고, 재능을 높이 산 그 친구들이 죽은 거다.
(어떤 투사의 이미지를 죽은 작가들에게 씌워서 그들을 어떤 상징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뜻으로 여겨진다.)


원문 주소: http://www.lesinrocks.com/2015/01/10/actualite/luz-tout-le-monde-nous-regarde-est-devenu-des-symboles-11545315/

무함마드 캐리커처와 관련하여 2007년부터 시작된 샤를리 에브도의 논란은 만화 규장각 내의 박경은 작가의 기사에 정리가 되어 있다. (주소: http://www.komacon.kr/dmk/manhwazine/zine_view.asp?cateNum=415&Tag=&seq=1728&nowPage=10&srh_fld=&srh_txt=)


Hara-kiri(아하 키히)와 샤를리 에브도에 오래 전부터 참여한 작가 Willem(윌렘)은 ≪우리는 갑자기 새 친구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교황이나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푸틴 같은 친구 말이다. 이는 정말 날 웃기게 만든다! 마린 르뻰은 이슬라미스트들이 여기 저기 총질을 하기 시작하니까 기쁘겠지. 우리는 갑자기 우리 친구라고 말하는 인간들에 구토를 날린다.≫라 말했다. 또한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세계적 지지에 대해서 ≪그 사람들은 (대부분) 샤를리 에브도를 한 번도 본 적도 없다. 몇 년 전 파키스탄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샤를리 에브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때 그 사람들은 샤를리 에브도가 뭔지도 몰랐다. 지금 반응은 완전 반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위한다면 뭐 좋은 일이긴 하지.≫라 말했다.
(원문 주소: http://focus.levif.be/culture/livres-bd/willem-nous-vomissons-sur-ceux-qui-subitement-disent-etre-nos-amis/article-normal-360743.html)


73세의 네덜란드 출신 만화가 윌렘은 오래 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며 현재 샤를리 에브도와 Liberation(리베하씨옹)에 참여하고 있으며 2013년 앙굴렘 만화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사건 다음 날 리베하씨옹과 한 인터뷰 일부를 소개한다.

Q. 사건 당시 샤를리 에브도로 가는 기차 안이었다고
A. 나는 회의 다음 날에 다음 주 잡지에 낼 그림을 주려고 가는 길이었다. 쇼홍 교수(Professeur Choron)가 없어진 이후로 나는 재미가 없어서 편집회의에 가지 않는다. 쇼홍 교수와는 언제나 파티였다. 허나 이후 Philippe Val(필립 발)이 온 이후부터 회의는 끝이 없는 모노톤으로 바뀌었고 나는 졸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나는 옆 술집으로 도망갔다.

Q. 앞으로 진행에 대해…
A. 계속 하는 게 힘들겠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더 의지가 있다. 2011년에 공격이 있었을 때 카바나(Cavanna)가 우리한테 바로 전화를 해서 이랬다. ≪출판 부수를 2배로 올려!≫라고. 지금은 모두가 우리에게 돈을 주려고 하고 있다. 마린 르뻰도…(웃음) 절대 우리가 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럼 완전 끝나는 거야. 기관총 난사하는 놈들한테 세상을 넘겨주면 안 되지. 어찌 되었건 사람들을 웃도록 해야 해.
원문 주소: http://www.liberation.fr/culture/2015/01/08/impossible-de-ne-pas-boire-ce-soir_1176532

각 인터뷰에 원문 주소를 밝혀놓았으니 오역이 있다고 여기시는 분은 지적하시기 바란다.
주간 샤를리의 이전 이름은 <주간 아하 키히>이고, 이는 지금은 사라진 월간지 <아하 키히>와 연관되어 있다. 인터뷰 내에 잠시 거론되는 카바나와 쇼홍 교수는 이 아하 키히의 주요 인물들. 이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다.
http://www.komacon.kr/dmk/manhwazine/zine_view.asp?cateNum=415&Tag=&seq=1999&nowPage=2&srh_fld=&srh_txt=


1월 11일에 프랑스 전지역에서 행진이 있었다. 파리에는 많은 나라의 정상들이 ‘표현의 자유’를 위해 참여했는데, 몇몇 특이한 참석자들이 명단에 들어 있다.

Viktor Orban(오르반 빅토리) 헝가리 총리: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각종 법안 덕분에 국제적으로 유명.
Serguei Lavrov(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
푸틴은 이 행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그를 대신하여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Ali Bongo(알리 봉고) 가봉의 대통령:
이 대통령 일가족은 대를 이어 현재 약 50년째 가봉을 집권 중이다.
Benyamin Netanyahou(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hmet Davutoglu 터키 총리:
터키의 대통령이 참석할 것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총리가 대신 이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행진에 참석했다. 터키는 감옥에 갇힌 수감자 수로 남 못지않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14일. 주간 샤를리가 또 한번 무함마드 캐리커처를 표지에 내세우며 나왔다. 또 한 번 파장이 예상되기도 하는 가운데, 발빠른 수집가들은 이 최신호를 사서 높은 가격에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세상은 요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