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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23 : 군사정부 시대의 만화가 왕현, 유세종, 신현성

1961년 5. 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은 군대식으로 통제되기 시작했다. 가난 극복을 부르짖으며 강력하게 근대화를 추진해 나갔다. 하지만 모두 불평 한마디 없이 침묵해야 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는 더더욱 숨소리를 죽이고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받아야 했다.

2016-07-26 박기준

1961년 5. 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은 군대식으로 통제되기 시작했다. 가난 극복을 부르짖으며 강력하게 근대화를 추진해 나갔다. 하지만 모두 불평 한마디 없이 침묵해야 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는 더더욱 숨소리를 죽이고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받아야 했다.

이 힘겨웠던 시절에 영화는 가장 큰 시장을 가진 대중오락이었다. 그런 영화계에도 불호령이 떨어졌다. 4. 19 학생 혁명 후 인기리에 상영되던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이 조국의 현실을 너무 어둡게 그렸다며 상영을 중지 시켰던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러나 1964년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승공 영화 ‘빨간 마후라’는 군의 사기를 높여주는 작품이라 해서 전군의 적극 무상 지원을 받으며 순탄하게 제작, 무검열 통과시켰다. 이 ‘빨간 마후라’는 공중 전투 비행단의 숨 막히는 활약을 다룬 수작으로 해외에까지 수출될 만큼 각광을 받았다. 주제곡은 대만 공군에서 계약을 따내 지금도 대만 공군가로 애창되고 있다 한다.

△ 좌로부터 빨간마후라, 오발탄(1961년).

문화예술 분야는 정훈 장교 출신들이 입안하여 각종 정책이 규격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신문의 언론 자유에 대해서는 혹독했다.
시사풍자 카툰 분야는 특히 요주의 대상이었다. <동아일보>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을 비롯하여 <경향신문> ‘두꺼비’의 안의섭, <중앙일보> ‘왈순아지매’의 정운경, 그리고 박기정 등 시사만화가들은 시시때때로 걸려 오는 험악한 협박을 담은 괴전화는 물론, 어딜 가더라도 따라붙는 미행 등 신변을 위협하는 공포 속에서 작품을 창작해야만 했다. 이는 <경남 국제신보> ‘피라미’의 작가인 안기태 등 지방 신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예외는 아닌 수난의 시대였다.
청소년 잡지는 만화 쪽수까지도 제한했다. 몇 쪽 이상 못 싣게 하니 나중에는 편법까지 등장했다. 잡지마다 발행부수에 영향을 미치는 만화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별 수 없이 별책 만화 부록을 끼워 넣는 부록 경쟁이 시작, 그것도 한 권에서 두세 권씩 더 늘어가는 해프닝마저 벌어졌다.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세계> <만화왕국> 등 청소년 잡지들은 검열 사후 심사를 받는 식이어서 주의 환기, 경고 조치로 가까스로 숨 쉴 틈이 아주 약간 허용되어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청소년 단행본 만화는 그 어느 때보다 심의검열이 엄격한 시대였다.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 하여 판잣집에서 누더기 옷을 걸친 가난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고, 도둑이 도망가는데 경찰이 “서랏!”하고 명령했는데 계속 도주하는 장면을 넣게 되면 공권력을 무시한 작품이라고 해서 수정을 명하는 어처구니 없는 심사 기준이 적용되었다.
또 웃옷의 단추를 하나 풀어 놓는다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장면은 불량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러한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아도 작가들에게 있어 검열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작가들의 창작의 자유를 억제했는지, 창작력을 저해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런 관행이 지속되어지는 동안 한국 만화의 발전에 얼마나 큰 장애가 되었는지 가히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 빨간 마후라의 한 장면

대본용 시대에 와서는 대본소가 불량만화의 온상지라는 불명예까지 얻게 되었다. 위생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장소며 불량식품도 팔고 불량배들도 들락거리는 위해업소라 하여, 교육계와 아동 문학계 지도층, 나아가서는 학부형들까지 나서서 마녀사냥이나 다름없는 캠페인을 펼쳤던 시대였다.
필명을 사용하던 만화가들에게는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이름으로 고치도록 하며, 캐릭터의 이름도 국적 모를 이름이나 실제 사용하지 않는 엉뚱한 이름은 쓰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장편 연속만화도 상하권으로만 그치고 더 이상 연장해 그리지 말도록 하라는 명령도 함께였다.
만화는 영화나 다름없이 화면 연출과 동작 묘사가 생명인데, 이처럼 하나하나를 억제하고 나서니 단행본 만화를 아주 없애고자 하는 처사나 마찬가지인 수난기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악명 높은 청소년 만화 단행본 독점 출판사까지 출현했다.
4. 19 혁명 이전의 영화 독점 재벌이 임화수였다면, 만화 독점 재벌은 ‘신촌 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영래였다. 그는 이윤 추구를 위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인물이다.
우선 가격 경쟁으로 우위를 점령했다. 쪽수를 줄이고 규격도 줄이고 제작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고서는 인기 작가를 확보한 다음 전국 판매처를 독점한 것이다.
그런 후 타사의 인기 작가 작품의 캐릭터를 모방한 작품을 만들어 배포하는가 하면, 작가들의 작품 수를 제한하는 등 온갖 횡포를 서슴지 않았으니 기존 출판사들은 모두 손들고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만화 종수가 워낙 많아지다 보니 나중엔 서점에서도 진열하길 거부하게 되고, 그때부터 만화를 사보던 시대에서 빌려보는 만화방 시대로 변하게 된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만화 명작들은 겨우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시대극화로는 김종래, 박기당, 서정철, 손의성, 이두호가 있었고, 명랑만화로는 ‘칠성이’의 김경언, 신동우, 박현석, 김기율, 김근배가 있었다.
그리고 스토리만화로는 ‘도전자’의 박기정을 비롯해서 방영진, 박부성, 박기준, 정한기, 또 SF 판타지만화로는 ‘라이파이’의 김산호, 이정문, 고유성, 오명천, 손의성, 장병욱이 활약했다.
순정만화 분야에서는 이범기, 조원기, 권영섭, 송순희, 엄희자, 박수산, 장은주, 민애니가 활약했고, 동물 의인화 만화로는 최경의 ‘동물전쟁’ 차형의 ‘진돗개’ 시리즈 등 다양한 장르의 대본용 만화로 화제를 모았다.
<새소년>지에 연재한 시대극화 ‘대야망’의 인기를 발판으로 고우영은 <주간한국>에 ‘임꺽정’을 연재, 폭발적인 인기로 성인 극화시대를 열게 된다.
어쨌거나 가난해서 책을 구입해 보긴 어려웠던 청소년들은 적은 돈으로 대여해서 읽으며 희망의 꿈을 꿀 수 있는 만화방이 있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1970년 후반기의 최고 만화가는 누가 뭐래도 고우영이었다. 독점 출판사에서 추방당하고 <어문각> 출판사의 <새소년>지에 동화 삽화나 컷 등을 그리며 떠돌이 작가 생활을 하던 그에게 쨍하고 해가 뜬 것이다.
<여학생>지에는 이상무가 ‘노미호와 주리혜’로 등단, 이후 ‘독고탁’ 시리즈로 뜨거운 갈채를 받으면서 청소년 최고의 만화가로 군림하며 10여년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 두 만화가가 연이어 신문 잡지 만화를 개척하면서, 만화방 시대를 뛰어넘어 서점 시대로, 다시 스포츠 신문 시대로, 나아가서는 만화 애니메이션의 산업화 시대로 이끈 대표적 만화가로 높이 평가된다.

왕현
1937년 전남 출신. 학창시절 낙서대장으로 불렸을 만큼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고, 그의 그림은 몰라보는 학생이 없을 정도였다.
만화에 대한 꿈을 품고 오랫동안 습작을 거치며 애쓰던 그는 첫 작품을 완성해서 서울로 상경하였다. 막 전쟁이 끝난 뒤여서 영화와 음악, 전쟁놀이 등 모든 사회적 분위기가 전쟁 영웅을 우러러 보던 시대였다.
그 역시 이런 시대적 영향을 받아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병장의 무용담’을 탈고하여 마침내 1957년 데뷔한다. 이 작품으로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들 좀 더 새롭고 신나는 전쟁만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 시절 외국에서 만들어진 흑백 전쟁 영화로, ‘요철 외인부대’라는 코미디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 얼룩유격대, 전쟁터에 출전한 유격대를 소재로 한 무용담.
귀엽고 동글동글한 캐릭터와 내용 중간에 코믹한 설정이 삽입, 밝고 유쾌한 작품.

이 영화에 착안하여 왕현은 1959년 ‘얼룩 유격대’ 시리즈를 펴내며 인기 작가 대열에 들어선다. 간소한 그림체로 밝고 유쾌한 내용의 ‘얼룩이’ 시리즈는 소대가 똘똘 뭉쳐 혁혁한 공을 세우는 통쾌한 이색 전쟁만화였다. 주역인 뚱보 캐릭터 우멍이와 그 똘마니 같은 생쥐처럼 작은 캐릭터가 함께 다니며 온갖 사고를 치는 역할로 등장한다. 군사 훈련을 받을 때부터 시작해서 중동 아프리카 전쟁터에서도 연신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데 이 희극 전쟁물은 웃을 거리가 필요했던 우리 사회상을 배경으로 크게 히트를 친다. 후배 만화가 허영만도 이와 같은 그의 작품의 열렬한 독자였다고 한다. ‘얼룩 유격대’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이번에는 전쟁무대를 한국으로 옮긴 ‘얼룩 유격대’ 시리즈로 그는 계속 작품을 이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2차 대전을 무대로 한 독일군의 ‘제 17 포로수용소’가 흑백영화로 제작되어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에도 외인부대의 두 명콤비가 등장, 수시로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코믹 전쟁영화였다.
이 영화에 착안하여 왕현은 1959년 ‘얼룩 유격대’ 시리즈를 펴내며 인기 작가 대열에 들어선다. 간소한 그림체로 밝고 유쾌한 내용의 ‘얼룩이’ 시리즈는 소대가 똘똘 뭉쳐 혁혁한 공을 세우는 통쾌한 이색 전쟁만화였다.
주역인 뚱보 캐릭터 우멍이와 그 똘마니 같은 생쥐처럼 작은 캐릭터가 함께 다니며 온갖 사고를 치는 역할로 등장한다. 군사 훈련을 받을 때부터 시작해서 중동 아프리카 전쟁터에서도 연신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데 이 희극 전쟁물은 웃을 거리가 필요했던 우리 사회상을 배경으로 크게 히트를 친다.
후배 만화가 허영만도 이와 같은 그의 작품의 열렬한 독자였다고 한다.
‘얼룩 유격대’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이번에는 전쟁무대를 한국으로 옮긴 ‘얼룩 유격대’ 시리즈로 그는 계속 작품을 이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2차 대전을 무대로 한 독일군의 ‘제 17 포로수용소’가 흑백영화로 제작되어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에도 외인부대의 두 명콤비가 등장, 수시로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코믹 전쟁영화였다.

△ 얼룩공수대, 공수부대를 소재로 한 작품. 주인공 돌돌이와 새털이, 뚱보, 우멍이 삼총사의 특이한 몸체가 매력.

왕현은 1968년 한국 전쟁을 무대로 한 만화로 ‘얼룩 공수부대’ 시리즈, ‘얼룩 해병대’ ‘얼룩 스파이’ 시리즈를 연속적으로 펴내서 다시 한 번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무협만화로 ‘얼룩기사’를 펴내기도 했다.

△ 얼룩 외인부대, 외국을 무대로 한 또 다른 외인부대의 활약
그 후 태평양 전쟁으로 무대를 옮겨 미일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잠수함 전략 무용담 ‘부글부글호’ ‘태평양의 불꽃’ ‘해적’ 시리즈 등을 펴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적 자료도 필요했으므로 전문적 출판물이 많은 일본 서적에 손대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일어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서울 일본문화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한때는 만화가들도 일본 영화 상영회에 그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으며, 그가 보이지 않아 일본으로 이민 갔다는 소문도 나돌았으나 나중에 사망 소식이 알려진다. 그의 재미난 덕담과 그의 작품들이 이제 만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유세종

1930년 일본 교토 출생.
일본 친구들에게 왕따 취급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공업계 학교에 진학하면서 공업 미술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으며, 그의 만화 그림도 무시 못 할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해방이 되자 그는 가족과 함께 귀국한다.
한국 전쟁 때 국군에 지원 입대, 정훈국에 소속되어 미술 부서에서 근무하게 된다. 전시 때 민간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국군에게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신문과 각종 출판 홍보물, 포스터 등의 그림을 그리며 차근차근 그림 실력을 키워 갔다.
휴전이 되자 군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 정한기로부터 만화 작품을 도와 달라는 제의를 받고 상경, 작품을 도왔던 것이 본격적 그의 만화 수업이 된다.
1960년에 독립하여 <제일문고>에서 시대 극화 ‘충무공 이순신’ ‘심청전’을 펴내며 데뷔한다. 그의 작품 성향은 고전을 소재로 삼아서 사실적 그림을 결합시킴으로써 사실감을 살린 덕분에 독자들은 누구나 깊은 호감을 갖게 된다.
1961년 SF 창작극화 ‘P맨’으로 누구나 동경하는 인기 작가 대열에 오르게 됐다. 시리즈 작품을 계속 그려나가며 생활도 안정을 찾게 되자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 와서 함께 지내게 된다.
그 시절엔 일본 SF만화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었다. ‘반달가면’ ‘가면라이더’가 최고 인기 만화 장르여서, 저작권법이 없었던 당시에는 여기저기서 해적판으로 복사하거나 활용하여서 한층 더 그 붐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복면을 쓴 캐릭터의 매력적인 영웅담은 장기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유세종은 새로운 ‘슈퍼 태극맨’ 시리즈를 펴내며 복면 영웅은 한국인임을 분명히 했다.
1961년에는 서부 영화의 인기 붐에 편승하여 ‘흐르는 별 셴’ 시리즈도 펴냈다.
1962년에는 만주벌판에서의 전투를 소재로 하여 독립군들의 활약상을 다룬 ‘결사대’ 시리즈를 펴낸다. 또 시대극 ‘흑기사’ 시리즈를 펴내면서 사건을 과거로 돌려보기도 했다.
1967년에는 ‘조국의 권’이 발표되면서 6,70년대를 그의 무대로 만들었다.
1968년에는 만화가협회의 이사로 선임되어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후반기에는 <중앙일보>에 외국어로 된 명작 극화를 연재하였다.
그는 한국만협의 야구선수는 물론, 볼링클럽에도 참여해서 기록적인 최고 점수를 올려서 동료들을 놀라게도 했다.

△ P맨, 한국의 슈퍼맨 시리즈. 통쾌한 캐릭터의 활약이 매력 만점

△ 문화인 야구대회 출전 선수로 참가, 좌로부터 필자, 유세종, 이덕송, 서울운동장 1970년

△ 동료들과 남이섬 봄 야유회, 좌로부터 박부성, 유세종, 이종진, 필자, 권웅, 현충사에서 1979년.

외출할 때는 포켓용 작은 일본 소설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틈만 나면 독서에 열중하던 유세종. 그러나 이제 그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당뇨병이 악화되어 칠순을 앞둔 나이에 사망한 것이다. 이제 주옥같은 그의 작품들만 남아 그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신현성

1935년 서울 출생. <한양대> 공대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공업 미술에 대한 흥미가 남달랐으며, 정밀 투시도와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소질을 보였다.
1956년 단행본 ‘라이너박사’로 습작기를 거치며 최상권 선생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만화세계>의 주간을 지낸 최선생이 <만화학생>을 인수해서 발행인도 겸하게 되었을 때, 편집부원으로 참여하여 시대 판타지 극화를 기고하였고, 삽화와 디자인 전반에 걸쳐 실력을 발휘했다.
이때 고우영의 형 고일영 선배도 함께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서로 많은 것을 배우고 나눠 가질 수 있었다.
1960년 박광현에 이은 시대 무협극화 ‘신검마검’으로 정식 데뷔. ‘거대한 만리장성’ ‘아리랑낭자’ ‘방울감사’ ‘삼천갑자’ 등을 펴내며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들어갔다.


1962년 대본용 만화 시대에 이르러서는 활극 극화 ‘브렉포크’ ‘무정열차’를 발표.
1963년 월간 <새싹>사 편집장 역임. 전쟁 극화도 펴내며 공업 다자인 투시도를 응용한 본격적인 실력을 선보인다.
‘독립만세’ ‘요격편대’ 시리즈가 8권까지 히트하자 6권의 ‘철인부대’ 시리즈 등 호쾌한 그림체로 역사, 전설, 신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누볐던 시기였다.


1964년 ‘붉은 십자가’ 발표.
1975년 <금성출판사> 미술 부장으로 입사해서 삽화가로서 맹활약하였다.
그가 남긴 작품 중 대표작은 1962년의 무협극화 ‘복면 유발이 장’이다. 10편이나 되는 대장편이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암살당한 포도대장의 아들이 암행어사가 되어 원수를 찾아 떠도는 시대활극이다.


유이장과 정체 불명인 복면의 사나이 유발이 장이 나중에 동일 인물로 밝혀지게 되기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던 스릴 넘치는 무협류 극화다.
앞부분에서는 조선의 신분제도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등장하고, 후반에는 권총이나 외국인, 외국 배가 등장하는 등 조선시대 중반 이후의 혼란한 시대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 무협 사극으로서 주제로 하고 있는 불타는 복수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협 시대극화를 최초로 시도한 만화가로 그를 꼽아야 할 것이다.
이후로 이재학, 김기태, 황재, 김민, 홍금보, 하승남 등이 시대를 이어 이 부류의 장르를 잘 살려가고 있다.

△ 요격편대 시리즈, 대표작이다. 10권 2부 5권 5권으로 롱런, 큰 인기를 얻었다.

△ 철인부대, 정확한 구도의 전투기와 탱크의 전투신은 입체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