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작은 쥐와 신경질적인 고양이의 추적 모습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한다면 누구나 톰과 제리를 떠올리곤 한다. 1940년에 처음 선보였던 이 작품은 텔레비전 시리즈와 극장용 작품으로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고, 최근 국내에서는 예전 시리즈를 묶어 극장판으로 선보이는 중이다.
70여 년간 대중의 사랑을 받던 작품이 다시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최근 상영 중인 탓도 있다. 거기에 더하여 지난 12월 13일 톰과 제리와 벅스 바니의 제작에 참여한 아티스트 말가 시걸이 죽자 클래식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53년 동안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업계에 종사하며 향년 97세로 별세한 여성 아티스트와 지금도 입에 오르내리는 톰과 제리는 어떤 작품일까?
톰과 제리, MGM 스튜디오, 한나-바버라(Hanna-Barbera)
톰과 제리는 1940년 미국에서 윌리암 한나와 조셉 바버라가 만든 단편 시리즈 애니메이션이다. 고양이와 쥐의 쫓고 쫓기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슬랩스틱코미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디즈니는 백설공주(1937), 피노키오(1940), 판타지아(1940) 같은 드라마적인 감동요소를 작품에 담고 있어 서로 상반된 분위기와 특징을 가졌다.)
한나와 바버라가 MSM에서 만나기 전, 이들은 뽀빠이를 만든 Fleischer Studios에서 제작에 참여했다. 당시는 셀 애니메이션의 거대 공룡으로 성장해버린 디즈니에 작은 제작사는 망하거나 합병하는 등의 고초를 겪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때 MSM에서 애니메이션 제작부를 설립했고, 여기에 한나와 바버라가 입사해 톰과 제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첫 번째 시리즈인 Puss Gets the Boot는 극장용 단편으로 메트로 골드위 메이어(Metro-Goldwyn-Mayer: MGM)에서 제작됐다. 영화가 출시될 해에 바로 아카데미 단편영화 후보에 오르며, 1943년엔 아카데미상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 < 톰과 제리 시즌1 1화 Puss Gets the Boot>
△ <톰과 제리 시즌1 2화 The Midnight Snack 장면 중>
‘톰과 제리’는 한 해에 두어 편에서 많게는 열 편 정도까지 많은 시리즈를 선보였고, 우리가 익히 아는 스파이크(개 캐릭터)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가 탄생되었다.
하지만 한나와 바버라는 1958년 Tot Watchers를 끝으로 MSM의 애니메이션 제작부 해체와 함께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이후 한나-바버라 프로덕션을 설립, 톰과 제리는 물론 허클베리 하운드 쇼(Huckleberry Hound Show), 고인돌 가족 플린스턴, 요기 베어 등을 제작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 <좌 윌리암 한나, 우 조셉 바버라. 한나-바버라 스튜디오 시절 에미상 트로피와 함께한 모습>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당시 미국 전역을 주도하던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의 인기를 분할한 작품이 톰과 제리였다는 점이다. 당시 톰과 제리의 인기는 미키 마우스와 버금간 것으로 전해진다. 편당 5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이 전미 TV 방영을 통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는데, 미국 방송국은 이 단편 애니메이션을 연간 11시간 이상 방영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 둘의 경쟁 구도는 방영 매체와 사업전개에서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일단 톰과 제리는 시리즈 대부분이 텔레비전 방영 애니메이션으로 주 명맥을 유지했다. 간혹 닻을 올리고(Anchors Aweigh, 1945), 덴저러스 웬 웻(Dangerous When Wet, 1953) 같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한 실험적인 영화가 찬사를 받긴 했지만, 톰과 제리의 근본은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진화해 왔다. 아울러 텔레비전과 함께 보급된 VTR로 가정에 보급되었으며, 인형 등의 장난감용 캐릭터 상품에도 진출하곤 했다.
△ <제리와 Gene Kelly의 닻을 올리고의 한 장면, 1945>
반대로 당시 디즈니 작품은 주로 영화관에서 선보였다. 애니메이션은 일반영화(실사영화)의 조연이자 보조수단으로 생각했던 당시의 관념을 주연으로 바꾸어 놓은 뒤, ‘주력 작품 출시는 극장에서’라는 공식을 현재도 고수하고 있다. 또한, 1940년 ‘판타지아’만을 위한 ‘판타사운드 시스템’을 개발, 상영하기도 해 대중적 상용화는 실패했지만 사운드 역사에 획을 긋는 기술력을 갖추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디즈니는 빚더미에 올라 흥행 암흑기에 이른다.) 이후, 세계대전을 맞으면서 TV 애니메이션을 전쟁과 군대 홍보용으로 제작하거나 테마파크(월트디즈니월드)로 사업을 확장하는 등의 사업적 변화 행보를 보여 왔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VTR과 텔레비전이 보급된 80년대 90년대에는 기존 작품을 TV시리즈로 재탄생 시키곤 했다. 하지만,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을 기본 골자로 한다는 특색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두 경쟁사의 작품 특징은 ‘디즈니 가족사 박물관(The Walt Disney Family Museum)’에 쓰여 있는 한 코너를 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처음으로 ‘백설공주’를 출시했던 디즈니는 회고록에서, “나는 애니메이션이 여느 영화들처럼 주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또한, 어린아이들이 보거나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만이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애니메이션은 일반 영화처럼 울고, 웃고, 감동하는 하나의 스토리 작품으로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MSM의 ‘톰과 제리’는 영화관의 조연이었던 쇼트 애니메이션을 브라운관으로 보여주면서 텔레비전 만화영화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 작품도 스토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코미디를 기본으로 마임, 슬립스틱이 주요 특징이기에 디즈니의 웅장한 스토리텔링 작품과는 정반대되는 성격을 가진다.
동시대에 양대 산맥으로 출시됐던 애니메이션 작품이 장르 세분화의 대표주자였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어느 작품이 재미있고 자신의 취향인지 생각해 보며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것이 어떨까?
지난 12월 13일, ‘톰과 제리’와 ‘벅스 바니’외 다양한 작품에서 잉커와 페인터로 활동했던 여성 아티스트 말사 골드만 시걸이 별세했다. 그녀는 ‘톰과 제리’ 시리즈의 선 작업과 채색작업에 참여했던 원년 멤버에 가까운 한 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활동하던 그녀가 총 53년의 업계 경력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나 고전 애니메이션 팬들의 안타까운 반응이 이어졌다.
△ <생전의 말사 골드만 시걸>
시걸은 1917년 태어나 12세부터 영화업계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Leon Schlesinger의 Pacific Title and Art company의 필름 프로덕션에서 잔심부름 정도 하는 수준의 일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할리우드의 작은 애니메이션회사 ‘Graphic Films’에서 셀 채색을 시작했고, MSM 애니메이션 부서의 카메라 보조업무를 하는 등 애니메이션 업계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
사실 시걸의 업계 입문은 체계적인 교육환경을 겪어 올라온 경우와 많이 다르다. 어찌 보면 옛날 우리나라 초창기 영화업계와 비슷하게 잡일부터 시작한 경우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와중에도 미술적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Leon Schlesinger 프로덕션, MSM 카툰부서, Graphic Films, Snowball을 거치며 한 명의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로서 성장한 것이다. 한나와 바버라에 대한 다큐멘터리 회고록에서도 시걸은 MSM의 주요 제작진으로 소개되며 ‘톰과 제리’와 함께하는 동반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점은 시걸이 여성아티스트라는 점이다. 지금껏 필자가 소개했던 1900년대 초반 출생인 상업예술 아티스트, 디렉터, 프로듀서 등은 대체로 남성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할리우드도 과거 감독이나 프로듀서는 물론 디렉터급 아티스트는 남성인 경우가 보통이었고, 여배우가 되지 않고서야 여성이 주요 제작자 일원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극기 드물었다.
하지만 시걸이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업계 바닥부터 쌓은 경력도 경력이지만 캐릭터에 오십여 년간 색을 입혀왔다는 뚝심과 그녀가 만든 캐릭터 고유의 색이 전세계적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같은 작품 시리즈라도 필요에 따라서 디자인이나 색이 변경되는 경우가 많은데, ‘톰과 제리’는 마지막 시리즈는 물론 캐릭터 상품도 고유의 컬러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그녀의 대표작인 ‘톰과 제리’와 ‘벅스 바니’는 90년대 전후 게임으로 출시되곤 헸는데, 그때에도 캐릭터 고유의 색과 선은 변함 없었다. 하여 그녀의 손길이 닿은 캐릭터가 지금까지 유명세를 떨치고 관련 산업에서 큰 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에 대해 시걸이 단단히 한몫 했음을 느낄 수 있다.



△ <게임 속 캐릭터 변천사. 각각 제작시기가 다르지만 톰과 제리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이 밖에도 시걸은 다양한 상을 수상하며 최근 별세하기 전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녀는 1989년 Animation Guild의 ‘골든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2004년에는 ‘국제 애니메이션 필름협회(ASIFA-Hollywood)’의 ‘June Foray Award ‘를 받았다. 또한, 2005년 샌디에이고 코믹콘 특별손님으로 참가해 팬과의 소통에도 활발했으며, 2010년 미국 공영방송 채널 PBS의 ‘History Detectives’에 출현하는 등 최근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톰과 제리’와 시걸의 행보를 본다면 그녀는 ‘업계 전문가’ 혹은, ‘예술가’라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문득 당시 미국의 사회 일터 분위기와 할리우드라는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남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고군분투해 살아남은 여성 아티스트이자 커리어우먼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시걸의 재능과 노력도 대단하지만,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한복판에서 애니메이션 작품탄생에 한몫을 두둑이 한 시걸에게 존경을 표한다.